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sisa/3897203

어머니는 신이 보낸 대리자인가

어머니는 과연 신을 대신한 자인가?
많은 종교와 사상에는 “신은 부모를 그들을 대신해 보내 자식을 돌보게 했다.”는 논지로 부모의 자식에 대한 절대적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각별히 “어머니“라는 단어는 사랑, 헌신, 자기희생으로 대표되는 “거룩한 속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 감사, 존경을 느끼게 하는 위대한 단어다. 심금을 울리며 눈물짓게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수필에서 어머니는 클리셰로 소비되고 있고, 사람들은 이 소비에 지치지 않는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는 많은 위대한 문학이나 깊은 통찰을 가진 영화에서 절대선의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다. 이곳에서 어머니는 신성을 받은 거룩한 이미지라기 보다는 우리와 같은 연약하고 이기적이며 심지어 악하기까지 한 여인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째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이미지를 넘어선 이 어머니의 이미지를 이해하고 동감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 자체가 혹자에게는 “후레자식“의 궤변으로 들릴 수 있다. 감히 신성에 도전하는 미물이라 평하며, 어머니에 대한 긍휼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불쌍한 존재로 비춰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당신의 어머니는 끝까지 선했는가?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 맹자의 성선설에 도전한 유학자 순자의 성악설에의하면 사람을 날 때부터 악한 존재라고 규정되었다. 성악설은 대부분의 종교에서 인간의 한계에 논증할 때 가장 취하기 쉬운 방법이기도하다. 이미 악하고 죄를 가지고 태어난 여인이 무슨 수로 선을 깨달을 수 있으며, 완벽한 선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가 되면서 선해진다면 그 뒤에 발현되고 가속되는 악의 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나의 어머니, 당신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는 선하지 않다. 어머니의 사랑은 사실 자녀를 위해 취한 그들의 공로로 어머니가 자녀에게 가지는 소유권에서 나오는 인간적 한계를 경험한 감정의 표현이다. 내가 창조하고 내가 베푸는 은혜를 받은 자에 대해 가지는, 신처럼 되고 싶은 인간의 신격 모방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때때로 감정적인 언어적 물리적 인격적 폭력을 사랑의 훈계로 받아들이길 강요받고 그에 대해 저항할때 사랑의 체벌을 이해 못하는 예의없는 자녀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어머니라는 신격 프레임에 갇혀 저항할 수 없는 답보상태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의 어머니가 저지르는 악한 일들에 대하여 자녀들은 토를 달 수 없고, 지적할 수 없다. 어른 일에 버릇없이 끼어드는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고, 그들의 악행에 대하여 눈감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경험해 본적이 없는가?
단지 이 악행은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인 악행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스름 돈을 더 받았는데 말하지 않는다던가, 옆집 영희네 엄마에 대한 뒷담화, 새치기, 선생님 손에 쥐어 주던 촌지 같은 어른들의 세계에서 “다 너를 위해“ 자행한 수 많은 악행에 대한 이야기다.
이런 어머니에게 우리는 사랑, 존경, 감사를 표한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통념과 교육에 의한 것일 수도 있으나 나는 한계성을 가진 그들의 어쩔 수 없는 연약함을 우리가 동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도 나와 같은 인간이며, 나와 같은 연약한 존재이며, 나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수준의 것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어머니 당신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그나마 존경과 경의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악한 그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비친 순간 순간의 선해보려는 노력때문일 것이다. 선하지 않은 그들의 몸을 이끌고 그들 자신의 인간적 행위의 결과로 창조한 생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어머니가 취한 연약함을 그들 스스로 또한 자녀들이 인정해 감에 있다.

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댓글을 남겨보세요!

(nP7bm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