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대문호 루쉰은 삼국지 연의를 단순한 통속 소설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도 화용도 장면만큼은 높게 평가한 바 있는데
그도 그럴 게 화용도 장면은 비교적 즉흥적이고 단순한 구조로 전개가 되는 고전 소설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초반부터 여러 단계에 걸쳐 빌드업이 된 걸 최종적으로 승화시키는 장면임
1. 우선 연의 초반의 명장면인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나관중의 창작인 이 장면에서 관우에게 데운 술을 권하는 게 조조인데
이 장면을 통해서 향후 전개에서 조조가 관우에 대해 흠모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는 것에 대해 설득력을 부여
2. 이후 이래저래해서 유비가 서주에서 조조에게 패한 뒤 하비에서 고립되었다가 조조에게 항복 후 의탁하게 되면서
이래저래 관우의 환심을 사기 위한 조조의 노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님을 향한 충절이 변하지 않는 관우의 모습이 묘사되는데
이런 장면을 통해 관우는 충의지사로서의 면모가 크게 강조되고,
조조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면모가 있는 입체성 있는 악역으로서 캐릭터의 매력을 끌어내는 한편
두 사람의 관계는 기묘하지만 그렇기에 유비와 관우의 관계와는 또 다른 형태로 굉장히 특별한 관계라고 독자들이 인식하게 됨
3. 여포 토벌 후 관우가 조조에게 장료를 살려달라고 부탁해서 장료가 목숨을 건지게 되고
이후 관우가 하비에서 고립되었을 때 반대로 장료가 관우에게 항복을 설득하는 역할로 오는 등 두 사람의 관계가 강조되고
관우가 조조에게 의탁한 이후에는 그런 장료나 그 외 서황 같은 장수들과 사적인 친분을 맺는 것도
화용도 장면에서 결정적이지는 않지만 약하게나마 관우의 마음을 움직인 요소라 이것 역시도 약하게나마 복선으로 작용
4. 그 다음으로 역시나 연의의 유명 장면인 관우의 오관육참장
마찬가지로 연의의 창작인 이 장면은 관우의 무예와 충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면인데
찬찬히 뜯어보면 관우는 '가까운 길 두고 일부러 멀리 돌아가면서 정당하게 통행패를 요구하는 공무원들을 참살하는 미친 연쇄 살인마'가 되지만
이런 고증적인 무리수에도 불구하고 이 에피소드는 단순히 관우 띄우기로 끝나지 않음
원래 관우는 "이미 안량과 문추를 베었기 때문에 조조에게 입은 은혜는 모두 갚았다"고 생각해서 홀가분하게 미련 없이 조조를 떠나는 거라서
만약에 이 오관육참장이 없었으면 화용도 장면이 성립할 수가 없는데
이 오관육참장에서 조조가 관문을 지키던 장수들을 베어버린 걸 쿨하게 용서해주고 관우를 보내줌으로써
악역인 조조의 캐릭터의 입체성을 강화하는 한편 관우가 조조에게 새로운 빚을 지게 되면서,
그리고 이 빚은 갚지 못한 채 조조를 떠나게 되면서 화용도 장면을 향한 커다란 복선을 남김
정말 작품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 관우와 조조의 관계성을 빌드업하고 큰 복선까지 깔아 놓은 것을
삼국지의 하이라이트인 적벽대전, 그 적벽대전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면에서 빵 하고 터뜨려서 승화시키는데
심지어 이 화용도 장면을 위한 빌드업에 해당하는 장면들이 단순히 빌드업을 위해 깔아놓는 재미없는 장면이 아니라
화웅 참살이나 오관육참장이라는 연의에서 손꼽히게 재미있으면서 임팩트도 강한 명장면들이기까지 함
재미와 캐릭터성 강화, 빌드업, 복선 설치라는 여러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내는 이 미친 구성은
창작 기법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의 작가들도 쉽게 하기 힘든 건데 대략 500여년전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시기에 나온 고전 소설들의 구성을 생각하면
나관중의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은 정말 역대급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을 것 같긴 해
남자의 로망이 집대성된 파트
아직까지도 삼국지로 이야기 꽃을 필 수 있는게 이런거 때문 아니겠나 싶음
연의기반으로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짰음
rnrth40
2025/01/21 01:39
남자의 로망이 집대성된 파트
돌격강등하트!
2025/01/21 01:40
아직까지도 삼국지로 이야기 꽃을 필 수 있는게 이런거 때문 아니겠나 싶음
연의기반으로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를 잘짰음
보드카🍸
2025/01/21 01:40
수호지가 저런 뽕맛이 좀 부족하지
메데탸🎣🌲⚒🐚🎤👑
2025/01/21 01:40
빌드업을 쌓는데 그 빌드업이 명장면이기까지 하다
이거 쉽지 않음
하루국시
2025/01/21 01:41
그러니 2000년 넘게 동북아 문화권에 깊게 각인됐지
루리웹-4264787379
2025/01/21 01:41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