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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미우리신문과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인데요.
'현재 한일 관계가 좋다'고 답한 한국인은 55.2%로, 처음으로 절반을 넘었습니다.
지난해보다 12.7%포인트 증가한 수치인데, 양국 관계에 대한 긍정 평가가 한국에서 6년 만에 일본보다 높게 나왔습니다.
일본인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50%를 넘은 52%가 '관계가 좋다'고 답했는데요.
한일 모두 이 같은 긍정 인식이 확산한 건 2023년 한일 정상 간 셔틀 외교 복원 후 양국 간 문화 교류가 급격하게 확산 된 것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윤돼지 영향도 없잖아 있기야 하겄지만
것보다 우리가 어느 정도 먹고살만 해져서 라는 분석들이 더 맞겄지.

문제는 두 나라 정치인들이 문제.
국민들끼리는 큰 문제없음. 서로 놀러가고 웃으면서 반겨주고.
하지만 8.15 일본 주요 인사들이 신사 참배하고 막발 지껄이면 급격히 냉랭해짐
<쪽바리 호로씹새끼들이 불태운 우리 문화재>
경복궁(景福宮)
원래 조선의 건국 이후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후 세웠으나 임진왜란 중, 불에 타서 소실
창덕궁(昌德宮)
태종5년(1405)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거의 전소
창경궁(昌慶宮)
성종14년(1483)에 세워졌으나 경복궁, 창덕궁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도중에 불에 탐
부산동래 범어사(梵魚寺)
문무왕18년(678)에 의상이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탐
불국사(佛國寺)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나1593년 임진왜란의 병화로2000칸의 대가람이 소실
음성향교(陰城鄕校)
명종15년(1560) 3월10일 창건하였으며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
태화루(太和樓)
신라 자장이643년(선덕왕) 태화사 창건시 만들어졌으며 영남3루로 꼽히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소실
인각사(麟角寺)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고려시대 일연이 삼국유사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나 임진왜란 때 전소
흥법사(興法寺)
신라시대 때 건축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이후 재건되지 못하고 터만 남아있다.
현재는 절터 주변에 모두 경작지인 상태이며, 이곳에는 삼층석탑(보물464), 진공대사탑(보물365), 진공대사탑비, 전흥법사염거화상탑(국보104)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보물463)만 남아 있다.
수타사(壽陀寺)
신라 성덕왕7년(708) 창건하여 우적산 일월사로 불리다가 세조3년(1457)에 현 위치로 옮기면서 수타사라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의 병화로 완전히 불타버림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및 사고
조선 태조에서부터 조선 철종 때까지25대472년간(1392~1863)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록한 책으로,
임진왜란 직전까지 서울, 충주, 성주, 전주에서 보관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전주를 제외한3곳이 불타버렸다.
법천사(法泉寺)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져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전소
화엄사 대웅전(華孍寺大雄殿)
화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인신라시대에 지었다고 전해지며 임진왜란 때 불탐
통도사(通度寺)
한국의3대사찰의 하나로, 신라의 자장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임진왜란때 불타 소실
분황사 약사여래입상
경덕왕14년(755)에 주조 봉안한 무게30만6700근의 동으로 만든 신라 최대의 불상으로 임진왜란 때 소실
보광사(寶光寺)
894년(진성여왕8)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탐
관룡사(觀龍寺)
신라8대 사찰의 하나로, 394년(내물왕39)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소실
등등등등 이고
불타고 부서진 덜 알려진 문화재들이
이 댓글에 기재된 문화재 외에 훨씬 더 많음.
그리고 뒤 정유재란때는 큰 절 작은절 안가리고 싹 태우고 탑도 다 부셔버렸음.
근데 일본은 피해 하나 입은거 없이
신사 절 등 관광자원으로 관광객들 미어 터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