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 : 제법 긴 글이라 맨 밑에 3줄요약 있음
한국은 대대로 활을 중시했고, 이 현상은 조선 후기 화승총까지 이어졌음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보병의 80% 가까이가 조총수였을 정도
이러한 현상을 두고 모 위키에서는 '비현실적인 원거리 무기 집착' 이라는 개별 항목까지 만들어가며 조선군의 지나친 활, 조총 의존도를 비판했을 정도
특히 요새는 여기에 대해서 제법 그럴듯한 설명도 등장했는데
'우리나라는 옆나라들에 비하면 체급이 작아서 칼 들고 일대일 맞다이를 까면 숫적으로 너무 불리함! 따라서 죽일 수 있을때 최대한 많이 죽이기 위해 원거리 무기가 발전한 것임!' 이라는 설명임
이거도 꽤 그럴듯하게 들릴 순 있는데... 사실 여기에는 맹점이 하나 있음
'과연 우리나라만 원거리 무기에 집착한 나라인가?' 임
당나라의 육화진법 : 장창이 대거 편제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창 자체가 편성되지 않는 편제도 존재. 그런 경우에는 보병 대부분이 쇠뇌와 활로 무장하며, 적이 접근하면 쇠뇌병이 쇠뇌를 버리고 칼이나 곤봉 등으로 근접전을 하는 형태
(우리나라긴 하지만 일단 조선으로 운을 뗐기 때문에 추가함)고려 : 기록 부족으로 명확한 편제나 병종 비율을 알 수는 없지만, 쇠뇌만으로 무장한 쇠뇌 전문 부대가 존재함. 쇠뇌 부대 중에서는 특히 정예군으로 취급받는 부대 자체가 따로 존재할 정도로 크게 대우받는 편. 물론 궁수도 있다.
고대 아시리아군 : 보병 중 궁수의 비중이 매우 높았으며 창병 등 근접전을 담당하는 병과는 전장을 주도한다기보다는 궁수를 보호하는 역할에 가까움
즉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의외로 활같은 원거리 무기를 보병 무기의 핵심으로 여기고 원거리 무기를 중점적으로 편성한 군대는 조선군 말고도 상당히 많은 편임
게다가 조선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나라들 모두 기병을 중시하는 것까지 비슷함
이게 우연일까?
당나라야 옆나라인 중국이니까 그렇다쳐도, 당나라보다 한참 이전인데다가 위치상으로도 훅 떨어진 서아시아에 자리잡은 아시리아까지 궁수 위주 보병-기병 중심 편제라는 건 뭔가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고대 아시리아가 있었던 서아시아, 당나라가 있었던 중국, 고려~조선이 있었던 한반도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대규모의 유목민족을 이웃으로 두고, 주적으로 두고 있는 나라들이었다는 점임
그렇다면 왜 대규모 유목민족을 주적으로 둔 군대들은 원거리 투사무기를 중심으로 무장해야 했을까?
이건 보병과 유목기병의 전투 양상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음
활 없이 근접전 하는 병사들만 있는 보병들이 유목기병 군대와 마주쳤다고 생각해보자
"적 기병이 달려온다! 장창병 준비!"
"? 돌격 안할건데? 화살 쏘면서 도망다닐 거임"
(화살 공격에 상당한 피해를 봄)
"으앙아 가만히 앉아서 고슴도치가 될 수는 없다! 방패병 앞으로!"
"오 ㅋㅋㅋㅋ 장창 빠질 때만 기다리고 있었음 돌격 앞으로!!!"
(참고로 토탈워 같은 게임에서는 궁기병 경기병 중기병을 칼같이 구분하지만, 유목민족은 활 쏘다가 갑자기 칼 뽑아서 돌격하고 근접전 하다가 뒤돌아서 도망치다가 활 쏘는 등 기병의 역할을 유기적으로 바꿔가며 싸우기 때문에 기병 병종의 구분이 큰 의미가 없을 때가 많음)
"ㅋㅋㅋㅋㅋ 게임 ㅈ같이 하네"
대충 이런 양상으로 전투가 흘러가게 됨
보면 알겠지만, 활 없이는 유목기병에게 공격은커녕 한번 건드려 보는 것조차도 매우 힘들다는 걸 알 수 있음
그렇기 때문에 유목기병을 주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정주민족 군대는 활이나 쇠뇌, 투석 등 원거리 투사병기를 중심으로 편제를 짠 뒤, 수레방벽이나 거마작, 설치형 방패 등을 설치하고 소수의 근접전 부대를 편성하여 투사병기 부대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발전해나간 것
그리고 유목민족 군대는 병사 전원이 기병인 경우가 많아서
얘네를 상대로 싸울 때에는 보병은 그냥 버텨내면 다행인 수준이고, 보병이 전장을 주도해 나가기는 상당히 힘들었음
망치와 모루 전술로 설명하자면 '모루' 는 어찌어찌 잘 버텨내면 가능한데 주도적인 역할인 '망치'는 기동성이 딸려서 힘들다는 거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69203432
그렇기 때문에 위 글처럼, 조선은 정주민족임에도 기병의 비중이 대단히 높았던 것임
참고로 위에서 언급한 아시리아나 당나라, 고려도 정주민족이지만 기병 비중이 매우 높았던 나라들임
특히 당나라는 아예 유목기병을 용병으로 썼고, 경우에 따라서는 보병조차도 싸울 때만 말에서 내릴 뿐 기본적으로 말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존재함
그리고 유목기병을 상대하는 군대는 대체로 경장갑인 경우가 많음
실제로 조선 갑옷 역시 얼굴부터 손목 어깨 사타구니 종아리 등등 부위별로 방어구가 세세하게 다 나뉘어 있는 일본 갑옷과는 달리 팔 쪽 방어력이 대단히 부실한 형상이고
고대 아시리아나 페르시아 등은 아예 갑옷을 입지 않는 경우도 꽤 많았고 이 때문에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중장보병과의 근접전에서 상당히 큰 피해를 입은 편
이것도 이런 나라들이 갑옷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보여서 그런 것이 아니고 다 이유가 있는데
- 활을 오랫동안 많이 쏘려면 팔에 부담이 가해지면 안 되기 때문에 팔 쪽 방어는 다소 포기하더라도 갑옷을 차지 않는 것이 좋고(실제로 궁수용 갑옷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팔 쪽 방어가 매우 부실한 편)
- 아무리 유목기병을 상대로 보병이 전장을 주도하는 것이 힘들다고는 해도, 걔네들의 기동에 대응하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동이라도 하려면 중장갑 입고 느릿느릿 움직이는 걸로는 택도 없었기 때문임
그러면 가끔 "엥? 알렉산더는 스키타이 잘만 쳐부수고 다니던데요? 그리고 페르시아도 그리스랑 붙어서 왕창 깨졌고, 조선군도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발도돌격 하면 자주 깨졌는데? 중장갑+근접전 위주 편제가 더 우월한 거 아님?" 이라는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음
사실 충분히 가질만한 의문이라고 생각함
실제로 전쟁사에서는 근접전 위주 부대가 원거리 위주 부대를 쳐부순 사례가 훨씬 유명하거든
다만 이건 각 사례들을 따져보면 나름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음
알렉산더 - 지휘관이 알렉산더임. 지휘관이 이순신이라는 가정 하에 해군 이야기를 하면 제대로 된 이야기가 되겠음? 얘도 마찬가지
페르시아 - 개활지에서의 원거리 공격이 특기인 군대가 근접전이 강요될 수밖에 없는 좁은 지형인 그리스로 쳐들어간 상황임. 게다가 그리스군은 홈그라운드 + 해군력의 우위 버프까지 받는 중
임진왜란 - 실전경험 차이로 인해 조선군이 팔랑크스마냥 중장보병이었어도 전쟁 초반에는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
즉 개별 사례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단순히 중장보병-근접전 위주 군대가 더 우월해서 그런 결과가 나타난 거라고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음
그리고 이런 개별 사례를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원거리 중심 군대도 이런 우월한 모습을 보여준 적이 꽤 있거든? 그래서 더더욱 일반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함
(각성한 원거리 위주 군대를 이끈 양반) ㅎㅎ
아 물론 몽골군도 중장기병 꽤 운용하긴 했음
다만 몽골군은 정확히 말하면 '근접전도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하는 원거리 전투 위주의 군대' 라고 보는게 맞음
왜냐면 본격적인 근접전 위주 군대라기에는, 진짜 근접전 전문 부대랑 근접전으로 붙어서 상당한 피해를 본 적이 꽤 많기 때문
실제로 헝가리 사요강 전투에서 총사령관 바투의 실책으로 좁은 다리에서 근접전을 강요당하자, 근접전에 유리한 서유럽식 무장을 한 헝가리 기사들을 상대로 몽골 중장기병들은 꽤 큰 피해를 입었음
즉 '중장갑-근접전 군대' 와 '경장갑-원거리 전투 군대' 는 특정 한 쪽이 우위에 있다기보다는 각자 서로의 환경에 맞추어 발전한 결과물이고
두 세력이 서로 맞붙었을 때에는 지휘관의 역량과 실전경험 차이, 전장 환경의 유불리에 따라 결론이 나는 것이지 특정 한 쪽의 편제가 더 발전된 편제여서 그런 건 아니라고 볼 수 있음
3줄요약
1. 한국은 대대로 활에 집착해서 활 위주로 군대를 편성했다.
2. 근데 엄밀히 말하면 한국만 그런거 아니다. 유목민족과 접하고 있던 나라들은 동서를 가리지 않고 다 그렇게 무장하고 싸웠다.
3. 근접전 위주 군대와 활 등 원거리 위주 군대는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한 것. 둘 사이의 우열을 가린다는 건 어불성설임.
Crabshit
2025/01/18 01:31
우주방어를 교리로 택한 모든 군대는 원거리 투사수단에 집착하게 되어 있음...
리버티시티경찰국
2025/01/18 01:34
문자 그대로 졷같이 싸우는 말박이들을 막기 위한 최적화된 전술
UrbanR에이브이en
2025/01/18 01:35
유목민족이 쳐들어왔다.
1. 공격하면 도망치면서 활을 쏜다.
2. 후퇴하면 쫒아오면서 활을 쏜다.
에이 시팔
정안군
2025/01/18 01:35
고대 시대부터 활쏘기를 중시하고 즐긴 배경에 재미라는 것도 있지만 역사가 말박이와 밀접하기 때문이라는건가
메이めい
2025/01/18 01:35
저렇게 잘나가던 유목민족이나 궁기병들도 화기 발전으로 깨강정이 나버리니 전쟁과 무기의 발전사가 참 재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