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625전쟁 당시의 인도아전병원과 그 기념우표.
인도는 한국전당시 신생독립국이었음. 그뒤로 비동맹 중립 외교정책으로 노선잡음.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직후 유엔차원에서의 개입이 확실시 되자 의료지원으로 파병결정.
신생독립국인지라 외교적 이미지가 부족하여 지배하고 쪽쪽빨아먹던 영국놈들과 함께 파병.
영국나치들과 한솥밥 먹으면서 평양까지 올라가서 제60야전병원을 세움.
그동안 훌륭한 성과를 발휘하다가 1.4후퇴와 함께 남하.
그러나 철수하기 위한 이동수단문제가 발생.
그리하여 란가라지 중령의 임기응변으로 평양역에 방치된 기관차와 화차로 장비, 환자, 병력을 수송하여 성공적으로 후퇴.
이 와중에 부대원 중에 기관차 조수 경력자가 있었음.
철수 성공 후 미8군 사령부의 명령으로 2개 부대로 분할.
영국의 27여단 소속의 란가라지 중령의 부대와 대구로 내려온 의료팀으로 나뉨.
대구 의료지원팀의 경우 눈부신 의료지원 성적에 그치지 않고 상당한 수의 한국인 의료인들을 교육시킴.
27여단에 소속된 본대는 의정부에서 수용능력을 초월할 정도의 부상자들을 상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은 수술과 치료능력을 발휘함.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고비는 평양 철수보다 한반도의 동장군, 한파였다.
의료약품이 얼어붙어버릴 정도라서 약효상실을 감수하고 화로 곁에 둬야했다.
가장 중요한 마취제의 경우 얼어버릴 위험이 적은 기화 마취제를 사용하였고 덕택에 미군, 영연방군, 영국군 모두 이들에게서 수술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대구 분견대의 경우 대구를 떠나던 때까지 1400회의 수술을 마쳤다.
터키도 지금 맛이 갔으니
인도하고 우군이 되어 중국견재하는 시나리오가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