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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봉정암
- 봉정암진신사리탑 -
설악산 봉정암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일전에 연피리님도 다녀 오셨지만 설악산 봉정암은 오가며 만나는 단순히 설악산 풍경과 봉정암이란 암자를 보기
위해서 힘들고 어려운 길 나서는 건 아니죠
불자라면 혹은 불교에 좀 관심응 둔 사람들은 봉정암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중 한 곳이란 의미
를 찾아 들기도 합니다.
저도 불자는 아니지만 부타의 지혜를 흠모하는 사람으로 찾아가게 됩니다.
늘 혼자 다니는 습성에 길든 사람은 여러명이 어울려 가는 길은 극 피하고 싶지만 때론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어야
하는가 봅니다.
여기서 잠시 사리(舍利)에 대해 알고 가는 것도 종교를 떠나 좋은 배움이 될 듯 합니다.
특히 저같이 동양 철학의 진수인 풍수지리(風水地理)에 관심을 두는 사람에겐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둔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앉은 자리를 눈여겨 보는 편입니다.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위치를 수계 중심으로 보면 매우 재미있기도 합니다.
- 설악산 -
양산 통도사(通度寺)는 낙동강 수계에 있는 유일한 곳이고 다른 네 곳은 봉정암(鳳頂庵) 적멸보궁,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적멸보궁이네요
네곳다 한강수계로 다시 분류하면 북한강 수계의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이고, 다는 세 곳 즉
오대산 월정사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은 남한강 수계입니다.
참고 사항으로 덧붙이면 이 중 태백산 정암사의 적멸보궁을 제외하고는 모두 신라시대에 자장(慈藏, 590-658)이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온 불사리 및 정골(頂骨)을 직접 봉안한 것이며,
정선 태백산 정암사의 보궁에 봉안된 사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서
통도사의 것을 나누어 봉안한 것이라고 합니다.
5대 적멸보궁 중 오대산의 것 외에는 사리를 안치한 위치가 분명하지만, 오대산의 보궁은 어느 곳에 불사리가 안치
되어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아 그 신비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들 5대 적멸보궁은 불교도의 순례지로서, 또 기도처로서 가장 신봉되고 있는 성지이다.
이 밖에 비슬산 용연사(龍淵寺)에도 사명대사가 통도사의 사리를 분장(分藏)한 적멸보궁이 있습니다.
사리(舍利)는 원래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시신(Śarīra: शरीर)을 가리키던 말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 문화권에서 불교를 받아들일 때 고승이나 여래의 시신을 가리키는 말로 쓰기 위해 번역할 때 일부러 음
역하였다.'고 합니다.
이미 삼국시대 문서에서부터 나오는 이야기로 산스크리트어의 본디 의미와 달라졌다.고 합니다.
불교계에서는 크게 사리를 진신사리(眞身舍利)와 법신사리(法身舍利), 그리고 승사리(僧舍利)로 나누죠.
진신사리는 석가모니의 실제 유해, 법신사리는 불법(佛法, 불교의 가르침)이 부처의 또다른 몸이라 하여 불경을
사리(舍利)처럼 간주하는 것이죠.
승사리는 고승의 시신, 또는 그들을 화장하면 나온다는 돌 조각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일반대중에게 다짜고짜 '사리'라고 하면 대개는 고승을 화장하면 나온다는 승사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한국 불교계에서도 승려의 시신을 높여서 법구(法軀)라고 부름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불자들조차도 '사리(舍利)'라
고 하면 보통은 화장하면 나오는 구슬 같은 승사리를 떠올리게 됩니다.
사리(舍利)가 워낙 불교에서 중요한 상징물이다 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지만, 사리(舍利)가 많이 나오면 덕이
많고, 사리(舍利)가 적게 나오면 덕이 적었다고 단정하는 건 위험한 오류네요.
불도로 따지면 색에 집착하는 행위죠.
-설악산 수렴동계곡 -
-설악산 수렴동계곡 -
이를 잘 알던 만공스님도 자신을 다비할 때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두었기에 덕숭산 수덕사의 다비식 때
는 숭산 스님처럼 극히 드문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사리를 수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 되었고, 법정스님도
"다비하고 나면 나의 사리는 찾지 말라." 하고 유언했습니다.
경봉 스님은 사리에 집착하는것은 "수행자의 본분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심지어 성철스님은 "개에게나 던져줘
라."라고 하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한술 더 떠서 춘성스님은 제자 승려들이 사리가 안 나오면 신도들이 실망 할 것 이라며 걱정하자 "야 이 씨부랄 놈
들아. 내가 불자들 위해서 사냐?"고 일갈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현대의 일부 스님들은 다비식과 사리 유무가 여러사람 번거롭게 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걸 감안하여,
전통적 다비를 하지 말고 소박하게 일반 화장장에서 화장하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또한 사리에 집착하는 태도에 짜증이 난 어떤 주지스님이나 일부러 자신은 높으신 스님이라는 것을 더욱 과시
하려는 어떤 스님들은 "나는 제자들보다 훨씬 높은 큰스님이니 오래되고 낡은 전통적인 다비방식보다 일반화장장
에서 더욱 훨씬 좋은 최신식 기술을 써서 다비를 하라"고 유언을 남겨 사리를 찾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렇듯 세인들의 일반적 인식과는 다르게 사실 불교적 관점에서는 사리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유품 이상의 의미는 없다.'라고 합니다.
어떤 경전에도 사리(舍利)를 영험하다든지 신성한 것이라고 중시하는 내용은 없다.'고 합니다.
승사리가 나오면 조그만 석조 구조물을 만들어 그 안에 모시곤 하는데, 이 구조물을 흔히 승탑 혹은 부도(浮圖)라고
부르죠.
승탑은 (부처가 아닌) 승려의 탑이란 뜻이고, 원래 부도(浮圖)란 말은 범어 붓다(Buddha)를 한자로 음역한 것이
다.'라고 합니다.
즉 불타, 부처와 부도는 원래 동의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도 부도라 하고, 우리 스승(승려)
도 부처와 같다는 뜻으로 승사리를 모신 구조물 또한 부도라 하다가 점차 의미가 분화되었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사찰에는 부도전(浮圖田), 또는 부도림(浮圖林)이라 하여 부도들을 따로 모은 공간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승려의 시신이라 하여 꼭 화장하지는 않았다.'고 하죠
그래서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시신을 관에 넣어 매장하고 그 위에 부도를 세운 사례가 있습니다.
1996년 전남 광양 옥룡사지(玉龍寺址)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도선의 부도라고 추정되는 유적에서도 부도 밑
석관에서 화장하지 않은 유골이 발견되었습니다.
원래는 이런 화장 안 한 시신도 당연히 '사리'라고 하네요.
힘든 고행을 해야 사리가 나온다는 인식 때문인지 아주 고생길이 험한 상황을 두고 사리가 생긴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객 김광석이 1996년에 사망한 후 화장했을 때 사리(舍利)가 9과나 나왔다고 합니다.
- 설악산 단풍 -
진신사리(眞身舍利)
사리들 중에서도 석가모니를 화장하여 나온 것을 진신사리(眞身舍利)라고 부릅니다. '부처의 진짜 몸(진신眞身)에서
나온 사리(舍利)'라는 뜻입니다.
불경에 따르면 석가모니를 화장하자 사리(舍利)가 8섬 4말이나 나왔다고 하는데, 다비식을 하고 나온 재까지 모두
합친 분량이다.'라고 합니다.
개요에서 설명했듯 본래 '사리(舍利)'라는 용어는 구슬 같은 결정체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의 본래 의미대로 시신
자체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스리랑카의 진신사리는 치아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합니다.
불경의 기록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사망하자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나무를 모아 전륜성왕의 예법에 맞추어 화장을
하다가 향수를 부어 불을 끈 뒤, 불에 타고 남은 뼈를 인근 8개 나라/부족의 대표들에게 분배하였다. '고 합니다.
대표들이 저마다 사리를 분배받아 고국으로 돌아가 탑을 하나씩 세우니, 최초로 세운 불탑이라 하여 '근본8탑'이라고 부른다.
석가모니가 사망하고 2-3백 년 남짓 지나 아쇼카 왕이 인도를 통일한 뒤 불교에 귀의하자, 근본8탑 중 한 기만 제외
하고 나머지 탑들을 해체하여 사리를 꺼내 인도 각지에 진신사리를 담은 불탑 8만 4천 기를 세웠다고 합니다.
아쇼카 왕이 열지 않은 한 기는 오늘날 네팔 람그람에 있는 탑인데, 전설에 따르면 아쇼카가 탑을 열려고 하자
용왕이 나타나 막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록이 있으므로 '석가모니 진신사리'라고 주장하는 사리 대부분은 아쇼카 왕이 인도 전역에 세운 불탑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니면 석가모니 생전에 받은 머리카락 등이라고 하거나...
진신사리는 세계적으로 매우 귀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진신사리라는 게 화장을 하고 남은 석가모니 육신의
일부니 많으려야 많을 수가 없죠.
물론 위 전승처럼 8섬 4말씩이나 나왔다고 전하므로 전세계의 유서 깊은 사찰들에는 진신사리라고 불리는 것이 나름
있긴 합니다.
아무튼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 나라의 탑에는 석가모니의 진신(眞身 진짜 몸) 대신 불경이나 보석 등을 법신(法身 법
의 몸)으로 삼아 사리로 간주하여 법신사리라는 명칭으로 넣음이 일반적입니다.
한국 불교계에는 진신사리를 모신 절에는 석가모니를 형상화한 본존불상을 안치하지 않는 관례가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흥왕 10년(549), 중국 양(梁)나라에서 유학하던 각덕(覺德)이란 승려가 양나라 황제가 보내는
불사리 몇 과를 모시고 양나라 사신 심호(沈湖)와 귀국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진흥왕은 궁에서 기다리지 않고 흥륜사(興輪寺)까지 마중나왔다고 한다.
현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양나라에서 들어온 사리가 한반도에 최초로 들어온 진신사리이다. 하지만 이때 들어왔다고
하는 진신사리는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현대 한국에서 진신사리를 보유했다고 주장하는 사찰은 한두 곳이 아니지만,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은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한 경남 양산 통도사 적멸보궁 금강계단에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징성 때문에 조계종에서는 통도사 금강계단을 합동 구족계 수계식장으로도 사용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 자장율사(590-658)가 선덕여왕 5년(636)에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오대산에 머물 때,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받았다고 합니다.
선덕여왕 12년(643)에 여왕이 귀국을 요청하자, 자장율사는 신라로 돌아가 선덕여왕 15년(646)에 통도사와 금강계단
을 세우고, 거기에 문수보살로부터 받은 진신사리 일부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나 전설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통도사를 세운 뒤에도 오대산 월정사(또는 상원사) 사자암 적멸보궁ㆍ
영월 법흥사 적멸보궁ㆍ정선 정암사 적멸보궁ㆍ설악산 봉정암 5층석탑을 세워 진신사리를 모셨다 하는데,
이를 통칭하여 흔히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5대 적멸보궁은 14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침을 겪었지만
지금까지도 한국 불교계의 성지로서 역할을 한다.
5대 적멸보궁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곳은 통도사와 월정사입니다.
그래서 "야산제일통도사(野山第一通度寺) 고산제일월정사(高山第一月精寺)"라는 말이 숙어처럼 전하고 있습니다.
이중 희한한 곳은 오대산 월정사 사자암에 있는 적멸보궁입니다.
다른 적멸보궁들은 어디에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는지 그 위치가 명확한데, 사자암 진신사리는 사자암 건물
뒤편 땅 어딘가라는 '전설'만 전할 뿐 위치가 불명확하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자리가 풍수지리적으로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용의 형상이라 무거운 석물을 사용해서는 아니되
었기에, 부득이하게 눈에 띄는 석물이 없이 진신사리를 땅에 묻었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적이 진신사리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묻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진신사리를 묻었다고 전해지는 땅을 한번 파보았더니 마치 석관(石棺) 같은 것이 나왔다고 하지만,
진실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사자암 뒤편 땅 어딘가에 진신사리가 있다고 전하고 믿으므로, 사자암 측은 그 근처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금지합니다.
자장율사로부터 기원한 전통적인 적멸보궁 이외에도 대구 비슬산 용연사, 구미 태조산 도리사, 고성군 금강산
건봉사를 더해 8대 적멸보궁이라고도 한다.
현대에 들어와 동남아와 교류가 많아지자, 한국 승려들이 스리랑카나 미얀마에서 '진신사리'를 이운하여 봉안,
적멸보궁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그 쪽 나라들은 불교의 발상지 인도와 가깝기 때문에 전해지는 진신사리도 한국보다 더 많은 편이기 때문, 예를
들어 대구 비슬산 대견사에도 스리랑카 정부에서 정식으로 기증한 진신사리 1과를 모신 적멸보궁이 있고,
제주도 표선면 육각사에도 미얀마로부터 기증받은 진신사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조계사 앞에 있는 10층 석탑 안에 모신 사리 역시 진신사리라고 합니다.
현대 한국에서 자칭 '적멸보궁' 또는 '진신사리를 모신 곳' 중 위에서 이야기한 8대 적멸보궁을 제외하면, 모두
현대에 상좌부 불교권에서 승려들이 어찌어찌 넘겨받아 이운하여 봉안한 것입니다.
불상은 부처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인데, 진신사리를 안치한 사찰은 바로 그 부처에게서 나온 사리를 모셨기 때문이
죠. 진짜가 있는데 굳이 대체물을 놔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진신사리를 안치한 건물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부르죠.
조계종 승려 자현(玆玄)에 따르면, 한국 사찰 중에서 처음으로 '적멸보궁'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곳이 바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라고 합니다.
이후 이 명칭이 다른 곳에까지 퍼졌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묘한 것은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가객 김광석 사후 1996년 1월 8일 경기도 벽제에서 화장으로 장례식을 치른 일을 떠올리며
“시신 화장 후 사리(舍利)가 9과(顆) 나왔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지난 2010년 열반에 드신 법정스님은 ‘평생을 도닦은 스님들도 이 정도 사리가 나오는 경우가 드물
다.'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음악세계에 최선을 다했는지, 청정한 삶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김광석의 법명 ‘원음’(圓音, 둥근 소리)을 지어줬습니다.
그가 마지막 생을 마친 건물의 이름 원음빌딩이라고 하죠. 그의 팬클럽은 여기서 따온 ‘둥근소리’다.'라고 하네요
-설악산 봉정암 -
1994년 1월 8일 참으로 기막힌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그날 경남 고성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몸에서 성철스님보다 훨씬 많은 4백여 과의 사리가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그 동안 사리는 불가에서 수행이 높은 스님들의 몸에서만 나온다고 가르쳐왔고 사리의 많고 적음으로 수행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성철스님의 사리가 2백여 과인 것에 비해 조기순 할머니의 몸에서는 그 배가 되는 4백여 과의 사리가 발견된
것입니다.
그러면 불교계의 최고의 참선가이며 고승인 성철스님보다 많은 사리가 나온 조기순 할머니는 어떤 사람일까요?
조기순 할머니는 어려서부터 정신적으로 정상상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네에서 바보라고 따돌림을 받으면
서 자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라서 시집을 갔는데 시댁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친정집에서 한 두 차례 신랑을 맞은 후 바로 소박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불행하게 살다가 교통사고로 숨져서 일반 화장터로 그 시신이 운구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의 몸에서 사리가 나온 것입니다.
사리는 할머니의 가슴과 좌골 무릎 부분에 사마귀처럼 붙어 있었으며 왼쪽 정강이 부분에 특히 많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사리는 크기가 6cm 1과에서부터 5cm 1과 3~2cm 15과, 콩알만한 것 15과 등을 합쳐 4백 13과가 나왔으며 좁쌀
만 한 크기까지 모두 수습했다면 몇 백과가 더 나왔을 것이라고 그 할머니의 생질은 증언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비구니도 아니었고 더더구나 불교신자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조기순 할머니는 어떤 종교에 마음을 둔 적이 없다고 하죠
이로써 사리가 도를 통한 스님의 몸에서만 나오는 사리가 일반 할머니 몸에서 나왔으니 뭐라고 해야할지 난감하지
요.
암튼 사리를 영구 분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입적을 앞둔 한 스님이 사리가 나오면 유용한 일에 써달라고 유언을 남겼는데, 이 스님이 남긴 사리 1과를 인하대
임형빈 박사가 제공받은 덕에 1995년 최초로 성분분석을 할 수 있었다. 고 합니다.
지름 0.5센티미터 정도의 팥알 크기 사리에서 방사성 원소인 프로트악티늄(Pa), 리튬(Li)을 비롯하여 티타늄, 나트
륨, 크롬, 마그네슘, 칼슘, 인산, 산화알루미늄, 플루오린, 산화규소 등 12종이 검출되었다.'고 하죠
사리의 성분이 일반적으로 뼈 성분과 비슷했으나 프로트악티늄, 리튬, 타이타늄 등이 들어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사리의 굳기 즉 경도는 1만 5천 파운드 압력에서 부서져 1만 2천 파운드에서 부서지는 강철보다도 단단했다.'고
합니다.
결석의 주성분은 칼슘, 망간, 철, 인 등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고열에 불타 없어지며 경도도 사리처럼 높지 않아
사리는 결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몸속에 있는 칼슘, 규소 등 금속이온이 산화하면 사리 같은 성분이 생길 수 있는데 특히 채소에 금속이온이 많아
채식을 하는 스님들에게서 사리가 나올 확률이 더 높고, 다비식 자체가 일반 화장과는 다르게 서서히 태우고
서서히 식히기 때문에 사리 생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시그마에 죄송스럽지만 양해를 바라며 이 사진들은 소니 디지털입니다.
수렴동계곡에서 제 부주의로 SIGMA DP1 Merrill 를 떨어트려 배터리함 멈치가 부러지고 배터리가 분해되고 카메라
일부가 깨져서 사용은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고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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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가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5대 적멸보궁을 둘러 보면서 사리에 대해서 알게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듭니다. 흡입력이 대단하십니다.
관심이 많으시니 참고자료 올려 드립니다.
적멸보궁과 관련한 정치적 분석까지 살펴 볼 수 있네요'
http://kabs.jams.or.kr/co/download/popup/poDownload.kci?orteFileId=KCI_FI001817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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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慈藏의 五臺山 開創과 中臺 寂滅寶宮
동국대학교(서울) 교양교육원 교수 염 중 섭 (자현), 한국불교학 제67집 내용입니다
단풍이 시작되었네요.
그리운 설악산...
아울러 좋은 글도 고맙습니다.
지식은 깨달음에 방해가 될 뿐이지만, 역시 재밌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