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이라는 말이 있다
뭐 어려운거 다 집어치우고 간단히 말하면
"통치 정당성"이라고 할 수 있다
통치자가 통치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근거
그것이 정통성이다
알다시피 인류 사회는 사회적인 계약에 의해 이루어졌다
비록 시간이 흐르면서 그 사회적 계약은 점점 퇴색되고 신분제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식했다고 하는 것 같다
뭐 이것도 낡은거긴 한데 그건 일단 넘어가자
이에 의하면, 사회라는 시스템은
개인들이 서로 역할을 분배하는 것에서 발전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고
국가라는 시스템 또한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나라가 새로 세워질 때마다 그 분배를 새로 할 수 없다는 점이고
그렇다고 분배를 안하면 국가의 정통성이 떨어지고, 그 말은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며
이는 사회 전체의 불안을 의미한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창업군주들이 꼼수를 사용했다
바로 "나라를 '새로' 세우지 않는다"는 방법이다
자세히 알아보자
태초에 로마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태초까진 아니긴 한데 중세인 입장에서 보면 태초죠?
로마는 아주 막강한 힘을 지니고서 오랫동안 유지되었기 때문에
중세가 시작되는 5세기 무렵에는, 로마가 있는게 당연한 수준이었고
이는 다시 말해, 로마가 지배하는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훈족과 게르만족의 환장의 콜라보로
서로마(로마 제국의 서방 영토)가 "펑" 해버린다
물론 당연히 이게 한 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고
서서히 영토를 잃다가 마침내 서로마의 제관이 동로마로 반납되었다, 라고 한다
그렇다고 지중해 서부 세계라던가, 갈리아, 브리타니아의 사회가 붕괴되고 밑바닥부터 사회 계약을 다시 쌓을 리가 없고
일부 힘있는 자들이 로마의 관직을 자처하면서 통치했다
즉, 멸망한 서로마의 관직을 자처함으로써, 정통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것이 나중에 발전해서 중세 유럽의 봉건제가 되니, 이 때의 형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문제도 안고 있었는데
바로 로마 제국이 멀쩡히 살아있었다는 점이다
현재 역사에서 동로마, 비잔티움이라고 칭하는 나라는 당대에 누구나 모두가 "로마 제국"이라고 칭했다
그 국체가 고대 로마로부터 이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서부의 게르만 통치자들은 전부 로마의 관직을 자처하고 있었으니
그들은 모두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는 형태가 된다
이 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동로마는 당시(대충 카롤루스 대제 시점 이래) 서유럽에까지 행정력을 뻗칠 여력이 없었다
서로마 멸망 이후 로마의 최대 판도가 이 정도
브리타니아(영국)나 게르마니아(독일)는 커녕, 갈리아(프랑스), 히스파니아(이베리아, 스페인)에도 힘이 다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군주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으면서, 신하로서의 역할은 요구되어버린다
이러한 모순에서인지, 아니면 지 대가리 위에 누가 있다는게 단순히 꼬왔는지
뭐 동로마가 하도 패악질을 부려서라는 것도 크다지만
어쨌든 서부의 군주들은 항상 동로마를 싫어했다
그리고 마참내!
위대한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크에 강림하고
카롤루스 대제는 (구) 서부 로마 제국 영토를 통일하다시피 한다
게르마니아, 현재의 독일 지역을 보면 오히려 로마 제국 시절 영토를 넘어섰다
뭐어 이 때도 이베리아 반도는 터치도 못했긴 한데
한창 전성기였던 무슬림들이 이베리아로 쳐들어와서, 그걸 몰아내고 정복해봐야 큰 메리트가 아니었던게 아닐까?
당시 프랑스 지역만 해도 행정력이 다 안미쳐서, 9세기 말엽에 노르망디 지역을 바이킹한테 분봉할 정도였으니
이렇게 강대한 힘을 가지고도, 이빨 빠진 호랑이인 로마(사실 동방 세력 막아주는 방파제)에게 빌빌 기는게 싫었던 카롤루스 대제와 프랑크 귀족들
그리고 교구 지원도 제대로 못해주는 주제에 서임권이니 뭐니 이래라 저래라 하는 로마 황제가 띠꺼웠던 로마 대주교(교황)
이들의 이해가 맞물려, 카롤루스 대제는 서로마 황제로서 대관을 받는다
그런데 또!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왕권이 스스로 정통성을 가진 것이 아니라, 교황, 즉 종교 세력에 의해서 정통성을 가지면서
이후 종교 세력이 왕권에 개입할 여지가 생겨버렸다
물론 당시 유럽 세계가 워낙 기독교를 기반으로 했던 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기독교가 황제조차 모욕하는 사상 최강의 권력을 보여준 것은 이 점이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후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을 세우는데
이 때에도 그냥 제국을 세운 것이 아니라
카롤루스 대제의 서로마 제국(= 프랑크 제국 = 신성 로마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한다
이 아저씨의 정통성도 재밌는데
잉글랜드에도 카롤루스 급으로 개쩌는 아저씨가 있었다
당시 서구 세계에 안털어먹는 곳이 없는 바이킹들을 상대로
잉글랜드의 절반을 지켜내고 마침내 잉글랜드 전체를 수복할 기반을 지켜낸 아저씨
알프레드 대왕님이시다
이후 그의 후예가 바이킹을 몰아내고 잉글랜드를 통일하지만
그 바이킹의 후예가 다시 쳐들어오는 사이 시간차 공격에 나라를 잃고 만다
그게 바로 11세기의 존나 쎈 아저씨, 정복왕 윌리엄 1세이다
이 아저씨가 유년기 즈음에, 1016~1035년쯤으로 추정되는 시기
영국의 참회왕 에드워드가 이 아저씨가 있는 노르망디로 망명을 왔다
위에서 말한 "바이킹의 후예가 다시 쳐들어"온 시기이다
이 때 에드워드 왕과 윌리엄 사이에 친분이 있었고, 윌리엄의 주장으로는 에드워드가 그를 상속자로 지정했다고 한다
교차검증이 안되는 만큼, 현대에는 주작으로 추측되고 있다
뭐 근데 어쨌든, 주작으로라도 그 명분이 어쨌든 있으니까, 윌리엄은 잉글랜드로 쳐들어가고
신이 돕기라도 했는지, 백도어가 돼서 이긴다
물론 자기 능력도 뛰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를 정리하면
존나 쎈 아저씨가 능력도 빽도 쩔어서 반쯤 자수성가로 왕국까지 ㄸㅁ었다
그리고 그 왕국도 직접 안정시켰다
그리고 그 후예가 왕국을 잃지 않고 계속 통치했다
게다가 플랜태저넷 왕조에 오면 위에 얘기한 알프레드 대왕의 혈통도 합쳐지면서
혈통상의 정통성이 어마어마해지고
이것이 현대까지 이어져서 영국 왕실의 정통성이 되고 있다
문제는 그 정통성이 유명무실한 시대가 됐는데
그 정통성이 있어도 욕먹을 짓거리들을 했다는 거지
이쯤에서 동양으로 가보면
중국은 대대로 삼황오제의 후계자를 자칭하였고
요순시대에 확립된 정통성을 계승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래서 삼국지 속의 많은 영웅들도
자기가 직접 왕이 되지 않고, 기존에 있던 나라에 충성을 바치는 형태를 취하였다
쬬 또한 실질적으로는 아닐지언정, 한나라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는 형태를 취했고
인간성 ㅈ박은 조비도, 강요하긴 했지만, 헌제에게 선양받는 형태로 즉위해서,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위나라를 건국했다
이는 그 정통성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 고조 이연 또한 비슷한데
수나라의 관직들을 꿰차면서 정권을 장악하고
마침내 왕좌를 선양받는 형태로 당나라를 세운다
한반도 또한 다르지 않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정권도 군권도 장악하고 있었고 왕을 폐위하고 새 왕을 앉힐 수도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가
왕대비 안씨가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감록국사로 봉하고
감록국사가 왕으로 즉위하면서 조선이 건국된다
또한 조선을 세우고도 바로 왕을 칭하지 않았는데
이는 고려 태조 왕건이 건국한 이후, 중국의 승인을 받고서야 국왕을 칭한 것에서 유래했고
승인을 받으려고 보내는 문서에도 "권지고려국사"라고 적었다고 한다
이는 조선이 고려를 계승했다는 상징성이 되고, 나아가 정통성이 된다
이외에도 많이들 이런 형태를 취했고
이를 이왕삼각이라고 칭하며
그렇기에 혈통이 이어지지 않은 선대 왕들의 제사 또한 지낸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또한, 청나라 마지막 황제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만주족 대표로 선출되었고
이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권한이 전국인민대표대회로 넘어가면서
그 정통성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군주정과 공화정 사이에 정통성이 이어질 이유가 있나 싶긴 한데 아무튼
이렇듯, 군주정의 정통성은
사회 계약을 물려받는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 물려받은 사람에게서 다시 물려받는 것이 중요하고
다시 그렇기에, 물려받기로 정해졌던 사람이 물려받는 것이 중요했다
현대 민주정으로 비유한다면
"물려받기로 정해졌던 사람"이란 선거로 뽑힌 사람을 의미한다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민주정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명제가 된 것이고
통치에 발언권이 있는 귀족들 사이에서 찬성투표의 형태를 취했다고도 볼 수 있다
군주정 치하에서의 반정은 민주정의 탄핵과 같은 성격이다
군주의 통치 능력에 의심이 가거나, 통치 이념에 어긋나는 통치를 했을 경우에 반정이 일어난다
이는 동양 뿐만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비슷했고, 실제로 그런 이유에서 퇴위된 왕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위에 언급한 카롤루스 대제의 부계 혈통이 강제 퇴위되고 모계 혈통이 추대된 경우가 있다
군주정 치하의 반란은 민주정 치하의 쿠데타와 같은 성격이다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앞선 왕조로부터 인계받는 형태롤 취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더라도 민주주의의 형태를 취한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아니지만
단종은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어마어마한 정통성을 가졌다
단종은 세종 재위 당시에 장손으로 출생하였기에, 후계자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책봉되지는 않았지만) 세손으로 태어나서 세자가 되고 다시 왕이 되었다는 것은
위에 설명한 것들에 따라서 어마어마한 정통성이 된다
나이가 어린 것은 정통성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당장 위에 윌리엄 1세가 더 어린 나이에 즉위해서 혼자서 작위를 되찾았다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건 유럽 봉건제의 특성과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족의 특성에서 벌어진 일이라 봐야한다
프랑스의 필리프 1세도 단종보다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멀쩡히 장성했다
근세에 러시아의 표트르 1세 또한 단종보다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장성해서 위업을 세웠다
더 안정적인 당시 조선에서, 단종이 실책을 하지만 않으면 장성할 때까지 왕좌를 멀쩡히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신하들 중에 능력있는 자들도 많았으니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고, 수렴청정할 사람이 있었다면 더더욱 가능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능력을 물려받았다면, 장성해서 선정을 펼쳤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때 삼촌이 나타났다
이새끼는 정통성 쌉오지는 조카를 몰아내고 올라간데다
잘못이라고는 없는 조카를 죽이기까지 했다
여러 의미로 정통성이 밀린다
계유정난이 반정이 아니라 "난"인 이유가 있다
이방원도 난으로 올라갔는데 뭐가 문제냐 할 수 있는데, 이방원이 난으로 몰아낸 것은 아버지고, 자기가 직접 왕으로 올라가지도 않았다
애초에 왕자의 난의 원인 또한, 공을 직접 세우지도 않았고 장자도 아닌데다 어린 막내아들을 후계자로 삼은 데에 있다
또 이방원은 아버지의 즉위에 큰 공을 세웠고, 그것이 나라의 안정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형 정종이 적자를 보지 못했고, 그 아래 형인 회안대군이 난을 일으켰다가 ㅈ됐다
어쩄든 일단 형식적으로나마 안정적이며 근거있는 승계가 이루어졌다는 것
그리고 이방원은 외척들을 숙청하면서 왕권을 안정시키는 등, 치세 중 조선 왕실에 대해 이바지한 바도 크지만
이새끼는 그것도 딱히 없다
집현전을 폐지하고 유능한 신하들을 효수하기도 했다
세종, 문종이 만들어둔 우수한 시스템을 다 부숴버린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실책이 많고 그 영향이 조선 내내 지속되기도 한다
그냥 개1새끼다
공납을 개선하긴 했는데, 그 아들놈이 도로 조져놨다
이새끼가 잘한거라고는 즉위하자마자 육전상정소 설치해서 통일 법전 편찬한거, 즉 경국대전밖에 없다
그나마도 그 경국대전에다가 일천즉천, 한 번 천민은 계속 천민이라고 박아놔서 영조까지 가서야 겨우 개선됐다
이거 하나 바꾸자고 하던 사람들이 귀양가기도 했다
그냥 씹1새끼다
글을 쓰기 시작한 목적(개씹1새끼 욕하기)을 이뤘으니
글을 여기서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