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거 극장판을 보고 와서
진득한 후기 겸 해설을 좀 썼음.
제작사인 마파가 아무래도
논란이 좀 있던 곳이다 보니
내심 걱정을 좀 하고 갔지만
지금이라도 볼 사람은 빨리
영화관을 찾아가서 보길 바람.
안 보면 후회할 퀄리티였음.
(*장문이니까 브금 틀고 가자.)
팁을 좀 주자면 되도록
본인에게 허용 가능한 한
앞좌석에 앉기를 바람.
위압감을 느끼면서 보는 게
좀더 좋겠더라고, 화면비율도
약간 가로가 좁은 편이었고.
극장판 자체의 시작은
엘런의 땅울림 발동 이후로
마레 대륙을 꽤 밟은 후부터이니
이 점도 알고 가는 게 좋겠지?
혹시 중도 하차한 사람들은
유튜브 에디션으로라도 종막까지
스토리 숙지하고 가길 바란다.
그리고 엔딩 크레딧 내려간 후에는
쿠키 영상도 따로 있었으니 참고하시고..
그럼 본론으로 바로 가자.
일단, 우익 논란이니, 좌익 논란이니,
무엇보다 가장 문제시된 대량 학살을
옹호했다는 파시즘 논란이라든지..
이런 문제들은 그냥 안 다룰 거다.
특히 아르민의 학살 옹호 발언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작가가
독자더러 찰떡처럼 알아먹으리라며
얄팍하게 짚어 넘긴 모양인데,
이게 치명적이긴 했어도
엘런의 땅울림에 대한 감정 묘사는
학살에 대해 전혀 옹호적이지 않았음.
(*이때 하차한 사람 개많을 듯?)
사실 이게 아니더라도 표현력이
워낙 안 좋은 걸로 유명한 탓에
난 이 문제는 생각을 포기했음..
작가가 의도한 서사의 뼈대만 다뤄도
충분히 길고 복잡해서 분량이 아까우니
중요한 것들만 후딱 다루자고.
이라는 작품의 주제는
주인공인 엘런이 '자유의 노예'였듯이
모든 인류를 '인과의 노예'로 보고,
특히 시조의 거인이 된 노예,
작중 실제로도 천출이던 유미르가
사랑의 형태를 새로이 깨달아야만
끝날 수 있는 비극의 서사였음.
즉, 엘런의 테마인 [자유와 구속]은
유미르까지 옭아맨 [원인과 결과]라는
거대한 나무의 무수한 가지 중 하나였고,
때문에 철저하게 결정론적인 세계에서
결말까지 단 한 번도 사랑을 못 받은
노예 출신 유미르가 미카사를 만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을
목격한 후에야 비로소 성불한 서사임.
(*영상 링크 : https://youtu.be/YyTbk4Up4Jg?si=yuYHgPqPk2Zjg05u)
일단 결정론 좀 짚고 가자.
결정론은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현재에 무슨 짓을 해도 정해진 흐름에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관점이며,
작가가 이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시간선은 오로지 유미르가 있는
'좌표'를 기준으로 하나만 인정했고,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동시성.)
하나의 시간선에 따른 인과론만 있기에
타임루프라든지, 시간회귀는 '절대' 아님.
(*쿠키 영상은 윤회를 다루긴 함.)
가장 헷갈리던 장면을 뽑자면
바로 이 장면에서 엘런과 미카사가
파라디 섬의 어딘가에 숨어서
남은 생을 평온하게 보내는 꿈..
이 꿈은 있을 수가 없던 장면이라서
엘런이나 유미르가 미카사에게만
특별히 제공한 배려 같더라고.
(대화상 '벽 밖'을 알고도 은신한 상황.
즉, 두 주인공이 거주지 밖으로 도피해
애초에 일어난 적 없는 상황임.)
(*갑자기 짐승형 턱 거인인
팔코의 그림자가 스쳐간다.)
자세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저 장면은 한참 종미의 거인과
전투하던 중의 환상이었음.
아무래도 현실의 어느 시간대에든
구현된 적이 없는 건 분명하고,
나는 이게 엘런을 지키기 위한
유미르의 방어기제용 환상으로 보임.
동시에 미카사가 엘런에의 감정을
확실히 정리하도록 만든 배려이기도 하고.
어쨋든 중요한 건,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하나의 시공간만 있음.
평행우주니, 뭐니, 그런 건 없음.
자, 작품의 조건은 대충 알겠고,
이번엔 본체인 주제를 알아보자.
오직 유미르에게만 초점을 맞추면
그녀는 죽음마저 초월한 '좌표'에서조차
자유권이 허락된 적은 없었기에,
총 세 단계에 걸쳐 성불에 진입함.
이 세 단계를 하나씩 나열하자면..
(*전퇴의 거인을 보유한 타이버 가문과 모의해
패주를 가장하고 파라디 섬으로 이주한 칼 프리츠.)
1) 145대 왕 *칼 프리츠의 부전의 맹세로
전 세계를 폭력으로 지배한 압제에서 이탈.
(*파라디 섬의 초대 레이스 왕.)
엘디아 제국은 영웅적인 마레의
활약으로 인해 멸망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자멸한 것에 불과했음.
(*작중 처음으로 눈빛을 보이는 유미르.
한순간도 동공을 보인 적이 없었음.
와중에 우측에는 프리츠의 혈통을 들먹이며
유미르를 통제하려는 지크가 달려왔음.)
2) 부전의 맹세 중 시조의 힘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권을 벗어난 계승자,
즉 엘런으로부터 자유권을 부여받음.
이때는 유미르가 인과에 묶이지 않고
처음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내린 순간임.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했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묶인 에렌.)
하는 김에 정리할 얘기지만,
엘런의 테마인 [자유와 구속]은
종미의 거인이 된 순간에서도,
다른 지성 거인들과 엘디아인에게
자유권을 허락하는 엘런만의 원칙임.
본인을 추적하던 땅울림 저지도 방치하고,
애초에 조종 가능한 무지성 거인들이나
얼마든지 기억 등을 조작할 수 있는
평범한 엘디아인들은 손도 안 댔음.
(결말부에서 대지의 악마는 급하게
주변의 거인들을 조작한 바 있음.)
즉, 자유권 보장은 엘런의 절대원칙임.
(*잘 보면 유미르가 웃고 있다.)
3) 미카사로부터 인과의 틀 안에서도
속박되지 않고 실존을 지키는,
주체적인 사랑의 형태를 목격함.
결국 부조리의 인과에 얽매인 유미르는
천출인 점은 말할 것도 없고, 사랑에서도
실존을 선택하는 자유권이 박탈되었으나
평온을 꿈꾼 칼 프리츠부터 시작해서
간신히 약 110년에 걸친 심리 치료를 받음.
심리 치료라니까 만만해 보일 텐데,
말이 심리 치료지, 실제 철학사에서도
플라톤으로부터 2천 년이 넘게 걸린
[본질과 실존]의 대결 구도를
거인의 섭식이라는 테마로 푼 작품임.
자결한 시조 유미르가 세 딸에게 먹히고
이 섭식의 본능이 모든 거인들에게
그대로 유전되어 끝까지 거듭됐으며,
부모가 자식에게 먹히는 비극부터
'좌표'를 통해 오직 노예적인
봉사에만 기댄 2천 년의 폭력을
간신히 종결시킨 대서사라고.
2)와 3)은 그래도 납득이 쉽겠으나,
1)은 2천 년의 세월에서 고작
110년 정도밖에 안 된 사건이라서
갸우뚱할 수 있는데, 부전의 맹세보다는
프리츠 왕가로부터의 오랜 역사가
유미르를 속박한 1900 년의 족쇄임.
부전의 맹세를 한 칼 프리츠 이전까지는
그저 시조 거인의 힘을 행사하기에 바빴고,
말이 파라디 섬의 원흉이지, 그래도
그 막장 집안에서 처음으로 증오의 연쇄를
이탈하려던 사람다운 사람이 칼 프리츠니까.
그래서 1)에서 맺힌 부전의 맹세가
부작용을 달기는 했어도 서사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었음.
사샤의 아버지가 가비를 용서한 것처럼,
처음으로 '증오의 숲'을 벗어난 게
칼 프리츠의 파라디 섬 이주니까.
하지만 시조 유미르는 날 때부터 노예로,
가족들은 살해되고, 키우던 가축들에게
동정심을 품어 방사시켰을 때에도
처벌을 받는 등 무엇도 허락된 바 없는
오직 족쇄와 구속만 향유한 인물이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츠를 사랑하여
세 딸을 낳고, 남편이 첩이나 측실들과
눈 앞에서 불륜하는 일까지도 묵인했는데,
그런 놈 대신 투창을 맞아줬건만
다시 일어나 노예로 일하라는 일갈에
자신의 사랑에 대해 의구심을 품어
실존마저 박탈됐다는 심상에 자결했지.
자신은 프리츠에게 사랑을 줬는데
프리츠는 자신에게 지배만을 줬으니까.
그래, [본질과 실존].
이는 서양철학사에서 2천 년을 넘게
그 중심축으로 작용한 핵심개념임.
세상 만물에는 그것을 '있게 만든'
근원적인 관념적 성질이 존재함.
가령, 의자는 앉을 수 있는 성질,
온갖 필기구에는 쓰고 그리는 성질 등..
플라톤의 이데아가 대표적인 예시임.
(*파라디 섬에 이주하자 엘디아인의
기억을 조작하는 시조 거인의 '외침'.)
그리고 이게 진격의 거인에서는
대지의 악마와 계약하여 얻은
유미르의 시조의 힘인 거고.
인과론적 결정론은 물론이요,
엘디아인에의 기억 조작이나
무엇보다도 모든 거인에의 지배력..
문제는 이런 본질을 따르는
본질주의가 인과론과 얽히면
운명론이나 결정론에 묶인다는 점.
특히 이 작품은 인과론적 결정론을
거의 절대적인 원칙으로 지켰음.
(그래서 시간선도 하나로 제한.)
(*마레 대륙에 남은 엘디아인들은
비밀 결사를 만들어 내란을 책동했음.
위 짤은 에렌의 부친인 그리샤의 가입 당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뭘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인과의 나선에,
증오의 연쇄가 거듭되면서
원인을 짚을 수 없는 함정에 빠짐.
부모의 복수심에 이용된 라이너와 지크,
엘디아인 복권을 바란 그리샤와 다이나..
아니, 뭐 셀 수도 없다.
그냥 모든 등장인물들이
인과의 함정에 묶인 존재들임.
그래서 엘런은 [자유]를 바랐음에도
그런 갈망마저 어머니의 희생이나
아버지로부터의 거인 계승으로
유미르처럼 인과에 [구속]되었음.
근데 인과론의 함정이 뭔지 감이 옴?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원칙이라면서
끝도 없이 최초의 원인을 찾아
아무 득실도 없는 소급만 한다는 점임.
처음 인지한 원인이 있다면,
다시 이걸 결과로 놓고 그 원인을
파악하려고 소급해야 하고,
또 소급하고, 그리고 또 소급하고..
대지의 악마가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그럼 얘는 또 어디서 왔다고 할 건데?
해저까지 땅 파가면서 고고학 사업하게?
그리고 이게 아니더라도 엘디아인들은
이미 정복사업을 벌이고 있던 국가였음.
즉, 증오의 연쇄는 이미 있었는데
거기에 땅벌레 한 마리 끼얹었을 뿐임.
그래서 벗어나야만 한다!
사샤 아버지가 말한 숲은 물론,
인과론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됐더라도
무슨 수를 써서든 해답을 찾아야 함.
그 해답은 본질의 대척점인
[실존]에서 찾을 수 있음.
실존은 건조하게 '지금, 여기에 있음.'
-이라는 존재의 현상태를 뜻하지만,
이를 인간의 존재론으로 끌고 오면
본질을 규명할 수 없는 인생사에
어떤 것이든 선택해도 좋다는 선택권임.
지크가 생명의 본능은 '증식'이고,
'엘디아인의 증식'을 원인으로 보아
민족을 절멸하는 '안락사 계획'을 획책했던가?
그런 지크가 납치된 아르민을
좌표에서 만나며 대화를 시작하고,
증식이라는 본질에 묶였다는 말에
아르민은 웬 낙엽을 주워 든다.
아르민이 엘런, 미카사와 함께
그저 나무를 향해 뛰어가는 게
좋았더라는 얘기를 하자..
아르민이 주워 든 낙엽을
지크는 야구공으로 인지한다.
지크 예거는 부모를 밀고한 때부터
본인도 인과에 구속된 죄수였으나,
그럼에도 멘토인 톰 쿠사바와
캐치볼하던 추억을 떠올림.
해야 할 이유라고는 없는 캐치볼을,
그저 무료한 시간을 죽일 뿐인 일을
왜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애착했을까?
심지어 짐승 거인을 계승하고서
주력 전술로 투구를 쓰면서까지?
이유가 없다. 무슨 공일지,
어느 손으로, 어떤 폼으로 던질지,
누구와 캐치볼 약속을 잡을지,
심지어 이를 애착하게된 원인마저
고민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저 그렇게 놓여 있을 뿐임.
(*요리사 니콜로는 마레인 포로였으나
음식을 맛나게 먹어줬다는 이유로
엘디아인인 사샤에게 호감을 품었음.)
달리기, 공 던지기, 술 마시기,
음식 나눠주기, 글 쓰기,
낚시하기, 나무 심기..
그냥 그러고픈 마음이 들었기에
자유로이 선택하면 그만이다.
여기에서 오는 실존감에 취해
고통이나 고난을 내려놓고 그저
세상에 내던져진 참에 할 일일 뿐이다.
어떤 분별심에도 얽매이지 않음.
인간은 어쨋든 실존하기에
괜한 인과에만 몰두하고는
정답이 없는 시험지나 붙들면
그때부터 머리를 움켜쥔 채로
구속됐다는 심상에 빠질 뿐임.
(*영상 링크 : https://youtu.be/Twf0vQ0wVZM?si=ypaxt3HTVMxHqynD)
실제의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는
그래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했지.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처럼
인간은 본질은 규명하지 못 하는데
그럼에도 실존을 얼마든지 향유하니까.
세상 온갖 만물들 중
특히 도구들은 그 기능성에
*본질이 있다고 할 테지만,
인간의 존재는 그렇지 않음.
(*의자는 앉기, 선반은 물건 올리기 등..)
그래서 지크는 아르민에게서
달리기의 추억이 담긴 낙엽을 보고,
본인은 전혀 상관없는 야구공을
캐치볼의 추억으로 연상한 것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증식'에 대한
본인의 고집스러운 집착을 내려놓음.
이제까지 인류는 기계적인 증식으로
존재의 근간이랄 것도 없이
벌레처럼 늘어나 서로 투쟁했지만,
실존에 대해 깨닫자마자 땅울림을
멈춰야만 한다는 해답에 도달함.
이때, 곧장 이어지는 장면에서
지크는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고
리바이에게 목을 기꺼이 내놓는다.
당연히 리바이도 이 의도를 알고는
무려 엘빈의 유언을 지켰음에도
표정이 썩 시원하지 않던 것.
물론 이 구도는 다른 인물들도
모두 적용할 수 있는 것임.
(*여성형 거인을 계승하여
파라디 섬 침투와 시조 탈환 작전에
투입되는 애니, 그리고 이를 후회하는 부친.)
본인이 사로잡힌 특정한 사유가
집착으로 비화된 뒤부터는,
거기에만 매몰되어 삶의 이유를
온갖 불분명한 [본질]이라 착각한다.
나는 복수해야만 해,
나는 귀향해야만 해,
나는 성취해야만 해,
나는 복종해야만 해..
하지만 이런 믿음 중 어느 것도
절대 '나'의 본질을 구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건 애초에 없었으니까.
그야, 수천 년을 온갖 철학사와
종교사에서 [본질]을 믿고 따랐는데
규명을 못 한 꼴만 봐도 답이 나오잖음?
원인이나 이유가 정말 부재한다는 게 아님.
누군가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준 계기는
그야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지.
그러나 특정한 원인에 가치판단을 덧씌워
집착에 빠지면 스스로의 사유에 갇혀서
누구도 구해줄 수 없는 감옥을 만든다.
누가 시킨 적도 없기에, 그것도 제 손으로!
유미르에게는 인과, 엘런에게는 자유,
아르민에게는 탐구심, 미카사는 사랑,
마레의 전사대 인물들은 애민정신,
엘디아 복권파 선동자들은 보상심리..
작가는 이걸 피자 위 토핑처럼
작품 안에 그냥 흩뿌리지 않고,
주인공 엘런에게 특별히 신경 써서
그의 모든 행적을 인과에 묶고는
스스로의 의지로 친모를 죽이고,
아버지를 씹어 삼키고, 친구를 실망시키고..
아무 인연도 없던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도 않은 학살로 사과하게 만듦.
찾다 보면 이 작품에서는 인과를
참 잔인하지만 치밀한 미로 감옥으로 표현함.
조사병단이 슬슬 '벽 밖'을 예감하던 당시,
아직 정체를 들키지 않은 라이너는
히스토리아에게 술로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훗날 그 자리에서 거인들에게 포위된
어느 조사병단의 단원은 절망만이 남자
평소 즐기던 술을 우연찮게 발견하고는
기쁨에 술병부터 집어 들었다.
그러나 히스토리아가 이미
라이너에게 술을 부어줬기에
당연히 술병은 비어 있었음.
너무 잔인하지 않나?
저 조사병단원은 마지막 실존을 즐길
우연찮은 천운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마저도 박탈당하고 절망하며 죽었잖아.
그것도 치료가 필요없는 라이너에게
소독용으로 술을 부어버린 바람에.
당연히 본인도 그 상황이 부조리하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뿐이었음.
본질에 집착해도 문제가 되지만,
이를 벗어던지고 실존을 바라도
언제나 실존이 허락되지는 않음.
그래서 미카사의 역할이 중요했다.
에렌도 시조 유미르가 만나려는
진짜 대상이 미카사인 걸 알았고.
결국 미카사는 사랑의 노예였지만,
그럼에도 엘런에의 사랑을 지키고
부디 잊어달라는 거짓 부탁까지 꿰뚫어
죽은 후에는 엘런의 곁에 묻혔음.
자신이 죽거든 그냥 잊어달라는
마음에도 없는 엘런의 부탁은,
처음 머플러를 둘러주고 아무 이유나
대가도 바라지 않고 손길을 내민
그날부터 지켜질 리가 없었다.
해서 미카사는 엘런과의 사랑의 결실을
인과의 틀로부터 거부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선택했다.
실존주의의 뿌리로 여겨지는 니체가
운명을 사랑하라고 했던가?
여기에는 접속사가 하나 더 있어야 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존주의가 무슨 만만한 희망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리 말랑한 철학 사조는 절대 아님.
어떤 부조리가 불현듯 나타나
내 삶의 지탱감을 무너뜨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나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의 지탱감을 거두면 안 됨.
아무리 가혹해도 주관을 지켜야 함.
미카사는 엘런이 학살극을 벌여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그의 목을 베었지만, 그것이
사랑에 대한 포기나 절망은 아니었음.
마찬가지로 엘런의 경우는
미래까지 볼 수 있었으면서,
게다가 미카사에게 죽을 것을
미리 알아 마지막 순간에는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보지만,
그 모든 일이 소중한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기 위함이었음.
인과라는 감옥 안에서도
엘런은 자유를 추구했고,
미카사는 그런 그를 존중한 셈.
단지, 이 둘을 둘러싼 인과의 끔찍한
틀이 저런 부조리를 낳았을 뿐임.
그래서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은
각자의 방식으로 유미르에게
심리적 해방을 선물했으며,
그런 유미르는 마지막으로
사랑을 등진 걸인 프리츠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을 주었어야 할,
그리고 친모의 유해를 섭식하는
'비극을 겪지 않은' 세 딸을 껴안아준다.
미카사로부터, 사랑을 꺾일지언정
오히려 사랑을 줌으로써라도
실존을 지켜야 함을 깨달았으니까.
그녀의 진짜 족쇄는 천출도 아니고,
잘못 만난 남편의 폭압도 아니고,
그저 본인의 마음 한 켠에 있었음을
무려 2천 년 넘는 세월 만에 배운 셈.
하지만 작가 양반은 이걸로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 건지
이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후에는
결국 모든 문명을 초기화하는
종말적인 핵전쟁을 보여준 뒤에
다시 이런 장면을 보여준다.
시조 유미르는 사냥꾼들에게 쫓겨
도망치듯이 악마가 잠든 옹이구멍에
빠져서 그 모든 비극을 맛봤지만,
마지막 방랑자는 반려견과 함께
탐사를 나왔다가 호기심을 안고
엘런의 유해가 있던 옹이구멍에 들어가지.
즉, 이 방랑자는 '자유로이 선택'했음.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의미는
유미르와 다르게 스스로의 선택으로,
마치 조사병단이 벽 밖에 품던
호기심과 경외심을 부리듯이
대지의 악마를 만나는 거지.
작가는 여기서 '과연 노예적인
복종만을 강요받던 유미르와 다르게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끌린다면
이 서사는 어떻게 흐를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 셈.
(*처음으로 거인화한 시조 유미르.)
유미르에게서 유래된 [원인과 결과]는
[지배와 복종]에 시달린 2천 년이었지만,
저 방랑자의 [자유와 구속]의 연쇄에서
과연 어떤 맥락을 취하게 되는 걸까?
(인증샷!)
자, 이렇게 영화 리뷰를 마쳤음.
논란도 참 많았고, 그에 반해
원작은 팬들이 떨어져 나간 부분이
하필 작품의 허리춤에 걸친 바람에(..)
제대로 갈무리되지 않은 낭설로
자꾸 이상한 소리들이 나오곤 했는데,
극장판이라도 잘 나와서 참 다행이네.
근데 아직도 궁금하네.
남자 엘디아인이 여성형 거인을 계승하면
그것도 암컷 타락이라고 볼 수 있나?
외형은 여성형으로 발현되긴 할 거잖아?
내가 본대는 처음에 쿠키 있다고 알려줘서 좋더라
진짜 3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본 잘 만든 영화였어
거밍아웃은 저 상태에서 또 여성형 거인마냥 추리극을 벌였다가는 얼마나 연재가
늘어질지 몰라 나온 작가의 고육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음. 물론 그래도 작가 편의주의로
해결했다는 비난을 받기 충분한 부분.
뭐, 다른 한편으로는 에렌을 통해 '힘을 가질 자격이 없는 자가 모든 걸 결정한 힘을 가진다면
어떤 결과를 내놓는가'도 주제 중 하나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함.
그나마 애니에서 어느 정도 연출을 커버해줘서 마지막 장면도 원작은 같은 비극이 반복되는
시작으로 보인다면, 애니는 그래도 저 소년을 통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거냐?'란 물음을
던져줬다고 생각함.
내가 본대는 처음에 쿠키 있다고 알려줘서 좋더라
진짜 3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본 잘 만든 영화였어
메가박스 독점이라 다 똑같은 버전일 걸?
거 잘 쓰다가 마지막이 왜 그래...
훌륭한 영화였음 괜히 이미 제작년에 나온 4기의 총집편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있더라
보니까 관객수 벌써 50만명도 더 넘었네
진짜 놀라웠던 점 - 작중 중앙에 크게 중요한 장면 강조하는거 나올때 자막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치우쳐져서 내줌
와 이거 진짜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