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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버스) 개인적인 수준의 4장 감상문


시작하기 전에 일고 오면 좋은 시



거울
이상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4장의 주요 인물은 '이상'이니 만큼 이상의 시나 소설이 자주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이상은 솔직히 현대에서도 해석이 난해한 인물이긴 합니다만,

림버스 컴퍼니 4장은 이상의 난해한 시와 소설을 이용하여

제법 흥미로운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1. 동백과 동랑

4장의 메인 갈등은 동백과 동랑의 갈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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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연구와 기술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인물입니다.

구인회의 기술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반대하며

구인회의 본질적인 목적인 '기술 개발' 그 자체를 어찌보면 지독하리만치 맹목적으로 추구합니다.

어떠한 기술의 상업적 사용이나, 기술을 '도구화'하는 것에 극단적인 혐오를 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개발 그자체의 순수함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상 모든 기술을 개념소각기에 넣어

문명을 초기화하겠다는 정신나간 발상을 가진 인물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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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동랑은 처음에는 동백과  구인회의 사상에 동감하였으나, 몇 가지 현실적인 이유 그리고 일종의 열등감으로 인해

기술의 상용화, 더 나아가 '기술의 도구화'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회사의 앞잡이가 되는 인물입니다.

예컨대, 눈물을 뽑기 위해 '유리창'이라는 '기술'을 사용해서 세계의 비극을 수집해서 전시한다던가

'재생앰플'이란 기술로 가축 축산산업/전투용으로 쓴다던가...


기술의 순수성을 추구하는 동백과

기술의 도구화를 추구하는 동랑

두 인물은 이처럼 참 반대이오만은

또 퍽 닮아있는 인물입니다.


구인회 시절의 순수함이 그리워 모든 기술을 개념 소각기에 넣어 문명의 초기화를 꾀하는 동백이나

재생앰플의 생산을 위해 비극과 참살을 방조하고 오히려 조장하기까지 하는 동랑이나

뒤틀려있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지 못한 인물이죠.

두 인물 다 목적을 위해 수단의 올바름을 가늠하지 않는 에고이스트입니다.

쉽게 말하면 둘 다 ㅁㅊㄴ이라는 점에서 똑같은 새끼들이다 이 말입니다.(농담입니다)


좀 더 분석해보자면, 두 인물의 행동 방식 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목표도 퍽 닮아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두 인물의 근원을 따지자면 결국 '구인회'

이 단체의 그늘에서 두 인물 다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실 근원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해당 근원에서 비롯되는 '추억' 그 시절의 '향수'가 인물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동백은 그 추억과 향수로 돌아가기 위해서

동랑은 그 추억과 향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마치 거울처럼, 각기 방향은 다르지만, '구인회'라는 그림자는 두 인물의 삶의 중심축으로 그려집니다.


절벽
이상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 나는 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 꽃이 향기롭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잊어버리고 재차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로 나는 꽃을 깜빡 잊어버리고 들어간다. 나는 정말 눕는다. 아아. 꽃이 또 향기롭다. 보이지도 않는 꽃이 - 보이지도 않는 꽃이.




엔딩에 등장한 '절벽'에 대구 해보면,


'생명을 구하는 재생앰플 기술을 추구하는 동랑'은 꽃의 향기이고

'구인회의 향수를 추구하기 위해 테러를 벌이는 동백'은 묘혈입니다.

동시에

'재생앰플 생산을 위해 비극과 참살을 방관하고 조장하는 동랑'은 묘혈이며

'순수하게 기술을 탐구하던 구인회를 추구하던 동백'은 꽃의 향기입니다.


동랑은 묘혈로 꽃의 향기를 찾으려 했으며

동백은 꽃의 향기를 위해 묘혈을 파고 있습니다.

둘은 뱡항은 반대이오만, 퍽 닮았습니다.



2. 이상한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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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둘 사이에 끼어있는 이상은 뭔가요?
이상은 뭔가 이상합니다. 

동백처럼 과거의 구인회를 향해가지도
동랑처럼 구인회 이후의 미래를 향해가지도 않고

떠다니며. 부유하는, 배회하는 인물입니다.

인물의 목적 자체가 두루뭉실하고

인물의 목표 또한 두루뭉실합니다.

이상은 구인회를 다시 만들고 싶지도
그렇다고 구인회에서 벗어나 자신의 연구를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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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방랑하며 이 무의미한 걸음을 답습하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날개가 잘려지는 닭일 뿐이니...


어떠한 소원도 없고 바람도 없으며 무의미한 생의 이어감

날개가 잘려 박제 된 삶


동백과 동랑이 서로의 거울이라면

이상은 유리창 밖의 사람이고 그저 관찰하는 자 입니다.

그에게 갈등의 먼 곳의 삶이며, 타인은 유리창 너머의 화면처럼 별개의 존재입니다.



3. 날개로 날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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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은 사실 일종의 자기부정입니다.

세상의 모든 삶은 타자의 존재로 인해 성립되고

모두와 격리된 박제 된 삶 같은 건 중이병 망상같은 환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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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거울은 자기 자신을 비추는 도구이지만

이조차 완벽하게 자신을 비추지 않습니다.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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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랑은 사진이 정직하게 자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진은 찍어준 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기에, 찍어준 이가 바라본 자신을 보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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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자의 존재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할 수 있으며


타자의 날개라고 착각했던 것은 사실은 자신의 날개입니다.




림버스 컴퍼니에서 도시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현실의 은유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법' '규칙' '도덕'과 같은 '시스템' 위에서 삶을 살아갑니다.



시스템을 벗어날 '날개'를 얻을 방법


그것은 거울이라는 타자의 존재, 혹은 연심(이어진 마음)


타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그 마음이 이어졌을 때


시스템을 초월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는 


어쩌면 고루한 내러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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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시오?
거울을 볼 때마다 문득 인사를 하곤 하오.
인사란 서로 주고받아야 자연스러운 것이라 하지만…
언젠가 전해질 거로 생각하기에 괜찮소.
이제 나는, 정지하지 않을 테니 말이오.
모든 건 결국, 변하지 않겠지만…
나 역시도 이제, 변하지 않을 테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시오. 내 곁에는 새로이 벗들이 생겼소.
그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들을 벗삼으려 하오.
그럼… 끝에 부쳐. 사는 내내 모두가 평안하시길.
이상.



결국 이런 내러티브는 디스토피아적인 림버스 컴퍼니 세계에서


12명의 수감자들의 '연심', 어찌보면 그 상징인 '단테'가


이 세계의 비극을 넘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앞으로의 스토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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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을 깨고,

자유롭게.


비록 추락하더라도,

다시 한 번 날아.


댓글

  • ARASAKI
    2024/08/05 12:14

    Tj에도 빨리 사라지네 나왔으면 좋겠다...
    이상 사라지네 부르고 싶어..

    (zbBG8J)


  • 무난한닉네임
    2024/08/05 13:10

    이제 플마윙 들으면 눈물이 줄줄 흐르게됨

    (zbBG8J)

(zbBG8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