중세시대 유럽의 왕의 1년은 거의 대부분 지방출장 뺑뺑이였다.
당시에 전화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도 없으니 각 영지를 관리하는 영주들의 보고서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었다. 하물며 현대인 지금도 비리와 공문서 위조가 존재하는 판에 왕은 직접 각 영주들을 찾아가
일일히 상황을 파악하면서 반란과 부패의 싹을 미연에 방지해야했다.
그래서 왕은 매일 매일 이 영지, 저 영지로 신하와 호위대를 이끌고 돌아다니는 생활을 해야했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중세시대의 왕은 직접 재판도 해야했다..
물론 영지 자체에서 영주가 임명한 혹은 영주가 주최하는 재판이 있었는데 '자유농민'들은
팔은 안으로 굽는 공평성 없는 영주의 재판을 거부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보통 영지에서
'자유농민'들이 엮인 분쟁은 대부분 영주와 관련된 일이었으니.
그래서 자유농민들은 "공평하게 왕에게 이 사건을 재판받고 싶소!"라고 항소하면
왕이 직접 보거나 왕이 보낸 재판관이 출두했다. 왕이 영지 뺑뺑이를 도니 결국
재판을 담당하는건 거진 왕이었다.
영국의 무능한 왕으로 알려져있는 '존왕'의 사인도 "과도한 영지 시찰로 인한 과로사"였을 정도다.
왕겜 처음에 로버트왕이 스타크 영지에 놀러오는게 그냥 왕의 일상 같은 거였구나
그건 국정운영 대신할 호구색히 따러간거였고
팩트) 십여년만에 온거다
가는데 1개월 걸렸고 9년만에 간거임
그건 좀 다르지않나?
왕교체되고 처음 가는거라는 내용이었던것 같은데
왕겜 처음에 로버트왕이 스타크 영지에 놀러오는게 그냥 왕의 일상 같은 거였구나
그건 좀 다르지않나?
왕교체되고 처음 가는거라는 내용이었던것 같은데
팩트) 십여년만에 온거다
그건 국정운영 대신할 호구색히 따러간거였고
가는데 1개월 걸렸고 9년만에 간거임
친구라고 10년 동안 떠맡기고 일 안 했니
네
애초에 왕 똥 닦으라고 핸드 있는거니까 현실보다는 좀 편할지도 모름
에다드 공 ㅠㅠㅠ
아!
그래서 이름이 Hand구나.
그대에게 가르침을 받는군
원래는 왕의 손이 되어서 왕을 도우라는 뜻이었지만 실제론 왕이 싼 똥 해결하는 역할이 됨
존은 영지를 너무 많이 돌아서 과로사한게 아니라 거기서 접대받다가 너무 무리한거 아닐까
존 왕 사인은 식중독이고
저렇게 뽈뽈대며 돌아다닌건 왕궁이 따로 없던 독일왕일텐데?
전에는 식중독으로 알려져있지만 최근에는 부정되고 있더라
조선시대 왕도 살인적 업무량이 쩔던데... 아예 일과표 자체가 사람 잡을 수준이더만.
그런 일정을 소화하니까 단명하지 싶었다. ㅡㅡ;
세종대왕을 생각하면 오히려 규칙적인 생활이 어떻게든 수명을 이은 걸지도 몰라.
ㅅㅅ하다 흥분하면 밖에서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아주그냥 돌아버릴 듯
모든 중세 왕이 다 그랬을리가 없던걸로 기억하는데. 그럼 봉건제는 뭣하러 채택해.
아니 오히려 봉건제라서 저걸 하는 왕이 생긴거고, 봉건제에서 절대왕정의 형태가 되면서 굳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어진거
봉건제는 영주가 수틀리면 반항하는데 절대왕정은 못해서 그렇게 된거임?
절대왕정하에선
"않이 쉬펄 내가 교황한테 인정받은 대리인인데 나를 거스르겠다 이거임? 너 이새끼 이단!" 하면 되니까
실리안쉨 허구언날 성안에만 박혀있던대
어쩐지...
열심히 일해서라기 보다는 시스템이 무능해서네 ㄹㅇ 조선시대가 시스템 하나는 잘 갖춰진거 같음
시대적 사회적 한계라서 어쩔 수 없음. 당장 프랑스 독일만해도 한반도의 몇배인데 봉건제의 시작은 서유럽 전체를 통일하다시피한 프랑크 시대 때니까... 괜히 카톨릭이 체계적, 조직적 행정체계로써 국교가 된게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