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그리미치킨입니다.
참고로 그리미치킨은 그냥 만든 이름입니다. 그런 치킨집 없어요.
이 내용은 100% 본인 연구와 자료조사를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없어요. 자 본론으로 가볼까요.
일단 조선시대라 함은, 1392년부터 1910년 정도까지 500년 정도의 역사가 있겠죠.
그러면서 급여도 달라졌고, 상황도 달라졌지만
제 기준은 16세기 임진왜란 전 명종시대를 기준으로 합니다. 즉 조선 초~중반기라고 볼 수 있죠.
조선 초기에 공무원들은 세금을 대신 받는 것으로 월급을 대신했습니다. (수조권이라고 하며, 토지세 개념이죠)
그러나 조선 중반 임진왜란 이후부터는 곡식만 받고 세금을 대신 거두는 제도가 사라집니다.
즉 월급이라고 (녹봉)을 주었으며 생필품을 주었고, 이 제도가 시작되었을때는 1년에 4번 받았습니다.
(참고로 조선말에는 매월 받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자 재밌는 이야기 시작합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종 9품은 오늘날 9급 공무원에 해당한다? OX
답은 X 입니다.
설명먼저 할게요.
조선시대 공무원 시험은 3년에 한번 열렸습니다. (다만 큰 행사나 특별한 경우에 열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1차 공무원시험을 보고(과거시험) 생원 700명, 진사 700명을 뽑았습니다.
즉 1400명을 뽑은 것입니다. 참고로 진사는 글짓기능력, 한자어휘능력을 본 것이고, 생원은 유교지식 능력을 본 것이라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로 뽑인 1400명이 생원과 진사입니다. 이들이 오늘날의 9급 공무원이라고 볼 수 있죠.
종 9품으로 급제하기 위한(합격하기 위한) 경쟁률은 50: 1을 넘는다? OX
맞습니다. 1차 시험에 합격한 1400명을 대상으로 2차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초시-복시)
1400명이 시험을 보고 (적을 수 있습니다. 진사, 생원에 만족하고 안보는 경우도 많거든요)
1400명이 봤다고 가정하면 그 중 33명이 합격을 합니다. 1등은 장원급제로 6~7품으로 임용되었고
그 1400명 중 합격한 33명중 33등이 종9품으로 임용이 되었습니다.
결국 종 9품의 경쟁률은 1400: 33이고, 종9품의 위상은 오늘날 행정고시 5급 공무원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종 9품의 월급은 오늘날로 얼마일까? (60만원)
정답은 60만원입니다.
예? 꼴랑 60만원이요?
명종 20년 당시 기록에 따르면 종9품의 공무원의 월급으로 곡식 1석, 삼베(옷감) 2필, 저화 1장을 주었다고 합니다.
곡식 1석은 명종 20년 당시 190 kg 정도를 의미했습니다.
오늘날 쌀 10kg이 3만원정도죠? 그럼 200kg이면 60만원이겠네요?
아니죠. 오늘날 현대 농업기술로 재배하는 쌀과,
조선시대 소와 비료와 농부의 손으로 만들던 쌀의 가치는 달랐을 것입니다.
둘째, 당시에 조선은 농업국가였고, 국민의 30% 이상이 식량이 부족하던 때였습니다.
쌀 200kg라면 식구들이 모두 배부르게 3끼를 챙겨먹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고 그것은 절대 당연한게 아니었습니다.
셋째, 옷감 2필, 명종 20년 기록에 따르면 가로 60~80 cm에 세로 15~18 m를 1필이라고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옷감 1필로 옷을 2~4벌 만들 수 있었죠. 그렇다면 옷감 2필로 6벌을 만든다고 칩시다.
아들 딸 아내 본인 부모님 6명이 가족을 구성한다고 치면(노비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했습니다.)
1달에 한번 옷을 사입을 수 있던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리고 저화 1장은 고기를 사먹을 수 있었고, 이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의 잣대로는 함부로 판단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겠죠.
그러니까 명목으로는 60만원이지만 사실상 오늘날 가치로, 대충 중산층 월급이라는 것을 아시겠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치겠습니다.
다음은 더 재미있는 역사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종 9품 녹봉에 비하면 궁녀들 내시들 월급은 잘 받는 편이었군요
잡곡이며 북어같은 부식도 같이 받았다고 하니까요
대신 궁인이 되려면 남자는 싹뚝 여자는 평생 모쏠로 살아야했으니...
왜 돈으로 안 주지?
재미있는 이야기 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 게속 이야기 진행 부탁드립니다.(오유에 글 올리시기 위해 더욱 더 열심히 공부하시라는 말씀입니다. ㅋ)
1897년부터 1910년까지는 대한제국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글은 언제나 추천이야
쌀의 가치는 가을과 봄에 차이가 2배이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춘궁기에 쌀을 빌려주고 수확기에 받을때는 100% 이상 더 받았는데 이 차이를 단순히 보면 고리대금업으로 오해하기도 하게 되죠 (진짜 고리대도 있었겠지만)
인공지능 광고 ㅎㄷㄷ
벼슬한사람도 가난했겠네요.
쌀200키로라고해도 그당시 밥먹는양이 있는데 가족들밥먹고 옷 해입고 끝이네요.
어쩌면 한민족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때가 조선시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유익한 내용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자, 이제 만화로 만들어 주세요 ^^
여기에 추가로 몇가지가 들어갑니다.
벼슬을 한 사람과 그의 자식, 그의 손자 까지 '양반' 직위를 얻으며, 평상시 군대를 안가고 일부 세금을 면제해주는 대신 많은 의무도 지게되죠.
만약 손자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하면 증손자는 양반이 아닌 양인 계급으로 도로 떨어지게 됩니다.
정성글엔 추천이야
나를 토해 베오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