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읏.』
물기를 머금어
매끈한 터널을 질주하며
벤조는 이를 악물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부하 넷이 당하고
그 역시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대장!』
절뚝이며 따라오던 부하가 쓰러졌다.
그러나
턱밑까지 추격해온 특수대원들 때문에
수습할 여력이 없었다.
『거기서 시간 끌어.』
『네? 넷!』
10억 달러 입금에 고무되어
약간의 방심을 했던 것이 컸다.
그래도
벤조는
광장의 인질들을 볼모로 삼으면
다시 저들을 물릴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전력으로 달려
남은 부하 십여 명과
지하 광장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이건 뭐야?』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있었기에
벤조는
일순 다른 곳을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손을 휘저어
연기를 밀어내려 해도
마치 허공에 그물망이라도 쳐놓은 것마냥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닥은커녕
본인의 손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극악인 가운데,
뒤쪽에서 총격음이 들려왔다.
시간을 끌고 있는 부하의 AK 발사음이었다.
『어쩝니까 대장?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정찰 경계하면서 진입해.
간격 가깝게 유지하고.』
벤조의 음성에
부하 하나가 선두에서 앞서 나갔다.
고작 1m 떨어졌을 뿐인데
부하의 등조차 어렴풋하게 보였다.
지이익―
한동안 전진하던 벤조는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와 고무 타는 냄새가 느껴져
멈칫했다.
『으아아악!』
앞서가던 부하가
비명을 지르며 물러섰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그에게
벤조가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바, 발이······.』
벤조는
불꽃이 달라붙어 타들어 가는 군화를 보며
눈이 커졌다.
- 전원 무기 버리고 항복하세요.
이곳은
이제 제 구역이니까.
그리고
메아리처럼 들려온 음성.
벤조는 흠칫해 소리쳤다.
『누구야!』
- 그건
그쪽이 알아내야 할 우선순위가 아니에요.
지금 부하 발에 붙은 불꽃부터 신경 쓰세요.
저게
알래스카 빙하도 녹이는
특수 화합물이거든요.
잘 안 꺼지는.
뭐라더라, 네이팜 탄?
이 소리에
발에 화상을 입고 허우적거리는 부하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벤조의 손이 얼어붙은듯 굳어졌다.
뒤편의 부하가
벤조의 옆으로 다가서며 외쳤다.
『넌 뭐야! 감히 어디서 협박···』
소총을 들어 올리려던 순간,
쐐엑! 하는 바람이
그 부하를 휩쓸고 사라졌다.
벤조는
연기 사이로
일직선으로 길이 뚫리며
터널 벽에 처박히고 만 부하를 보고
ㅅㅇ을 삼켰다.
잠시 보였던 시야가
몰려든 연기에 다시 차단됐다.
- 경고는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더 진입하려 들거나 무기를 버리지 않으면,
낙하산 없이 추락하는 기분이 뭔지
확실하게 경험하게 될 거예요.
메아리처럼 들리는 음성이
부드럽게 재촉해왔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시무시했다.
『대체 뭐야 넌!』
- 그게 뭘 그리 궁금하실까.
벤조 당신과
저 방 어디 숨어있는
당신 보스가 하는 짓이 못마땅한 사람이라고 해두죠.
보스까지 알아채고 있는 상대의 음성에
벤조는
등골에 소름이 끼쳐왔다.
『모두 모여!
전면 방향 일제사격 준비해!』
남은 아홉의 부하가 벤조의 옆에 서서 한꺼번에 소총을 들어 올렸다.
- 후회하실 텐데요.
『사격!』
두두두두두―!
아홉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200명이나 모여있는 광장이 근처에 있을 것이기에
누구라도 총에 맞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비명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20여 초의 집중사격이 끝나고,
소음이 잦아든 찰나.
총기의 화력 때문에
근처의 연기가 어느 정도 날아갔기에
벤조는
광장으로 진입하는 터널 전체에
푸른 불꽃의 바다가 펼쳐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언가가 데굴데굴 굴러
툭, 벤조의 발끝에 멈췄다.
콩알만 한 갈색빛 구슬 여러 개가 담겨있는 유리병이었다.
- 한꺼번에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고 있는 건
그거밖에 없었거든요.
유리병 안에 스파크가 일렁였다.
쩌적,
유리병이 깨져나가는 것을 감지한
그때.
벤조의 발밑에서
엄청난 바람이 솟구쳐 올랐다.
쏴아아아아아악―!
일대를 뒤덮은 안개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키리토는
광장 안으로 휘몰아치는
폭풍 같은 바람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벤초와 부하들을 주시했다.
풍압탄 5알에 튕겨 나간 그들이
터널 곳곳에 처박혔다.
대다수는 기절했고
남은 이도
내부의 뼈가 상한 듯
고통에 찬 ㅅㅇ을 흘려댔다.
키리토는
등을 돌려
광장 거주구역에
잔뜩 웅크린 채로 숨어있는 200여 명을 바라보았다.
『다치신 분 있어요?』
바람 폭탄에 이어
안개에
불바다가 된 바닥까지 두루 구경한
그들은
죄다 얼이 빠진 눈으로 키리토를 보고 있었다.
『이제
이 지역 테러범은 다 제압된 거 같아요.
지금 오는 팀은 구출대원이니
안심하세요.』
사람들이 주섬주섬 일어났다.
덜커덩!
환기구 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누군가 튀어나왔다.
손에 소음기가 달린 권총을 든 그는
날렵하게 자세를 낮추고
전방 사격자세를 취하다가
광장의 상황을 대면하고 헛, 하는 ㅅㅇ을 흘렸다.
막 광장에 진입한
GIGN 대원들도
고통에 ㅅㅇ하는 테러범들을 발견하고
말문이 막힌 듯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중앙에서 사람들을 통제 중이던
키리토가
빈스와 눈이 마주쳤다.
『어? 빈스 팀장님?』
『미스터 키리토!』
빈스가 얼른 다가섰다.
그는
곳곳에 제압되어 쓰러져 있는 테러범들을 훑으며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글쎄요······.』
턱을 긁적이는 키리토의 옆으로
‘케임브리지 물리협회 제임스 리’란 이름이 붙은 출입증을 건
한 교수가 다가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뭘요.
어서 이동하세요.
나가시면서 바닥 불꽃 조심하시고요.』
인자하게 생긴 중년 여성이
키리토의 옆으로 걸어왔다.
『미스터 위저드.』
『네? 저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말없이 키리토를 바라보던 중년 여성이
따뜻한 포옹을 건네고
터널로 사라졌다.
이후에도
키리토의 옆을 스치는 이마다
한두 마디씩 감사를 전하자
빈스는
사정을 듣지 않아도
뭔가를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팀장님. 이쪽으로.』
키리토는
일일이 인사를 받아주다가
안 되겠다는 생각에
빈스를 불러 거주구역으로 이동했다.
적외선 시야로도 안이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어느 방을 가리켰다.
『저 안에 제 동료가 붙잡혀 있거든요.
유우키 아스나라고.』
『아직 테러범이 더 있는 겁니까?』
『아마도
벤조보다 높은 직급의 보스 같아요.
부하들이 전부 당하는데도
아까부터
도무지 나오질 않네요.』
앞에다가
풍압탄을 여러 개 뿌려놨기에
보이기만 하면 잡을 수 있을 테지만,
지금은
전혀 기척이 없었다.
『기다려보십시오.』
빈스는
입가에 손가락을 대고 삐익, 휘파람을 불었다.
인질들을 밖으로 유도하고 있던
터널 쪽 GIGN 대원들이
빈스에게 눈을 돌렸다.
잠시 후.
대테러대원이
콘크리트로 단단히 밀봉된 문을 살피고
빈스를 돌아보았다.
『그냥은 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무전으로 연락해서
돌파용 TNT를 가져오라고···』
『잠시만요.』
키리토는
작전회의 중인 그들에게 말했다.
『문 뚫는 거면 제가 가능해요.
3분만 주세요.』
『무슨···어떻게?』
요 30분 사이
‘어떻게’라는 단어를 참 많이 듣는 것 같았다.
『부식 작용제로 무르게 만든 뒤에
날려버릴 예정입니다.』
아스나의 안위가 중요한 이상,
잡다한 설명에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키리토는
강력부식 작용제를 꺼내 문 중앙에 뿌렸다.
녹아들듯 콘트리트에 흡수된 작용제에
주머니를 탈탈 털어
남아있는 화합물을 모조리 뿌렸다.
‘반응성을 더 올려야 해.’
배터리와 함께 손바닥을 문에 붙이고
계속해서 먼지별을 진동시켰다.
“됐어.”
키리토는
무르게 변한 콘크리트에
입구 앞에 뿌려 놓았던 풍압탄을 도로 주워
꽂아 넣은 뒤 물러섰다.
키리토의 행동을 유심히 보고 있던
빈스는
전 과정을 목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리토가 뭘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고개만 갸웃했다.
『곧 터질 거예요.
돌가루 많이 날릴 테니까 안전거리 확보하세요.』
GIGN 대원 두 명이
방탄쉴드를 앞에 대자
남은 대원이
그 뒤로 자세를 낮춰 앉았다.
키리토도
빈스와 같이 쉴드 뒤편에 몸을 웅크렸다.
‘가!’
손을 살짝 뻗어
번개별을 콘크리트 깊숙이 박아넣은 풍압탄에 쏘아 보냈다.
바로 콰직 금이 간 벽.
뒤이어
커다란 폭발음이 일었다.
쿠구구구궁―!
시멘트 덩어리가 무너져 내리며
돌가루가 가득 날리자
터널 밖으로 이동 중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뚫렸어요.』
대테러부대의 대응은 신속했다.
서로를 엄호해 줄 수 있는 간격을 유지한 가운데
지체없이 문 안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제발 무사히 구해 주세요.’
그렇게
여섯의 대원 모두 사격자세를 한 채로
구멍이 난 안쪽에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왜인지
들어갔던 대원들이 뒷걸음치며
도로 걸어 나왔다.
‘어? 왜······.’
먼지가 걷히자
키리토도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키가 180cm 정도 됐을까?
기계장치가 잔뜩 달린 방독면을 착용한 어떤 사내가
똑같이 방독면을 씌운 아스나의 목에 총을 들이댄 채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
https://cohabe.com/sisa/4269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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