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한파가 끔찍할수록 다음 봄의 따듯함이 와 닿듯이
꼬꼬면과 관심병사분대 지옥을 겪은 후 다가온 왕고시절은 그야말로
나긋나긋한 봄의 햇살같은 기분으로 지낼 수 있었다
얼마나 나긋나긋하게 지냈는지
왕고새끼 자/살징후 보인다고 후임들이 간부한테 신고해서
소대장한테 면담까지 받았다
잘 해줘도 지/랄이라는 말은 이럴때 쓰는거라고 생각했다.
그 무렵 동반입대 신병 둘이 우리 소대에 들어왔는데,
이 녀석들이 신병위로휴가 나갈 무렵이 딱 내 전역시기라
늦둥이 손주보는 할애비의 마음으로 이뻐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두 동반입대중 한명이 미친신병이었다.
관심병사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미친신병이다.
이 새끼는 미쳤다.
처음 봤을 땐, 애가 되게 싹싹하길래 많이 이뻐해주고 있었는데
후임들이 조져달라고 한다.
"대체 왜?" "겪어보시면 압니다. 개념 존나 없습니다, 금마."
보통 후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엔 뭐가 있긴 있는거다.
그래서, 내가 탄약고 경계를 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미친신병이랑 탄약고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뭔가를 직감했다.
직감했다기보단 그냥 알았다. '아, 이새끼 개념 존나 없구나.'
왜냐하면, 근무교대 때리자 마자 내 짬에 깔려죽을 짬찌가 먼저 말을 꺼낸것이다.
"아, 있지 말임다!" 하면서.
"경계근무중에 떠들게 되어있냐?" 하고 싹 야리니깐, "쬐송함다!"하면서 입을 다물었다.
딱 5분정도 다물었다. 그 후에 "저 질문있씀다!"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미친 놈인가?'싶었다.
'죄송하지만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도 아니고, '질문있씀다!' 로 시작을 했다.
심지어 5분 전에 다물고 있으라고 했는데.
어이가 없어가지고 말없이 야려봤더니, 계속 하라는 줄 알았나보다.
여기서 질문이라고 나올만한 건 보통 '탄약고 경계수칙'이나 '수하' '거수자 대응법'같은게 나와야 한다.
설령 그게 나오더라도 왕고 심기가 뒤틀린 상황이면 '니 맞선임이 조또 안갈쳐줬나보다, 그제잉?' 하면서 갈굼이 시작되는데...
미친신병은 괜히 미친신병이 아니다.
"김흑인(가명) 병장 있지 않습니까, 피부색이 원래 그런검까?"
완벽하게 갈굴준비 완료된 상태에서 이 정도로 개념없는 반응이 나오면 어떻게 되냐면...터진다.
"크푸흐허흡" 하면서 터져버린다.
"아니 그게, 원래 한국인이 그정도로 까말수가 없을것같은데 감미료병장님 알동기시지 않슴까?"
"아니...크흐흡...시발...크흡... 개새기야...큽.. 병장한테... 시발 ㅋㅋㅋㅋㅋ"
'이런 개념없는 새끼, 병장한테 그렇게 말하게 되어있어?'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거 무리다.
이 미친 신병새끼 개념없는것엔 브레이크가 없다.
이게 또 웃기려고 그런거면 모르겠는데 미친신병새끼의 표정은 진지하다.
"혼혈인줄 알았슴다. 예전에... 무슨 영화에서 똑같이 생긴 배우 있었는데 누구더라..."
"ㅋㅋㅋㅋㅋ잠깐만 시발 ㅋㅋㅋㅋㅋㅋ"
"저번에 저희 위장했잖슴까? 그때 김흑인병장 얼굴에 까만색 라인 안 칠한줄 알았슴다."
"ㅋㅋㅋㅋㅋ잠깐만 시발아ㅋㅋㅋㅋㅋㅋ 배아파 ㅋㅋㅋㅋㅋㅋ"
개념 존나 없다는 생각보다 앞서드는게 이 미친 새끼가 나를 웃겨서 죽일참인가 싶었다.
그 미친신병새끼는 경계시간 내내 김흑인의 피부색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했는데
다음근무자가 하필이면 그 김흑인병장이었다.
김흑인이 내려오고있는데, 밤이라 검은 피부가 보호색처럼 적용돼서 얼굴이 안보이니깐... 방탄만 둥둥 떠있는것처럼 보였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겠는데 이 미친신병새끼가 김흑인 디스한게 생각나서 또 존나게 터져버렸다.
그래도 웃음 참으면서 근무교대중이었는데, 이 미친신병새끼가 김흑인 얼굴을 잠시동안 야리더니,
뜬금없이 "아, 맞다. 블레이드." 라고 중얼거렸다.
아주 잠깐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는데 '영화에서 똑같이 생긴 배우 있었는데 누구더라'가 그 때 생각난거다.
"크흐헙"하면서 배잡고 웃음소리 억제하니까 김흑인이 나한테 "야 뭐야 왜그래" 하고 걱정했다.
"아니..끄흐흑 나중에 말해줄게 ㅋㅋㅋㅋ 근무 잘서라ㅋㅋㅋ 블레이드 ㅋㅋㅋㅋㅋ"
내 동기가 웨슬리 스나입스 닮았다는 걸 그제서야 처음 깨달았다.
여튼 그 날 파악한 내용은, 이 새끼는 그냥 개념이 이탈하다 못해 지구 밖으로 날아간 새끼였다.
브레이크도 빠꾸도 없다.
이 미친 새끼가 한번은 샤워하다 말고 뜬금없이
"어? 감미료병장님 처음 봤을땐 키 엄청 커보이셨는데 지금보니까 완전 땅콩같으시지 말임다." 한 적도 있다.
옆에서 샤워하던 옆 분대 후임이 "미쳤어? 미쳤냐고!" 하면서 금마 딱밤을 존나 때렸다.
'확실히 미친 놈 맞다'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로부터 조금 지나, 내 말차가 얼마남지 않았을 때,
미친신병이랑, 동반입대한 미친신병 친구가 신병 위로휴가에서 복귀했다.
마침 흡연장에 미친신병의 동반입대가 있길래, "야, 여기가 어디냐?" 하고 질문했다.
동반입대는 "어... 군대입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흡연장에 있던 병사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옳은 대답은 '제 마음의 고향입니다!'다.
신병위로휴가 다녀온 애들한테 이런 대답을 유도하는 븅신같은 전통이 있었다.
"어...xx사단입니다!" "어. 그거 아니야."
"...xx연대입니다?" "후... 맞선임 데려와라."
대대, 중대, 소대, 분대까지 쭉 떨어지는데 만족스런 대답이 안 나왔다.
그 때, 미친신병새끼가 흡연장쪽으로 걸어왔다.
"야, 미친신병아! 여기가 어디냐!"
"집입니다!!!"
확신있게 소리친 네 글자에
그 새끼는 흡연장에서 담배피우고 있던 모든 병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군생활 존나 잘하는놈 기어들어왔구만 왜? ㅋㅋㅋ
의외로 군대 체질일지도....
이정도는 뭐..........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군생활 존나 잘하는놈 기어들어왔구만 왜? ㅋㅋㅋ
실제로 존나 잘하는 놈이었음
이쁨 많이 받았지
존나 맞으면서...
말안듣고 그런거보다 훨 낫다
재미있었겠는데 ㅋㅋㅋ
임마 덕분에 말년은 진짜 재밌게 보냈음.
개념이 이탈하긴 했어도 애가 운동도 그렇고 훈련도 그렇고 다른걸 다 잘해서 이쁨도 많이 받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