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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에 매진하지 못한 중소 개발사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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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도산한 일본의 게임 회사. 대표작은 퍼즐 게임인 뿌요뿌요 시리즈,

RPG인 환세 시리즈, 던전 RPG인 마도물어 시리즈, 슈팅 게임인 알레스터 시리즈 등이 있다.


MSX 시절, 컴파일의 대표작으로는 슈팅 게임인 알레스터 시리즈, 던전 RPG인 마도물어 시리즈가 있다.


또한 윈도우 시대로까지 이어지며 13년간이나 발매된 디스크 잡지 디스크 스테이션이 시작된 것도 MSX 시절이다.

디스크 스테이션의 메인 컨텐츠는 간편하게 할 수 있는 미니 게임들이었지만 이외에도 MSX-FAN과 같은 잡지 공모작이나

차후 발매될 게임을 맛보기로 플레이할 수 있는 데모 버전, 자사가 외주제작했던 레트로 게임 등을 수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디스크 스테이션의 게임을 통해 컴파일에서 제작한 게임의 캐릭터들에 대한 재미난 정보도 볼 수 있었다.


마도물어가 바로 MSX판 디스크 스테이션 수록작으로 시작된 작품이며 90년대 컴파일을 먹여살린 뿌요뿌요 시리즈는

이 마도물어의 스핀오프작.


윈도우 버전 디스크 스테이션에 수록되어 있던 게임들은 작은 용량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재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여러 곳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한창 회사가 리즈 시절을 달리고 있던 시절에는

사옥이 위치한 히로시마에서 가장 주목받는 IT기업으로 손꼽히기도 하였다.

1980년대 중반에는 남코 황금기와 비교되었을 정도였다.
MSX가 단종된 1990년부터는 다시 세가의 하드웨어로 게임을 발매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바로 뿌요뿌요 시리즈. 뿌요뿌요가 히트한 후에는 뿌요만, 뿌요뿌요 바요엔 투어 등

뿌요뿌요 관련 상품과 행사들을 차례로 런칭했는데,

디스크 스테이션에서 제공한 영상을 보면 컴파일 최고의 황금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알 수 있다.


일본 전역+한국을 아우르는 오프라인 대회와 상품판매 행사를 열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96년 전일본 뿌요 마스터즈에는 18,000명을 집결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파생 식품인 뿌요만 역시 히로시마의 관광 상품으로 유명했다.

심지어 회사가 망해가던 말년에는 손대는 사업이 다 적자고 뿌요만 하나만 흑자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무엇보다 이 규모의 축제를 메우는 콘텐츠가 모두 자사 콘텐츠였다. 그만큼 당시 컴파일이 보유한 콘텐츠 경쟁력은 막강했으며,

일본 전역에 해외까지 축제를 벌인 경험이 있으니 이벤트 회사로도 엄청난 경쟁력을 갖추었다.

괜히 사장이 테마파크를 만들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게 된 것이 아니다.


이런 건실한 회사가 사장의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순식간에 망조가 든다.
망하고 나서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이야기라지만 컴파일은 불안한 회사였다.

엄연히 중소기업이었고, 히로시마를 거점으로 성장하여 주목받았지만 반대로 수도권의 인재를 모집할 기회가 적었다.

든든한 뒷배경이었던 세가가 게임 시장에서 점점 경쟁력이 사그러드는 것도 불안 요소였다.

그러나 그 어떤 요소도 방만한 경영만한 이유는 될 수 없었다.



니이타니 마사미츠 사장은 시한폭탄 같은 사람이었다. 발표회를 위한 사탄 코스프레 하나에 돈을 100만엔을 때려붓거나,

COMPILE RACING YAMAHA라고 모터 스포츠에 출전하지 않나,

뿌요뿌요 애니메이션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사내 제작이 아니면 싫다(...)는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새로 입사한 신입 사원들에게 자사의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를 어필한다는 이유로 신입들은

1년간 닥치고 분홍색 아디다스 체육복을 입은 채로 회사에서 일해야 했다.

이 때문에 사건도 많고, 신입 사원의 이직률도 높았다고 한다.


설정이 중구난방인 컴파일 게임들이 많은 이유도 높은 이직율과 관련이 크다.

당장 대표작인 마도물어와 뿌요뿌요만 해도, 원래 개발진들은 딱 한 게임(1-2-3와 뿌요1)만 개발하고 컴파일을 떠났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회사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컴파일 테마파크를 짓겠다는 계획이었다.


단지 테마파크를 구상하는 것으로도 인력이 많이 필요해서 니이타니 마사미츠는

1997년에 전 직원이 300명인 회사에 120여명의 신입 직원을 뽑는다.


정확히 말하면 1996년에 이미 사세 확장을 위해 200명 신입채용이라는 무리수를 둔 상황에 이런 짓을 저질렀다.


다음해인 1998년에 화의 신청을 했으니 이거야말로 그동안의 무리수에 방점을 찍는 셈이었다.


이렇게 되도 않는 규모의 인력 채용과 본업을 다 말아먹으면서 내놓은 프로젝트가 바로 사무용 소프트웨어인 POWER ACTY.

아이돌 출신의 여배우 카와시마 나오미까지 광고 모델로 고용하여 발매한 POWER ACTY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물론, POWER ACTY가 컴파일을 멸망에 빠뜨린 주범까지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본업을 말아먹었다는 것에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돈을 들여야 했던 뿌요뿌요 SUN의 게임기 이식 수준은 처참했고

새턴판 마도물어는 게임 분량이 칼질되어 나왔다.

심지어 환세 시리즈와 파이팅 에이스맨 후속작은 개발이 중단되었다.

와쿠와쿠 뿌요뿌요 던전은 1997년 연말 성수기를 위해 준비한 게임이었는데

이 프로젝트로 인해 개발 난항 및 발매 연기가 이어지다가 실패했다.
뿌요뿌요의 대성공 이후 뿌요뿌요 붐에만 의지하다 게임 퀄리티를 전혀 신경쓰지 않은 저질 게임들을 남발한 것,

게임 개발에 써야 할 자금을 외적인 프로젝트에 쓸데없이 소비하여 돈을 시궁창에 버린 행위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부채를 해결하려면 대형 게임이 필요했는데, 컴파일은 설립 이래 아기자기한 캐주얼 게임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대형 게임 제작 노하우가 없었다. 1998년 니이타니 마사미츠는 회사 자본이 부족해지자 세가 새턴과 드림캐스트가 게임기 경쟁에서 전패하면서

힘이 떨어져 있는 상태의 세가에게 뿌요뿌요 지적 재산권을 매각했다.


결국 남아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세가가 컴파일에게 개발 위탁을 했던 뿌요뿌요였고, 컴파일은 회사의 남은 역량을 말 그대로 쏟아부어 뿌요뿌욘을 제작하였으나 회사가 터져나간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게임 디자인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쓰러졌다.

1999년 발매한 뿌요뿌요 DA!, 휴대용으로 넘어가서 발매한 뿌요 워즈와 아르르의 모험도 모두 크게 실패했다.


물론 게임도 과거처럼 잘 만들지 못했지만, 근본적으로 컴파일을 회생시킬 만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이미 컴파일은 그런 프로젝트를 진행할 동력이 전혀 없었다.
2002년 하반기 빈사 상태에 이른 컴파일은 포치와 냐~라는 낙하형 퍼즐게임을 타이토와 협업하여 개발했으나

시장에서 아무런 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디스크 스테이션 27호에 수록된 레스토랑 킹을 마지막으로 게임은 물론 디스크 스테이션 발행까지 중단되었다.


심지어 회사가 이 난리를 치던 와중에 여전히 회사의 사장이었던 니이타니 마사미츠의 엉뚱한 경영이

내부고발로 만천하에 드러나 대외신용마저 완전히 잃었다. 이런 상태의 회사는 미래가 정해져 있었다.
결국, 2003년 1월 21일 해산을 공식으로 선언하고 동년 11월 6일 도쿄 지방 법원은 부채 총액 54억엔의 컴파일에 파산 선고를 내린다.
2004년 2월 17일 파산 폐지. 그 등기가 5월 12일부로 발동했다. 게임 개발에 매진하지 못한 중소 개발사의 최후였다.

댓글
  • 데빌쿠우회장™ 2024/10/09 02:25

    님 마크를 보니까 눈물이 남


  • 루루[ルルー]
    2024/10/09 02:22

    안타까운 일이네요

    (Ng4T60)


  • 루루[ルルー]
    2024/10/09 02:22

    왜 너가 우는거니

    (Ng4T60)


  • 데빌쿠우회장™
    2024/10/09 02:25

    님 마크를 보니까 눈물이 남

    (Ng4T60)


  • 시노팡
    2024/10/09 02:29

    뿌요뿌요는 살아남았으니 해피?엔딩

    (Ng4T60)


  • 데빌쿠우회장™
    2024/10/09 02:29

    이젠 세가가 갖고 있으니

    (Ng4T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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