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명이 / 정이수
1963년 음력 10월 즈음에 태어난 것은 맞는데
어제까지 청량산 자락에 묻혀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 오늘 이 아이를 낳고
차가운 방바닥에 나뒹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일라 헝크러진 머리칼 쓸어넘기기가 무서워
그 입에 오늘 또 무엇을 먹여야할지
가뜩이나 타들어가는 입에
아이들 눈을 보니 더 가슴이 타들어가
어미는 핏덩이를 낳고도 그 출산일을 기억하지도 기록하지도 못하였던 탓에
재명이는 자기 생일을 모른다.
살라면 살고 말라면 말라지 일곱째 재명이 위로 어차피 누나 둘이 죽었으니
명이 길면 알아서 살겠지 이듬해가 다 갈 때 즈음 출생신고를 하고 산골짜기에서 돌멩이처럼 굴렀지만
주린 배로 어두컴컴한 산길을 두 시간이나 걸어 학교에 가기가 너무 힘들어
꾀를 내어 결석을 하면 하염없이 매를 휘둘렀던 선생이 있었다.
그 선생은 사실 가난에 매질을 한 인간이라 재명이는 복수하고 싶었다.
무엇이 사람을 가장 절망하게 하는지 재명이는 잘 알고 또렷이 기억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산골짜기를 떠나 도시로 간다더니
엄마는 재명이를 상대원공단으로 데리고 가 염산 공장에 밀어넣었다.
돌멩이처럼 구르던 삶이었지만 도시의 하이에나들은 돌멩이도 부수었다.
고무벨트에 손이 감겨 고무 조각이 손가락에 박히고
함석판에 손등이 찢어지고
월급을 떼이고
밥 먹듯이 맞다가 어느날 귀싸대기를 너무 많이 맞아 귀가 잘 들리지 않고
벤젠과 아세톤에 찌든 후각세포도 죽었다.
사춘기 어느날 프레스기에 손목이 끼었는데
이미 손가락이 잘린 공장 형들 앞에서
병원에 갈 수 없어 결국 팔이 휜 재명이는
팔병신이 되어 군 면제가 되면 어쩌라는 것이냐
여기서 더 괄시를 받으면 나는 죽으라는 것이냐
혼자 일기장에나 대고 울지
나를 왜 중학교를 보내지 않고 이런 꼴을 만들었느냐고 따져보았자 소용 없는 아버지.
아버지는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느냐
숨죽여 가슴만 터지던 밤마다 수십 권의 일기를 쓰다가
공부를 해야겠다. 작업반장이 되어야겠다 결심했다가도
이렇게 고달픈 인생 도저히 이제 못하겠다 삶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려고 하길 여러 번.
죽는 것도 쉽지 않던 재명이가 철이 들어갔는지
시장 화장실 앞에서 돈을 받던 어머니, 공장에 들어가 하이에나들에 부서지던 여동생이
눈에 보이더니
거리에 보이는 수많은 어머니, 여동생들이 매일 밤 이 악문 울음 속에 삼켜져
재명이는 밤마다 연필을 들고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아버지가 일부러 전깃불을 끄면 재명이는 어둠 속에서 공부한 것을 외우다가
법대에 갔다. 서울대에 갈 수 있었는데 돈이 없어서 그랬다.
재명이는 꿈을 가진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잘 알고 또렷이 기억한다.
경기도에서 모든 어린아이들에게 과일을 무상 지원한다고 했을 때
나는 ‘과일은 복지가 아니지 않나. 없는 사람한테는 더 중요한 것이 있을텐데.’ 하였다.
‘밥은 못 먹어도 좋아요. 라면만 먹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나는 딸기가 먹고 싶어요.
내가 딸기를 먹으면 빨간 크레파스가 진짜 빨간색이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재명이는 기억한다.
한밤중 불 꺼진 방에서 썩은 과일 한 쪽을 먹어본 것이 전부인 사람은
가난한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누구보다 잘 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
지워지지 않게 새겨진 흉터투성이 인생.
이재명은 잘 안다.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https://cohabe.com/sisa/4640040
재명이 / 정이수
- 포항 선거 투표소 분위기가 영…포항자게이님들 꼭!! [7]
- 설대수산남편|참견아빠 | 2025/06/03 06:50 | 933
- 제일 걱정되는 한가지… [1]
- 그냥싫어 | 2025/06/03 06:50 | 1090
- 트릭컬) 아멜리아가 쏘아올린 게이물시리즈 [4]
- 구리문 | 2025/06/03 06:50 | 618
- 이탈리아 사람이 인정한 피자토핑 [13]
- 파테/그랑오데르 | 2025/06/03 06:49 | 813
- ??? [3]
- Baby Yoda | 2025/06/03 06:49 | 467
- 스텔라 블레이드 모드가 공식을 못이기는 이유 [4]
- 니디티 | 2025/06/03 06:48 | 736
- 끝까지 민폐 [4]
- 초록풍선™ | 2025/06/03 06:48 | 1011
- 임신도 안 했는데 모유가 나온 일본 여성 [8]
- 5413857777 | 2025/06/03 06:47 | 632
- 굳이 오늘 투표 안해도 됨 ㅋㅋ [16]
- TUUT | 2025/06/03 06:46 | 697
- 블루아카) 모닝글 비키니 아스나 [3]
- 최전방고라니 | 2025/06/03 06:46 | 367
- 오늘 투표날인데 츌근하는 사람 읎제?ㅋㅋㅋㅋㅋㅋ [2]
- JG광합성 | 2025/06/03 06:44 | 794
- 투표완료. [2]
- 꼼그락 | 2025/06/03 06:43 | 888
- ? : 아~ 그럼 죽을게요~ / ? : 네 [11]
- 파테/그랑오데르 | 2025/06/03 06:42 | 363
- 미미 에게 솔직하게 얘기 하는 안정환 [3]
- 5413857777 | 2025/06/03 06:39 | 627
- Q. 존나 ㅄ같은 방법인데 해보니까 진짜 된 경우가 있음? [5]
- 파테/그랑오데르 | 2025/06/03 06:39 | 327
원래 죽어야 될놈이 살아가지고 악마가 되었구나
울어?
많이 긁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