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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약19] '불완전한 사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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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사육
 

#하진의 이야기
 

흐흐 가만히 있어, 그래... 옳지! 속살이 진짜 보드랍구나 너어...”
아저씨가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야. 외로워서 그래 흐흐흐
찌찌가 진짜 귀엽네 크흐흐흐
 

그것은 치욕의 밤이었고, 유린의 시간이었으며 절망의 순간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 친구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순간들은 마치 꿈인 듯 망막 저편으로 사라지고,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오직 닫힌 문과 몸을 구속하는 쇠사슬 그리고 흉측한 모습의 벌거벗은 사내뿐이었다.
 

납치...’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던 길, 갑작스레 나타난 그는 내 목덜미를 움켜쥔 채 급히 차에 태웠다. 저항하며 발버둥쳐 보았지만 성인 남성인 그의 완력을 이겨낼 순 없었다. 그는 겁에 질린 나를 비웃으며 차를 몰았다. 비명을 내지르고 구원의 외침을 거듭했지만 돌아온 것은 오직 잔인한 폭력 뿐이었다.
 

아가리 싸물어! 재수 없게 질질 짜기는... 이제부턴... 흐흐흐 내가 니 주인이야!”
 

그렇게 끌려온 곳이 바로 이 곳...
그의 집, 구석진 골방이었다.
 

엄마... 아빠... 보고싶어.’
 

낯선 장소가 주는 생경함이 나를 옥죄었다. 불안하고 두려웠다. 창문엔 촘촘한 창살이 쳐져 있고, 벽은 온통 두꺼운 헝겊이 드리워져 울음소리마저 잡아먹었다.
 

꼬르륵
 

배가 고팠다. 벌써 하루 반나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다. 그는 나를 능욕한 뒤 사라졌다. 마치 내 존재 자체를 잊어버린 듯 모든 것이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차라리 그게 나았다.
탐욕스런 그의 손길이 내 몸에 와 닿고, 마치 나를 제 것인양 유린하는 것보다야 백 배 천 배 나았다.
순간 그 밤의 악몽이 떠올라 몸서리쳤다.
끔찍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왜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지?
난 여기 있는데... 여기... 갇혀 있는데...
 

 

 

 

 

#창주의 이야기
 

것은 매우 원초적인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외로움 그리고 배신감 같은... 보편적인 감정 말이다.
 

이 대리님! 이창주 대리님은 왜 연애 안 해요?”
?”
여자 만나는 거 한 번도 못 본거 같아서요
에이 미스 장도 저 같은 놈을 어떤 여자가 좋아하겠어요. 키도 작고... 얼굴도...”
왜요! 전 이 대리님 괜찮은데. 여자들이라고 다 외모만 보진 않아요. 중요한 건 마음이죠. 마음! 이 대리님은 마음이 따듯한 분 같은데, 왜 여자들이 몰라 볼까요? ...”
... 그래 보여요?”
물론이죠! 그런 의미에서 저희 과 비품 조금 비는데 조금 가져가도 될 까요?”
하하하핫! 물론이죠! 얼마든지! 하하하! 마음... 하하 마음...”
 

그때의 나는 웃고 있었다.
감히 내색은 하지 못 했지만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건 그녀가 다른 사람도 아닌 평소 짝사랑 해 오던 경리팀의 미스 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따듯한 분...’ 그녀가 갑자기 왜 내게 그런 말을...
많은 생각들이 오갔고, 수많은 의미가 부여됐다. 깊은 갈등과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
마치 서툰 내 감정을 응원하듯,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나라는 인간을 옹호하듯 그녀는 웃고 있었다.
내 얼굴에서도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설마?”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렇게 예쁜 여자가 왜 날...”
하지만...”
 

 

왜요! 전 이 대리님 괜찮은데. 여자들이라고 다 외모만 보진 않아요. 중요한 건 마음이죠. 마음! 이 대리님은 마음이 따듯한 분 같은데, 왜 여자들이 몰라 볼까요? ...”
 

 

서른 일곱살의 봄, 참으로 주책 맞은 일이었다. 모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덥수룩한 머리도 자르고, 요즘 친구들이 쓴다는 왁스도 처음 사 보았다. 생전 가볼 일 없던 화장품 가게에선 점원의 입바른 소리에 녹아 고가의 남성용 화장품을 세트로 샀다.
어디 그 뿐인가? 내친김에 향수도 하나 골랐다.
지출은 컸지만 미스 장을 생각하니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었다. 키 작고, 못 생기고, 주변 머리도 없을뿐더러, 말로 다 열거 할 수 없을 만큼 부족한 인간이다. 그런 내가 아름다운 미스 장 곁에 서려면 최소한 창피는 주지 말아야 했다.
소심하지만 그것이 내 방식의 사랑이었다.
적어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진...
 

하진 언니 정말이에요?”
뭐가?”
자재부 이창주 대리님이 언니 좋아한다면서요? 이거 이거! 일 나는 거 아녜요?”
!”
?”
재수 없게 그 아저씨 얘긴 왜 하니? 안 그래도 이상한 소문나서 스트레스 받는데! 그 때문에 기미 생긴 것 좀 봐!”
... 하긴... 그쵸? 저는 언감생심 그 자타공인 노총각 대리님이 언니만 보면 발그레해진 다길래 웃겨서! 미안해요. 사실 그럴 것 같긴 했어요.”
웃길 일이 따로 있지. 나는 끔찍하다 얘! 표정도 어둡고 칙칙해보여서... 또 사무실 비품 좀 얻어 쓰려고 적당히 한 마디 해줬더니... 넘 볼 걸 넘 봐야지! 미치겠다 진짜! 꼴에 지가... 나를? 지나가던 개가 웃지. 솔직히 난... 그 사람 눈빛만 봐도 소름 끼쳐. 바퀴벌레 같은 인간! 생긴 건 꼭 쥐새끼 같아가지고...”
키키킥 쥐새끼? 딱 이다 딱... 시궁창 속 쥐새끼!”
! 지금 밖에 누구 있지 않았어?”
? 밖에요? 에이 설마... 봐요 아무도 없잖아요. 여직원 휴게실을 누가 엿봐요. 큰 일 나려고!”
하긴... 그렇지?”
 

긴 시간, 나는 늘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왔다.
세상의 편견, 외모지상주의, 내가 가지지 못한 부유함 거기에 천식이란 오래된 지병까지... 숱하게 많은 경멸과 야멸찬 말들이 내게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또 다시 패배했다.
갈갈이 찢긴 채... 순박한 서른 일곱의 풋사랑을 또 다시 접어야 했다.
 

그래... 내 주제에 어떤 여자가 날...”
 

술을 마셨다. 엎드려 한 참을 울었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기를 들었지만 달려와 줄 친구조차 없었다.
 

정말 정말 외롭고... 힘들다.’
 

그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오직 나만을 바라봐 줄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세상의 편견으로 인해 상처 받지 않고, 언제고 따스히 어루만질 수 있는... 그런...
마침 교외의 외진 곳에 위치한 내 집엔 빈방도 하나 있었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외딴 집이다. 그 곳이라면 조금 소란스러워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들이 뒤엉켜 나를 일으켰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어느새 나는 웃음 짓고 있었다.
 

 

 

 

 

 

#하진의 이야기
 

이익
흐흐흐 오빠 왔다. 나이가 한참 차이 질 텐데. 오빠는 좀 그런가? 에이! 아무렴 어때! 내 맘이지
 

그가 돌아왔다. 또 다시 밀려온 두려움에 온 몸의 털들이 쭈뼛하게 서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배가 고팠다.
그 원초적 본능이 나의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제시켰다.
 

배가... 배가 고파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려하자 때마침 그도 달라붙은 내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
 

배가 고픈가보지? 좋아! 내 말만 잘 들어 그럼 먹을 것도 주고, 편하게 지내도록 도와줄게 알겠어?”
 

그의 커다란 손이 내 턱을 움켜쥐었다. 아팠다. 하지만 뿌리칠 힘이 내게는 없었다.
 

이 줄... 잠깐 풀어 줄 테니까. 얌전히 굴어야 돼? 도망칠 생각일랑 말고!”
 

그가 먹던 것으로 보이는 차가운 밥 한덩이가 국에 말아 내어졌다. 허기에 등 떠밀려 혀를 대어 봤지만 역시나 내키진 않았다. 제대로 된 것을 먹고 싶었다. 그가 먹다 남긴 것이 아닌... 진짜 음식...
미적거리며 경계의 눈빛으로 쏘아봤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말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하진이로 하자. 장하진... 그런 눈으로 보지마. 누구 대용이긴 해도... 딱히 나쁜 이름 아니잖아? 알았지? 이제 너는 장하진이야. 경리팀 미스... !”
 

장하진, 그 이름 석 자를 말하는 그의 눈빛이 조금 매섭게 느껴졌다. 허기로 인해 잠시 잊었던 두려움이 다시금 밀려왔다.
그리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그의 억센 손이 다가와 미적거리고 있던 내 머리를 밥그릇에 처박았다.
 

안돼... 으읍
..! 쳐 먹으라고 좀! 사무실에서처럼 깨작거리지 말고! ?”
댓글
  • mercurius 2016/12/20 22:52

    아니 작성자양반 이베 무슨 소리요! 고양이이라니!저게 고양이라니!

    (flM8h4)

  • goodtiming 2016/12/20 23:55

    잘읽었습니다ㅎ 수음이란 단어를 보고도 고양이라고 생각은 차마 못했네요...남주 극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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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얪! 2016/12/21 01:23

    열등감에 성욕이 왜곡되었구나
    생각도 못했네

    (flM8h4)

  • 빠투스 2016/12/21 05:07

    세,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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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세모 2016/12/21 07:08

    잘 봤습니다.

    (flM8h4)

  • 야설왕짐보 2016/12/21 09:29

    부족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성애묘사도 없고, 결말도 어떤 의미에선 허망해서 걱정이 많았네요.
    애묘인 분들이 좋아할 지 싫어할지도 좀 자신 없었고요.
    감사드립니다.

    (flM8h4)

  • 막달란마리야 2016/12/21 11:23

    와...진짜 대박 반전...
    이 감정은 뭐지...? 허망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느낌

    (flM8h4)

  • 종이등불 2016/12/21 13:26

    와우....... 엄청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난 작은 여자아이인 줄 알았는데, 고양이라니.
    정말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반전이었습니다.

    (flM8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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