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토 기숙사와 미호 기숙사의 통금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난 어느 날의 밤, 메지로 아르당은 학생회실의 문 앞에 있었다.
저녁 열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학생회실 앞의 복도에는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회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안에 있는 사람은 당연하게도 학생회장, 심볼리 루돌프이리라.
학생회와 특별한 접점이 없는 메지로 아르당이었지만, 그녀가 학생회실에 방문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야, 심볼리 루돌프와 같은 트레이너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감이 조금 이상하잖아요, 메지로 아르당은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공유하고 있다, 고 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한 남자를 공유하는 사이라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며, 그러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의 트레이너가 같은 사람일 뿐이다. 그뿐이었다.
다만, 메지로 아르당은 제아무리 황제, 심볼리 루돌프라 하여도, 그녀의 트레이너 씨를 넘길 생각은 없다. 뭐, 업무적으로야 트레이너 씨의 일이니까 괜찮지만, 평생을 함께할 반려로써의 트레이너 씨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심볼리 루돌프가 메지로 아르당보다 먼저 트레이너 씨와 만났고, 메지로 아르당보다 먼저 담당하는 우마무스메였으며, 그녀가 모르는 3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한 인연이 있다지만, 그렇다고 골이 안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까.
안타깝게도 메지로 아르당의 그런 속내를 황제가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메지로 아르당을 크게 견제하지 않는 것은, 트레이너 씨와의 인연과 유대, 그리고 믿음에서 나오는 여유겠지.
그런 황제의 여유만만한 얼굴을, 언젠간 박살 내 주겠다고 메지로의 아가씨답지 않게 입술을 꽉 깨문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치정 싸움 같은 일 때문에 학생회실에 온 것은 아니다. 물론, 심볼리 루돌프를 만나러 온 것은 맞지만, 목적이 다르다.
트레이너 씨의 옆자리를 차지하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 그 커다란 장애물에 대하여 논의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마침 금요일이고, 내일은 주말이다. 조금 늦게까지 우마무스메 두 명이 심야의 밀회를 가져도, 내일은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이라는 뜻이다.
물론 기숙사장에게 외출 허가는 받아두었기에 전혀 문제없다. 심볼리 루돌프 쪽은…굳이 허가가 필요한 자리에 있는 우마무스메는 아니니까.
중앙 트레센의 학생회장이란, 다른 학교의 학생회장보다 조금 더, 아슬아슬한 선에 걸칠 정도까지, 갖는 권한이 많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일에 있어서, 심볼리 루돌프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심볼리 루돌프 본인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메지로 아르당 역시 본인의 패가 있다. 심볼리 루돌프에게만 의지한다면 메지로 아르당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일 것이다. 아무리 심볼리 루돌프가 여유를 부린다 해도, 황제에게 있어 메지로 아르당은 본질적으로 연적이다.
트레이닝이나 레이스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게다가 특히나 트레이너 씨에 관련된 일이라면, 구태여 좋은 일을 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메지로 아르당에게는 ‘메지로’라는 이름이 있다. 심볼리 루돌프가 학생회장으로서 중앙 트레센 내부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면, 이쪽은 메지로의 이름 아래에 중앙 트레센 외부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메지로 아르당도, 심볼리 루돌프도, 반쪽짜리 퍼즐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두 우마무스메 모두 명석한 두뇌를 가진 아이들이기에, 그 반쪽만으로 어느 정도 정답을 추측할 수는 있었지만, 추측만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녀들에게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래서 트레이너 씨도,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도, 트레이너 씨의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들―특히 눈치 빠른 사토노의 아가씨―도 모르는 이 심야의 밀회가, 몇 번이고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이번이 세 번째. 어느 정도 안개가 걷히고 있었기 때문에, 메지로 아르당은 조금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그녀의 꼬리가 평소처럼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 좌우로 살랑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을 트레이너 씨가 보았더라면 피식 웃으며 진정하라며 그녀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을 정도로, 살짝 들떠 있었다.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손으로 살짝 움켜쥔 뒤, 후우,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곤 학생회실의 문을 똑똑 두드린다.
그리고 출입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학생회실의 육중한 문을 밀어젖힌다. 어차피 이 시간에 학생회실에는 심볼리 루돌프 이외의 다른 사람은 없을 것이고, 황제 또한 이 시간에 학생회실에 방문할 사람은 메지로 아르당뿐임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심볼리 루돌프가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리 초인 같은 학생회장이라 하더라도, 그 본질은 고등부 3학년이다. 밤늦은 시간에는 졸린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메지로 아르당이 학생회실의 문을 닫고 잠그자, 심볼리 루돌프는 눈을 천천히 뜨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어서 오게, 아르당 군.”
“안녕하세요, 루돌프 씨.”
평소라면 회장, 아니면 회장님이라고 불렀겠지만, 이 자리에서만큼은 언제나 루돌프 씨라고 불렀다. 그야, 이 자리에서만큼은 학생과 학생회장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연적으로써 마주하고 있는 것이니까.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했던 심볼리 루돌프였지만, 이제는 익숙한 듯이 웃으며, 기대어 있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다. 그리곤 책상 아래 서랍에서 노트북 하나를 꺼내 들고, 학생회실의 손님 응대용 소파에 가서 앉는다.
“이쪽으로.”
그리곤 메지로 아르당에게 맞은 편에 앉을 것을 권한다. 그런 심볼리 루돌프의 안내에 따라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메지로 아르당은,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어 심볼리 루돌프에게 건넨다.
그것을 받아든 황제는, 들고 온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켠다. 부팅이 완료되는 것을 보고, 노트북에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을 재차 확인한 뒤에야, 메지로 아르당에게서 받은 USB를 노트북에 집어넣는다.
“흠…호오, 제법 양이 많군.”
“루돌프 씨도 이 정도는 준비하셨을 텐데요.”
“그렇지. 아무래도 슬슬 정답에 근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경을 좀 쓰고 있다.”
“후후, 저 역시 그래요.”
그러면서 두 우마무스메는 잠시, 마주 보고 소리내어 웃었다. 평소라면 트레이너 씨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본심을 숨긴 채 숨죽여 웃었겠지만, 지금은 가감 없이 그냥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시간에, 이곳에 있을 때만큼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 서로 힘내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협력관계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만.”
“그래도 저희끼리 투덕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그렇지…이걸 해결하지 못하고는 트레이너 군을 차지할 수 없을 테니까.”
“저도, 그리고 루돌프 씨도 모르는 과거의 트레이너 씨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연적의 존재…아무래도 껄끄러우니까요.”
메지로 아르당이 말을 마치자, 두 우마무스메는 작은 한숨을 내쉰다. 메지로 아르당의 트레이너 씨를, 심볼리 루돌프의 트레이너 군을 공략하기 위해서 반드시 알아야 하는 퍼즐의 한 조각, 가장 두려운 존재.
“트레이너 씨의, 첫 담당 우마무스메.”
“트레이너 군의, 옛 애마.”
“……토키노 미노루.”
“그래, 토키노 미노루.”
그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자, 두 우마무스메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레이너 씨의 첫 담당 우마무스메이자 트레이너 씨 최고의 성공작이며, 트레이너 씨의 가장 창창했던 시절을 같이 보낸 우마무스메다. 심지어 단 한 번의 패배조차 없는 우마무스메이며, 7관에 가까운 심볼리 루돌프보다도 더, 어찌 보면 트레이너 씨의 커리어에 있어 마스터피스 같은 존재.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겠지만, 트레이너 군과 제법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심볼리 루돌프는 물론이거니와 상대적으로 트레이너 씨가 담당한 시간이 짧았던 메지로 아르당마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토키노 미노루의 흔적은 트레이너 씨의 일상 곳곳에 남아 있었다.
아니, 그냥 일상 곳곳에 남아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트레이너 씨 본인은 부정할지 긍정을 할지 모르겠지만, 토키노 미노루라는 존재는 분명 트레이너 씨의 마음 한구석에 작지만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트레이너 씨를 차지해 봐야, 잡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미련을 평생 가져가는 남편이 되는 것이다. 뭐, 토키노 미노루가 트레이너 씨의 첫사랑인지는 불분명하다만…아무튼 그런 느낌이다.
게다가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의 여자로서의 본능과 직감은, 그녀들에게 각각 한 가지씩을 경고하고 있었다.
심볼리 루돌프에게는, 토키노 미노루라는 트레이너 군의 옛 담당 우마무스메가 아직도 트레이너 군의 가까이 있다는 본능이,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에게는, 토키노 미노루라는 트레이너 씨의 옛 애마의 마음이 분명하게 트레이너 씨를 향하고 있다는 직감이,
그런 우마무스메의 동물적 본능과 직감이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 두 우마무스메를 협력관계로 만든 것이리라.
“이상하잖아요.”
메지로 아르당이 먼저 말을 꺼낸다. 심볼리 루돌프는 마우스를 움직이고 있었지만, 쫑긋거리는 그녀의 우마미미는 메지로 아르당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10전 10승의 신마, 레이스 레코드만 일곱 번, 그런 화려한 커리어를 가진 우마무스메가 한순간에 증발하듯이 사라졌어요.”
“…….”
“그녀의 마지막 경기, 일본 더비가 끝나고 17일 뒤,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은퇴의 이유도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고, 언론의 노출조차 이상하리만큼 사라져갔죠. 정말, 정말로 이상하게도요.”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가 마우스를 움직이던 손을 잠시 놓고, 중얼거리듯 말한다.
“흥미롭게도, 중앙 트레센 내부의 기록도, 그녀에 대한 기록은 레이스 이외의 거의 모든 것이 없다. 심지어 그 흔한 사진 한 장 없고, 트레이닝 보고서조차 몇 개 남아 있지 않아.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지운 듯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몇 사람 안 되겠죠.”
“뭐, 당대 이사장이나 그녀의 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몇몇 임원들, 그리고…….”
그러면서 심볼리 루돌프는 잠시 말끝을 흐린다. 살짝 말라버린 입술을 혀로 한번 훑은 뒤, 메지로 아르당의 눈을 바라본다. 그녀 또한 심볼리 루돌프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거의 동시에 입을 연다.
“당시, 토키노 미노루의 담당 트레이너.”
“저희의, 트레이너 씨.”
중앙 트레센의 이사장이 토키노 미노루의 기록을 말소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데다가, 당연하게도 학교의 임원진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토키노 미노루의 기록에 접근할 수 있었던 다른 한 사람, 유일한 트레이너.
메지로 아르당 본인과 더불어, 심볼리 루돌프의 담당 트레이너. 지금의 그녀들을 전심전력으로 서포트 해주는 존재.
그런 트레이너 씨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토키노 미노루의 기록 대부분을 중앙 트레센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하지만 메지로 아르당도, 심볼리 루돌프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렇다고 트레이너 씨에게 가서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어디 있는지도 모를 토키노 미노루에게 직접 그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다.
어느 쪽이건, 그 사실에서 두 우마무스메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트레이너 씨의 의중은 모르겠지만…당시의 트레이너 씨와 지금의 트레이너 씨가 다르지 않다면, 토키노 미노루를 위해서 하신 일이었겠네요.”
“물론. 트레이너 군이라면 그러고도 남았겠지.”
“하지만 왜, 그것이 토키노 미노루를 위한 일이었을까요.”
“그건 모르지.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딱히 알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나 메지로 아르당보다 심볼리 루돌프는, 조금 더 냉정하고 합리적이었다. 아무렴 황제의 이름이 어디로 도망가겠는가. 그런 불확실한 심정 파악보다, 눈앞의 여러 가지 일들이 더 중요한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네요. 그러면 저희의 진짜 일을 시작해 볼까요?”
“그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녀의 기록이 왜 사라졌느냐가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며 노트북을 메지로 아르당이 볼 수 있도록 돌린다. 두 우마무스메의 꼬리가 흔들리고, 귀가 쫑긋쫑긋 움직인다.
“이것으로 조금 더 알 수 있겠네요.”
화면에 눈을 두기 전, 메지로 아르당이 조심스레 중얼거린다. 그리고 그 말에 맞장구치듯, 심볼리 루돌프 또한 천천히 중얼거린다.
“토키노 미노루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그리고―”
“……토키노 미노루가, 트레이너 씨를 노리고 있는지.”
두 우마무스메의 밀회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 * * * * * * * * *
무릇 주말이란 휴식의 시간이다.
이는 중앙 트레센의 학생들은 물론이거니와 트레이너에게도 해당하는 사인이다.
물론 자율 트레이닝으로 인하여 트랙이나 체육관, 수영장 등을 예약하고 사용하는 학생들과 트레이너들이 몇 있긴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칙 상 주말은 휴식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담당 트레이너가 있는 우마무스메들은 담당 트레이너와 외출을, 그렇지 않은 우마무스메들은 자율 트레이닝이나 휴식을 하는 것이 중앙 트레센의 주말이다.
하지만 우마무스메들과는 달리, 중앙 트레센의 트레이너들에겐 주말의 달콤한 휴식조차 사치다. 분명 계약서상 트레이너에게도 휴식이 부여되는 주말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들의 업무량은 평일과 주말 전부를 갈아 넣어도 아슬아슬하거나 모자란 것이 현실이다.
그런 트레이너 중에서도, 황제의 트레이너는 다른 트레이너들보다 조금 더한―아니, 조금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많은―업무가 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주말의 출근은 어찌 보면 일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나마 개인 사무실이 있으니 스트레스를 조금 덜 받는 거지, 다른 트레이너들처럼 오픈 사무실이었다면 업무 스트레스와 더불어 대인 스트레스로 인해 리타이어 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런 축복받은 개인 사무실에서, 그는 언제나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청객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다.
사무실의 문에서 똑똑, 소리가 난다. 주말에 찾아올 사람이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담당 우마무스메 아이들은 보통 주말에 휴식을 취하고, 이번 주는 외출 일정이 없다. 혹여 이사장 비서, 하야카와 타즈나일 가능성도 잠깐 생각해 보았으나, 이번 주말에는 출근 안 할 거라고 했던 것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뭐, 후배 트레이너라도 잠깐 찾아와 조언을 구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노크 소리의 주인공에게 들어오라고 말한다.
그 소리에 곧장 끼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두 인물이 그의 사무실로 들어온다.
“안녕하신가요, 트레이너 씨.”
“주말에도 업무라니…가끔은 쉬는 것이 어떤가, 트레이너 군.”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 메지로 아르당과 심볼리 루돌프가 각자의 사복 차림으로 그의 사무실을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곧장 메지로 아르당이 문을 닫고, 심볼리 루돌프가 철컥, 하고 문을 잠근다.
갑자기 왜 찾아온 것일까, 짐작 가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는 머릿속에 드는 의문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작업 중인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무실에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마침 살짝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했으니,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르당, 루돌프? 무슨 일이니?”
“그게, 조금…트레이너 씨와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후후, 담당 우마무스메로서 담당 트레이너 군의 사무실에 찾아오는 것이 뭔가 이상한가?”
심볼리 루돌프의 말에 그는 피식 웃으며 능숙하게 답한다.
“그런 건 아닌데, 너희가 주말에 찾아오는 건 제법 드물기도 하고…다른 애들도 아니고 너희 둘만 찾아온 것도 마찬가지로 드문 일이니까.”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법이랍니다.”
메지로 아르당이 싱긋 웃으며 트레이너 씨의 말에 답변했고, 그 답에 반박할 말이 특별하게 떠오르지 않았던 트레이너 씨는 어깨를 한번 으쓱인 뒤, 책상 옆 선반에 구비해 둔 과자 몇 개를 꺼낸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조금 쉬려고 했는데, 심심하진 않겠네. 둘 다, 자리에 편하게 앉아.”
“어머, 감사합니다.”
“고맙다, 트레이너 군.”
그녀들을 언제나의 소파로 안내한 뒤, 소파 앞 유리 탁자 위에 손에 든 과자를 내려놓는다. 그리곤 그녀들의 맞은편 소파에 착석한다.
그리곤 과자를 하나 까서 입에 털어 넣고 우물우물, 햄스터처럼 먹는다. 초콜릿의 단맛이 입 안을 가득 채우고, 머리를 맑게 만들어 준다. 역시 머리를 쓰는 일을 할 때는 초콜릿 쿠키를 먹어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메지로 아르당과 심볼리 루돌프는 트레이너가 가져온 과자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타는 그녀들이었기 때문에, 마실 것도 없이 음식을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레이너 군, 오늘은 주말인데 왜 양복을 입고 있지?”
심볼리 루돌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주말은 휴식의 시간이고, 업무 때문에 출근한다 해도 구태여 양복을 입고 나올 필요는 없다. 보통, 편한 옷을 입고 나와 최대한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하는 것이 정상이겠지.
그렇기에 심볼리 루돌프도,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메지로 아르당도 오늘은 중앙 트레센의 교복이 아닌, 각자의 사복 차림이었다. 아무래도 사복이 편하니까.
“오전에 외부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었어. 아무래도 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이다 보니까 입고 갔어. 그리고 바로 사무실로 출근한 거라서, 이런 차림이네.”
“후후, 괜찮아요. 트레이너 씨는 양복도 잘 어울리시는걸요.”
“양복 입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말이야.”
메지로 아르당의 칭찬에 그는 피식 웃으며 가볍게 투덜거린다. 몸에 딱 맞는 옷은 그의 취향이 아니다. 움직이기 불편한 것도 있거니와, 원체 예민한 사람이니까.
메지로 아르당은 그런 그의 작은 기벽을 잘 알진 못하지만, 꽤 오랜 기간 함께한 심볼리 루돌프는 대강이나마 알고 있기에, 쓴웃음을 지으며 메지로 아르당과 트레이너 군을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본다.
“…….”
그러다가 문득, 트레이너 군의 의상에서 작은 위화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위화감의 정체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분명히 뭔가 다른데, 평소의 트레이너 군이 입던 양복과 미묘하게 다른데.
그리고 그 위화감을, 메지로 아르당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 생글생글 웃던 얼굴은 순식간에 차분한 눈으로 트레이너 군을 스캔하고 있었다.
그런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트레이너는, 그녀들에게 재차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정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둘이 온 거니?”
“무슨 이야기를 할 거로 생각했나, 트레이너 군?”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나 묻고 싶은 것이 없다면, 이 시간에 구태여 나를 찾아오지는 않았겠지.”
“후훗, 트레이너 씨의 말대로이긴 하네요.”
심볼리 루돌프가 뭐라 답을 하려던 차에, 메지로 아르당이 한발 앞서 트레이너 씨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 아르당을 잠시 보던 트레이너 씨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다른 애들도 아니고, 너희들이라면 뭔가 이유나 생각이 있어서 온 거겠지.”
“……딱히, 이유가 있어야만 트레이너 씨를 찾아오는 건 아니니까요.”
트레이너의 말에 메지로 아르당이 살짝 볼을 부풀리며 반박한다. 조금 섭섭한 말을 해버린 것일까, 여고생의 마음은 정말이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메지로 아르당과는 달리, 심볼리 루돌프는 고개를 끄덕이며 트레이너의 말을 긍정한다.
“트레이너 군이 짐작하는 대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왔다.”
“그래그래. 나는 너희들의 트레이너니까, 얼마든지 물어보렴.”
그렇게 말하며 그는 초콜릿 쿠키를 하나 입으로 가져간다. 온종일 머리를 썼더니, 뇌가 피곤하던 차였다. 메지로 아르당과 심볼리 루돌프의 방문을 핑계 삼아 잠시 머리를 식히며 당분을 보충하는 것 정도는 업무에 지장이 없으리라.
“토키노 미노루에 대해서 알고 싶다.”
“……?!”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는 우물거리던 초콜릿 쿠키를 마저 씹지도 못한 채, 자기도 모르게 꿀꺽, 삼켜버렸다.
토키노 미노루라는 이름을 그가 모를 리가 없다. 그야, 그가 중앙 트레센에 처음 입사했을 때 담당했던 우마무스메니까.
그러나 그 이름이 지금의 담당 우마무스메, 심볼리 루돌프의 입에서 나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토키노 미노루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을 터.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심볼리 루돌프, 그리고 옆에서 호호 웃고 있는 메지로 아르당을 한 번씩 쳐다본 뒤, 평소보다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갑자기 미노루는 왜.”
“…….”
“…….”
그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트레이너 본인은 그 이유를 모를 것이나, 두 우마무스메는 서로 말하지 않았지만 공통된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갔기 때문이다.
트레이너 씨가 토키노 미노루를, 자연스럽게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그냥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의 사이였다면, 두 사람이 그저 비즈니스 사이였다면, 토키노 미노루가 은퇴하고 중앙 트레센을 떠난 시점에서 트레이너 씨가 그녀를 이름으로 부를 이유가 딱히 없다.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토키노 미노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일반적이라면 토키노 씨, 또는 토키노 미노루라는 풀네임을 먼저 말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트레이너 씨와 토키노 미노루의 사이는 보통의 담당 우마무스메보다 친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두 우마무스메 모두 고개를 흔들어 그런 잡념을 털어낸다. 그건 과거의 일일뿐더러, 지금의 트레이너 씨 또한 메지로 아르당도, 심볼리 루돌프도 모두 이름으로 불러주니까.
……뭐, 사토노의 아가씨는 아직 성으로 부르는 것 같지만, 나만 아니면 된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것은 트레이너 씨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침묵이 길어지자 뭔가 의구심을 갖는 트레이너 씨의 눈동자를 보니, 심볼리 루돌프는 어깨를 으쓱이며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최근, 중앙 트레센을 졸업한 선배들에 관한 회지를 작성하고 있다. 그런데, 신잔과 더불어 중앙 트레센 최고의 걸작, 최고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토키노 미노루의 정보가 신잔과는 달리 중앙 트레센에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말이지.”
그런 심볼리 루돌프의 설명에, 메지로 아르당이 옆에서 맞장구를 친다.
“저도 종종 도와드리고 있는 일이라서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토키노 미노루를 담당하셨던 트레이너분이 가까운 곳에 계셨잖아요?”
“…….”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트레이너 씨는 곤란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눈앞의 두 담당 우마무스메보다 어른이며, 상아탑을 포함하여 사회에서 구른 것만 수년은 더 앞서 있다.
그럴진대, 고등부 학생들의 급조한 거짓말 정도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심볼리 루돌프의 거짓말도, 메지로 아르당의 동조도, 그의 눈에는 너무 환하게 보였다.
그야 당연하지. 학생회장인 심볼리 루돌프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생각하면, 그녀가 회지 작성까지 맡아서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것도 메지로 아르당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회지 작성을 학생회에서 할 이유조차 그다지 없으니까.
물론 회지 작성 자체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이, 그녀들의 시간을 내어 가면서까지 도울 일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그는 구태여 둘을 추궁하진 않는다.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그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거니와, 다른 아이들도 아니고 메지로 아르당과 심볼리 루돌프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착실했던 아이들이니만큼, 그 작은 일탈이 귀여워 보인 것이리라.
그렇지만 토키노 미노루의 트레이너였던 자로써, 이 아이들에게 토키노 미노루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이 옛 담당 우마무스메와의 약속이니까.
그래도 묻는 말에는 대답해 줄 생각이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들의 담당 트레이너가 아닌가. 이쪽의 거짓말 또한 심볼리 루돌프나 메지로 아르당이라면 대강은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문제다.
“그래, 뭐가 궁금하니?”
그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가 조심스레 첫 번째 질문을 던진다.
“토키노 미노루는…아직, 트레이너 군과 연락하고 있는가?”
“걔랑 졸업 후에 사적으로 연락한 적은 없어.”
그래, 토키노 미노루와는 사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다. 그녀의 졸업 후, 처음 연락을 받은 것도 토키노 미노루가 아닌, 중앙 트레센의 이사장 비서, 하야카와 타즈나로부터 받은 것이니까.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전부 말할 생각도 없다.
어디까지나 담당 트레이너로서 그녀들의 요구에 부응할 정도만, 적당히 대답할 생각 만만이었다.
“그러면…졸업 후에 뭘 하고 계시는지도 트레이너 씨는 모르시겠네요.”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그는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말은 안 할 거니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해 준다.
“사적인 일을 딱히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취직했다는 건 알아.”
“…어디에 취직했는지도 아시나요?”
“사람 도와주는 쪽으로 알고 있어.”
아키카와 이사장 꼬맹이를 지탱(이라는 이름의 관리와 계도)하는 것이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의 주된 업무니까, 틀린 말은 아니리라.
“혹시, 졸업 후에 만나신 적 있으신가요?”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그는 사실대로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거짓말을 하는 것은 조금 그랬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있어.”
아무래도 하야카와 타즈나가 종종 보여주는 토키노 미노루로서의 모습이,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을 리가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와 단둘만 있을 때는 하야카와 타즈나보다 토키노 미노루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그렇다고 당장 어제도 저녁 일곱 시 반쯤에 너희랑 같이 만났어, 라고 할 수는 없으니, 그런 말은 목구멍으로 삼킨다.
“……그렇군요.”
메지로 아르당의 눈초리가 살짝 사나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한다. 그러다가 심볼리 루돌프가 손을 들고 질문의 의사를 나타내자, 그제야 메지로 아르당에게서 시선을 돌릴 수 있었다.
“일본 더비 이후의 갑작스러운 은퇴 발표…트레이너 군, 이 은퇴의 이유가 뭔지, 알려줄 수 있겠나?”
심볼리 루돌프의 말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토키노 미노루의 은퇴는 파상풍의 후유증으로 인해 그 당시에는 더 이상 달리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이야기해 주기에는, 너무나도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짧게 한마디를 던졌다.
“부상이 있었어.”
“아…….”
“그랬군. 미안하다, 트레이너 군. 좋지 않은 기억이었을 텐데.”
그의 말에 두 우마무스메가 잠시 숙연해진다. 그녀들에게 있어 부상으로 인한 은퇴는, 어찌 보면 최악의 은퇴 형태이기 때문이다.
당장 토카이 테이오만 봐도, 골절 부상으로 인해 제법 오랜 기간 고생을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화려하게 부활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은퇴했더라면 분명, 토카이 테이오는 무너져 버렸으리라.
마찬가지로 메지로 아르당 또한, 그녀의 유리 다리가 언제 산산이 부서질지 알 수 없다. 트레이너 씨가 과할 정도로 세심하게 관리하는 것은, 메지로 아르당의 다리 수명을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메지로 아르당과 심볼리 루돌프의 머릿속은 한 단어가 지배하고 있었다.
병원.
중앙 트레센의 학생이 입원할 법한 병원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라면 분명, 병원의 진료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토키노 미노루의 행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외부인, 타인의 병원 진료 기록 열람은 불법이지만, 뭐, 안 걸리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주소지 정도만 열람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자신의 담당 우마무스메들이 그런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모른 채, 그는 심볼리 루돌프가 다음 질문을 하기를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 질문은 심볼리 루돌프가 아닌, 메지로 아르당이 던졌다.
“토키노 씨의 출신지를 아시나요? 중앙 트레센에 남아 있어야 할 정보들도, 어째서인지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메지로 아르당의 눈은 트레이너 씨를 향하고 있었다. 그 속에 담긴 의미가 추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그가 토키노 미노루의 출신지를 대답하고 난 직후였다.
“홋카이도 출신이야.”
“어머, 그렇군요.”
토키노 미노루의 고향이 어디인지 안다면, 그곳에서부터 그녀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으리라. 메지로의 정보망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아니다).
그런 메지로 아르당을 보며, 다음에는 말하는 것을 조금 더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트레이너 씨는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담당 우마무스메들, 특히나 메지로 아르당에게는 이상하리만큼 풀어지는 것이 있기에, 조금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트레이너 씨에게, 메지로 아르당이 재차 질문을 던진다.
“혹시 토키노 씨의 승부복 견본이 남아 있을까요? 아니면 트레이너 씨가 가지고 계신 토키노 씨의 승부복 차림의 사진이라거나…있으시다면 볼 수 있을까요?”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래도 졸업한 선배의, 그것도 대단한 업적을 세운 선배의 승부복에 대한 것은, 중앙 트레센의 우마무스메라면 분명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토키노 미노루의 사진을 볼 수 있느냐 묻는 것이다. 어떻게 된 것인지 토키노 미노루의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중앙 트레센이었지만, 담당 트레이너라면 한 장쯤 가지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지로 아르당의 질문에, 트레이너 씨는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사진은 있지만, 사적인 부분이니 보여주는 것은 곤란해.”
“그런가요, 트레이너 씨의 뜻이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네요.”
메지로 아르당은 순순히 물러났다. 애초에 물러나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트레이너 씨를 겁박이라도 해서 토키노 미노루의 얼굴 한 번 볼 것인가? 고작 그런 사소한 일 때문에 트레이너 씨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심볼리 루돌프도 마찬가지였는지, 아쉽다는 얼굴이었지만 트레이너 군의 말에 특별히 딴지를 걸지 않는다.
“그래도, 승부복 시안이라면…컴퓨터 뒤져 보면 어디에 있을 거야.”
그 말에 두 우마무스메의 귀가 쫑긋, 움직인다. 그리고 심볼리 루돌프가 트레이너 군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재빨리 대답한다.
“괜찮다면, 보여줄 수 있겠나.”
“뭐, 시안 정도야 어려울 건 없지.”
그렇게 말하며 트레이너는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 컴퓨터를 뒤진다. 심볼리 루돌프도,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도 승부복 정도로 토키노 미노루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녀들 또한 중앙 트레센의 학생, 토키노 미노루의 승부복이 어떤지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얌전히, 트레이너 씨가 옛 제자의 승부복 시안을 찾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기다린다.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는 것이, 그래도 나름의 기대감이 있다는 방증이리라.
“어디 있더라…워낙 오래전 일이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천천히 찾게, 트레이너 군. 시간은 많으니까.”
“전설적인 우마무스메의 승부복이라니…정말로 기대가 되네요.”
담당 우마무스메들의 꼬리가 점점 빠르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자, 그의 손가락도 조금씩 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애초에 저 둘은 시간이 많을지 몰라도, 이쪽은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러다가 이내, 오래전 자료들을 백업해 둔 폴더 깊숙한 곳에서, 그는 찾아내고야 말았다.
“여기 있었네. 이게 시안이야. 시간 참 빠르네.”
그의 말에, 두 우마무스메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트레이너의 곁으로 다가와, 그의 어깨 너머로 모니터 속 화면을 바라본다.
“이것이…토키노 미노루의, 승부복이로군.”
“시안이라서 색은 없는 건가요?”
심볼리 루돌프는 작게 감탄을 내뱉었고, 메지로 아르당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완전히 시안이라서 색은 안 넣었었고, 완성본이랑 차이도 조금 있어.”
그렇게 말하는 트레이너 씨의 얼굴은, 과거의 날들이 떠오르는 듯, 향수에 젖은 표정이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메지로 아르당은 꼬리를 흔들어 그의 시야를 방해하며 말한다.
“이 승부복 시안, 혹시 제공해 주실 수 있으시나요? 회지에 넣으면 알찬 내용이 될 것 같아서요.”
“으음…….”
그는 작은 ㅅㅇ과 함께 고민에 빠졌다. 토키노 미노루를 드러내는 것은 꺼려지지만, 누가 뭐라 해도 토키노 미노루는 신잔과 더불어 중앙 트레센의 전설이다. 모든 것이 베일에 싸인 전설은, 종국에는 영원히 잊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토키노 미노루가 원하는 것이라 하여도,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였던 사람으로서는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아주 조금, 정말로 조금, 토키노 미노루의 이름이 중앙 트레센의 학생들에 의해 회자될 정도만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애초에 승부복 시안 정도면, 완성본이랑 제법 다르기도 하거니와 그녀를 상징하는 색이 어떤 것인지도 모를 테니까. 토키노 미노루가 드러나진 않겠지만, 전설이 실존했다는 증거로서는 충분하니까.
“시안 정도라면…외부에 반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제공해 줄게.”
“정말인가요……!”
“감사를 표하네, 트레이너 군. 중앙 트레센의 많은 학생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겠어.”
“그래. 메일로 보내줄 테니까, 사용하고 파일은 삭제해 줘.”
그렇게 말하며 그는 심볼리 루돌프의 메일주소에 메지로 아르당을 참조하여 승부복 시안 파일을 보낸다. 직후, 그의 메일함에 하야카와 타즈나의 메일이 하나 도착한다.
제목에서부터 붉은 글씨로 ‘긴급’이라고 적혀 있었으며, 공교롭게도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도, 모니터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 제목을 보고야 말았다.
“급한 일이 생긴 건가, 트레이너 군.”
“타즈나 씨도…바쁘시네요.”
심볼리 루돌프도, 그리고 메지로 아르당도, 쓴웃음을 지으며 더는 담당 트레이너의 시간을 빼앗을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러게. 주말에 쉬겠다던 사람이 갑자기 긴급 메일을 보내다니, 무슨 일인지 확인해 봐야겠네.”
“그런가…시간을 빼앗아서 미안하군.”
“아무래도 저희는 돌아가야겠네요.”
두 우마무스메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담당 트레이너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사무실 문 쪽으로 걸어간다.
“그래. 주말 잘 보내고, 월요일에 보자.”
그러면서 그는 담당 우마무스메들을 손을 흔들어주며 배웅한다.
그리고 그런 트레이너 씨의 오른손을, 심볼리 루돌프와 메지로 아르당은 무심코 바라보았고,
“…….”
“…….”
알 수 없었던 위화감의 정체를, 두 우마무스메 모두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검은색 양복의 손목, 알아차리기 어려울법한 안쪽 소매에, 메지로 아르당과 심볼리 루돌프가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가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녹색의, 금테가 둘린, 처음 보는 것.
사토노 다이아몬드나 키타산 블랙 같은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토카이 테이오나 메지로 맥퀸 같은 아이들은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 의미까지는 모르겠지만,
공교롭게도 심볼리 루돌프도, 메지로 아르당도 그것이 무엇인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까지 아주 잘,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위화감의 정체를 깨닫고, 그것을 이해한다. 저건 분명하게 ‘여성’이 남성에게 주는 선물이다. 심지어 단순한 선물이 아니고, 소중한 의미를 담은 선물.
당신을 붙잡아 두겠다는 강력한 속박의, 독점력의 의미.
트레이너 씨의 성격상 그가 원해서 단 것은 아닐 것이고, 분명 선물한 사람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으리라.
그리고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이 사람은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
―선전 포고.
트레이너 씨의 배웅을 받으며, 두 우마무스메는 사무실 밖으로 나간다. 메지로 아르당이 천천히 문을 닫았고, 심볼리 루돌프와 함께 학생회실 쪽으로 걸어간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알아낸 것에 대해 소곤거리며 복도를 걸어갔겠지만, 심볼리 루돌프도 메지로 아르당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늘 트레이너 씨의 대화에서 알아낸 것도, 승부복 시안을 받은 것도, 그녀들이 알아차린 위화감의 정체보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커프스 버튼.”
심볼리 루돌프가 중얼거린다.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메지로 아르당이 이어서 한 마디를 덧붙인다.
“누가 선물한 건지, 짐작이 가네요.”
그리곤 두 우마무스메 모두 큰 한숨을 내쉰다. 여자의 직감으로, 우마무스메의 본능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그러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한 명의 이름을 중얼거린다.
“토키노, 미노루.”
“토키노…미노루.”
심볼리 루돌프는 으르렁거리듯이, 메지로 아르당은 걱정스럽다는 듯이.
그리고 그제야, 두 우마무스메들은 자신들의 본능과 직감을 확신할 수 있었다.
“트레이너 군의 가까이에, 있다.”
“트레이너 씨를, 가슴에 품고 있어요.”
가장 거대한 산이, 그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토키노 미노루는, 그녀의 옛 담당 트레이너에게 신마의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메지로 아르당도, 심지어 심볼리 루돌프조차 모를 만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트레이너 씨가 저희에게 거짓말을 하신 것이 아니라면.”
메지로 아르당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 또한 메지로 아르당과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사적으로 연락한 적이 없다는 건, 공적으로는 연락한 적 있다는 뜻이고, 졸업한 이후에 만난 적이 있으며, 최근, 트레이너 군이 바쁜 와중에도 선물을 주었다. 이게 전부 사실이라면.”
“토키노 미노루는…트레이너 씨의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네요. 바쁘신 트레이너 씨를 원할 때마다 만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
“그렇지. 마치, 중앙 트레센 내부…같은.”
두 우마무스메가 동시에 발걸음을 멈춘다. 그러더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자그마한 추론을 하나씩 덧붙인다.
“커프스 버튼같이 큰 의미를 담는 선물을, 기성품으로 아무렇게나 사서 줄 수는 없겠지.”
“중앙 트레센의 우마무스메에게 가장 소중한 것에서 떼어 냈을 가능성이 크겠죠.”
“시시할 정도로 정석이지만,”
“치사할 정도로 약삭빠르지만,”
누군가에게 한탄하듯이 한 마디씩 중얼거리더니, 곧이어 두 우마무스메는 서로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음을 깨닫는다. 어쩔 수 없다는, 토키노 미노루를 이해한다는 얼굴. 그러면서도 한 방 먹었다는 얼굴. 그러나 한편으로는 기대감에 찬, 기쁜 얼굴.
“나였어도, 트레이너 군에게 같은 것을 주었을 것이다.”
“저였어도 분명, 똑같이 했을 거예요.”
그러면서 동시에, 정답을 말한다.
““승부복.””
단서를 잡았다.
두 우마무스메는 웃었다.
봄날이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어느 날의 중앙 트레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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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독점력을 한 스푼 더한.
도망칠...수..없을...것이다...
이제 조만간 눈앞에 펼쳐지는 중마장의 트레센!
추리 서스펜스 같은 긴장감! 중마장이란 태풍이 오기 직전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게 아주 마싯써!
Arstraea
2024/06/10 21:28
도망칠...수..없을...것이다...
지나가던 정상인
2024/06/10 22:42
추리 서스펜스 같은 긴장감! 중마장이란 태풍이 오기 직전의 고요함이 느껴지는 게 아주 마싯써!
KaidoHKS
2024/06/10 22:59
이제 조만간 눈앞에 펼쳐지는 중마장의 트레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