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크릭은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저에겐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없는 걸까요?
뭐, 동기들이나 선배들한테 딸랑이랑 고무 쪽쪽이 들고 달려드는 그녀가 깨달은 것치곤 상당히 늦긴 했다만, 아무튼 그러했다.
오구리 캡은 물론이고 이나리 원도 은근슬쩍 자신들의 트레이너한테 관심을 표하고 있었고, 이것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대놓고 호감을 표시하는 그녀는 글쎄, 딱히 진전이 없었다.
오히려 ‘나한테도 그 딸랑이랑 쪽쪽이 주려고 하면 사회적으로 내가 죽어’라는 답을 들었을 뿐.
뭔가 억울하긴 한데, 트레이너한테도 딸랑이 흔들어주고 싶긴 했었으니 마냥 틀린 말은 아니라서 크릭은 변명이 궁했다.
아니, 해쪄요 놀이가 얼마나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되는데.
성인들한테 참 좋은데 뭐라 말할 수가 없네.
결국 다정한 악당은 결심했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보자고.
기다림도 한계가 있다고,
그리고 이는 트레이너에게 자연재해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
트레이너에겐 트레이너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다.
“크릭이 요즘 따라 너무 벽 없이 다가오는데….”
절로 푸념 어린 혼잣말을 하게 할 정도의 거리감 제로.
담당 우마무스메, 즉 학생으로서 대하려고 마음속으로 기도문을 외우면서 선을 긋고 있는데, 정작 저쪽에서 선 그게 뭔가요 하면서 줄넘기를 하며 다가오는데 방법이 없다.
그나마 오구리나 이나리를 담당하는 동기 트레이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애답게 행동하더라’라는 평이었는데, 슈퍼 크릭이 누구인가. 자타공인 트레센 최고의 모성애 보유자에 도저히 학생 같지 않은 외모 보유자 아닌가.
이는 선을 그으려고 한들, 슬슬 번뇌에 빠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게 더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차라리 고등부였으면 나을 텐데 이제 드림 트로피다.
대학생이라고.
엄연히 성인의 영역에 들어선 그녀가 선이라고 없이 넘나드는 것은 이전과는 아예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예 딱 잘라 말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
물론 그렇게 하면 그녀는 받아주겠지.
하지만 이전과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와서 거절한다는 건, 다른 의미론 지금껏 계속 신경을 쓰고 있던 것이 한계에 달해서 밀어내는 건데, 왠지 이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접촉해 올 가능성도 있었다.
진퇴양난이라는 게 있다면 딱 이런 거 아닐까.
“어머, 뭘 딱 자르신다는 건가요, 트레이너님?”
그렇게 고민하던 찰나, 뒤에서 들려선 안 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듣고 있었니, 크릭.”
“너무 벽 없이 다가온다, 부터요?”
그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돌아보지 않고 묻자 돌아온 답에 트레이너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처음부터 다 듣고 있었단 거잖아.
“왜 그렇게 절 밀어내려고 하시는지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런 그의 옆에 슬며시 다가와 앉은 그녀의 물음에 그는 고민했다.
솔직하게 다 말해도 될 것인가.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라는 사회적 관계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크릭.”
“그런가요? 하긴, 가르치는 사람과 제자의 입장이니 쉬이 바뀌는 것이 오히려 힘들겠네요.”
결국 이 문제에 대해서 그는 그냥 솔직히 말하는 걸 선택했다.
그리고 슈퍼 크릭 역시 이해를 하는 눈치였고.
“하지만, 또 다른 당사자인 제가 그 관계를 바꿔보고자 한다면 이야기가 다른 거 아닌가요?”
“크릭…?”
동시에 폭격을 떨궈서 문제지.
“대체 왜 나 같은 아저씨한테 가까이 오려 하는 거니? 더 좋은 사람도 많을 텐데?”
평상시엔 온화한 그녀가 이런 결단을 내린다는 건 일반적인 결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는 만류를 시도했다.
“으음, 제가 가장 힘들 때 도와주셨던 분을 좋아해선 안 되는 건가요?”
힘들 때라.
하긴, 현역 시절에 다리 문제로 은퇴를 생각하던 시기 끝까지 그녀를 설득하고 재활하게 해서 다시 뛸 수 있도록 한 것도 그였다. 비록 이전만큼의 기량은 안 나왔지만, 후회없는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줬지.
…생각해 보니 다리에 문제 있다가 현역으로 복귀하여 마무리 짓는데 성공한 우마무스메 대다수가 다 이런 느낌이던 거 같은데.
오구리 캡, 이나리 원은 말할 필요도 없고.
나란히 학생회에 영혼이 저당 잡힌 토카이 테이오라던가 메지로 맥퀸이라던가.
“난 교육자로서, 트레이너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란다. 네가 인생에 있어 한 번뿐인 시기를 미련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그래도 일단은 선을 긋는 걸 시도해본다.
이건 마지막 시도나 다름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트레이너님은, 그렇게 제가 싫으신 건가요?”
아, 망했다.
최악의 카운터가 돌아왔다.
이러면 답은 하나지 않은가.
“…아니.”
그가 담당을 싫어할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아끼면 아꼈지.
“그러면 문제없지 않을까요? 서로 싫지 않고, 좋아한다면 아무래도 좋은 거니까요.”
그리고 싱긋 웃는 슈퍼 크릭이 덧붙인 말은 거기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난 모르겠다, 정말로. 트레센 부속 대학에 나보다 더 나은 젊은 애들도 많을 텐데.”
“후후, 이제 20대 후반 들어가신 분께서 그런 말씀하시면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트레이너님도 젊으시답니다?”
“하아….”
그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말을 달래듯이 반박한 크릭은 이내 자기 무릎을 팡팡 쳤다.
“머리 아프시다면, 무릎베개로 좀 쉬실래요?”
“….”
그러고 보니 이전에도 이런 적이 몇 번 있긴 했지.
그가 훈련 일정과 재활 일정을 짜느라 극한의 스트레스에 치달았을 때면, 딸랑이랑 쪽쪽이 들고 출동하진 않아도 대신 무릎베개를 해주겠다고 했으니까. 그녀의 기행을 단순한 유사 모성애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좀 다르다.
“크릭은, 훌륭한 엄마가 될 거야.”
‘오구리 캡을 박살 내겠습니다.’ 하던 때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유사’ 모성이 아니라 진짜 모성을 드러내는 우마무스메.
아직 한창때 처녀가 저러니 뭔가 안 맞기도 하다.
달리 말하면, 이게 슈퍼 크릭의 본성이란 거겠지.
“좋아라, 트레이너님에게서 저런 말씀 듣는 건 처음이네요.”
입을 살짝 가리며 웃으면서 정말로 좋은 듯이 말한 그녀는 이내 눈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절 진짜 엄마로 만들어 주실 생각은 혹시 있으신가요?”
“크릭.”
“전 진심이랍니다?”
“….”
여기서 그렇게 나올 줄이야.
이렇게 자신을 완전히 무장해제하고 벽을 무너트리고 오는데, 솔직히 받아주고 싶은 쪽으로 마음의 천칭이 기우는 건 굴뚝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일단, 드림 트로피 마무리하고 생각하자. 아직 너와 나는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야.”
이건 조건이다. 선이 아니라 조건. 그리고 이는 슈퍼 크릭도 즉각 알 수 있었다.
“‘아직’이란 말씀은, 제가 졸업하면 달라질 거란 말씀이네요?”
“그때는 너도 사회인이니까, 네 선택을 존중할게. 아직은, 그래 당장은 일러.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때를 제시하는 트레이너의 말에 담당은 검지로 턱을 짚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싱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
“네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쭉 기다려줄게.”
“꼭이에요?”
“그래, 꼭.”
트레이너와 담당은 그렇게 그날 작은 약속을 했다.
다만 두 사람이 상상도 못 한 자연재해가 머지않아 들이닥치는 게 문제지.
…
“이게 뭐니?”
“타마쨩이 저한테 뭘 보냈나 봐요.”
다리 부상 때문에 오구리보다 1년 늦게 졸업하게 된 크릭의 앞으로 어느 날 편지봉투가 하나 도착했다.
“트레이너님한테도 뭔가 왔답니다.”
“엥? 어디 보자…. 그 곰탱이가 보낸 거네?”
물론 트레이너 앞으로도 뭔가 왔다.
같은 날, 다른 이들이 보낸 편지가 두 사람에게 도착한 것은 상당히 의외의 일이었다. 그랬기에 대체 무슨 일인지 의문을 품은 크릭과 그녀의 트레이너는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내용물을 보고 서로 쳐다봤다.
“타마쨩과….”
“그 곰탱이가 결혼한다고?!”
하얀 번개가 불러온 폭풍은 마침내 슈퍼 크릭과 그녀의 트레이너에게도 상륙했다.
어디 한번 막아보시지.
붓싼 또레나가 쏘아올린 존나 큰 공
저쪽에서 했으니 우리가 못할건 없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