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상당히 초기부터 등장하는 번역어인데
과거, 현생, 미래의 생이 계속 이어진다는 걸 바퀴에 비유함.
근데 중국인의 사유에서 바퀴는 춘추전국시대부터 굴려먹던 되게 친숙한 녀석임.
그리고 이 시대의 문헌들을 보면, 바퀴에는 당연히 회전축이 있어야 똑바로 굴러간다는건 상식 of 상식.
그런 까닭에 윤회라는 수레바퀴가 구른다는 것은, 그 수레바퀴를 굴리는 회전축이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됨.
그 회전축이 뭐냐? 하면 바로 생과 상관없이 유지되는 아트만, 즉 아(我)를 말하는거지.
그런데 불교는 무아를 말함.
무아 개념을 바퀴에 적용하면, 바퀴에서 회전축을 빼버린 상태가 연상될거임.
그런 바퀴는 이리저리 좀 구르다가 곧 회전을 중지하고 옆으로 쓰러지겠지.
이 상태가 바로 무아에서 비롯되는 윤회의 끊어짐이고, 고통의 소멸을 말하는거임.
그래서 윤회라는 번역어를 도입해서 현생 너머의 생을 바퀴에 비유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인들의 배경지식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불교철학적 개념들을 이해하게 만들 수 있었음.
정말 잘된 번역 사례임.
콘쵸쿄
2024/10/13 10:44
근데 바퀴라고 회전축이 떠오름?
보드카🍸
2024/10/13 10:46
조금 생략했는데, 노자에서부터 수레바퀴에 비유해서 저런 철학적인 이야기가 언급됨.
처음에 불교 도입될 때가 노장 유행하던 시기라서 바퀴? 하면 바로 바퀴살이랑 바퀴축이 떠올랐을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