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이 많으시네요, 선생님. 커피 한 잔 하시는 건 어떨까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평화로운 날이었다. 아니, 조용할 일 없는 키보토스이니 평화로운 날을 여느 때와 다름 없다고는 할 수 없을테지만, 여하튼 어쩐 일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었다.
게헨나의 온천연구부가 온천을 파기 위해 다른 학교를 침범했다던지, 밀레니엄의 게임개발부가 올해의 똥겜의 유력한 수상 후보를 만들었다던지, 아비도스의 시로코가 또 어딘가 은행을 털었다던지 하는 소식이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또 다른 요주의 인물─쿠로다테 하루나가 샬레의 당번으로 있었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미식연구회가 또 어딘가의 식당을 폭파시킬 일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그녀 외에도 수많은 위험한 이들이 있지만, 적어도 하나는 눈 앞에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 사실에 마음이 가벼워져 절로 미소가 나왔다.
"고마워, 하루나. 잘 마실게."
"후훗, 별 말씀을. 제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제 특제 레시피로 맛을 더한 카페라떼랍니다."
선생이 카페라떼를 받아들고 감사를 표하자, 하루나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살며시 올라간 입꼬리가 단정한 모습에 곁들여지니, 하루나가 어느 귀한 집 아가씨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귀한 집 아가씨가 맞던가.
몇 번인가 하루나의 맛집 탐방에 동행했던 선생은 하루나의 몸에 밴 듯한 그 우아한 식사 예절을 떠올렸다.
게다가 까다로운 하루나의 입맛을 통과한 식당들은 미식에 일가견이 없는 선생의 입에도 놀라울 정도였으니, 적어도 미식을 향한 그녀의 열정과 실력은 진짜였다.
미식을 기만한 자에게 철퇴를, 이라는 명분 아래 테러를 저지르지 않고 얌전히 있기만 하면 좋을 텐데.
하루나에게서 받아든 카페라떼는 그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었다. 은근하게 올라오는 단맛이 커피의 맛을 너무 죽이지는 않고 깔끔하게 감쌌다. 딱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 억눌린 쌉싸래한 맛이 만족스러웠다. 과연 하루나가 공인한 카페였다.
다시 한 번 라떼 한 모금을 즐긴 선생이 만족스런 한숨을 내쉬며 하루나에게 물었다.
"하루나가 좋아할 만 하네. 그런데 특제 레시피는 뭐야?"
미식 연구회 부장이라는 직책은 괜히 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루나가 특제 레시피라 말하는 것들은 놀라운 맛의 변화를 가져왔다. 다른 카페에서도 쓸 수 있는 레시피라면 좋을텐데, 하는 마음에 선생이 그리 묻자, 하루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마음에 드셨다니 보람이 있네요. 사실 이번 레시피는 아주 간단하답니다.
모유에요."
케헥, 선생이 머금고 있던 카페라떼를 뱉어냈다. 하루나가 놀란 듯 입가를 가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어머, 농담이었는데."
선생이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하루나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한들 눈가에 맺힌 눈물 때문에 우습기만 했기에, 하루나는 기어코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제발, 그런 농담은 하지 말아줘……."
"그렇게까지 놀라실 줄은 몰랐는걸요, 후후."
찔끔 배어나온 눈물을 닦아낸 하루나를 흘기며 선생이 한숨을 내쉬며 책상에 놓인 카페라떼를 바라봤다. 아까만해도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줄어드는 게 아쉬웠는데, 이제는 반대로 영 손이 가질 않았다.
"후훗, 걱정 마세요. 진짜로 특별한 레시피는 분유 조금이에요."
그리 말해도 미심쩍은 것은 방금 들은 말 때문일 것이다. 그 시선에 하루나는 "정말이랍니다." 라고 말하며 당당히 가슴을 폈다.
그래 뭐, 실제로 분유를 쓴다고 하는 자판기 우유는 나름의 맛이 있긴 하니까. 게다가 설마 그 하루나가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는 않을 터였다. 선생이 손에 든 카페라떼를 다시 한 모금 머금었다.
"사실 정말 모유를 넣어보고 싶긴 하지만요."
이어지는 하루나의 말에 다시 입 안의 카페라떼를 내뱉지 않은 것은 선생의 초인적인 인내심 덕이었다. 넘어가지 않는 카페라떼를 억지로 삼켜낸 선생이 눈을 반 쯤 뜨곤 하루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어디 한 번 지껄여, 아니, 학생에게 할 말과 못 할 말이 있지, 말 해보라는 뜻이었다.
"모유도 초유와 이행유, 성숙유로 분류된다고 해요. 출산 후 일주일 정도 분비되는 모유가 초유, 그 이후 초유에서 성숙유로 바뀌는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의 과정에서 분비되는 모유가 이행유, 그리고 그 이후가 성숙유라고 하네요."
남자에게는 생소한 지식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눈 앞의 하루나에게 생소하지 않을 지식이라기에는 애매했다. 그야 여고생 아닌가.
"많이 알다시피 초유는 아기의 면역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성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요. 그리고 성숙유로 변하는 과정에서 구성 성분이 변해서 맛도 달라진다고 하구요. 으음, 미식의 길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역시 모유의 맛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비교해보고 싶네요."
세상에, 모유를 맛보고 싶다는 일념 하에 모유에 대한 지식을 뽐내는 여고생이라니. 이쯤 되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그녀의 행동을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말하자면, 광기라 해야 할까.
저 정도로 조사를 했으면 하루 이틀 생각한 것이 아닐 게 뻔했다. 아마 어떤 계획이 세워져 있겠지. 그간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하루나가 저리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초를 다지고 밑밥을 까는 것이었다.
선생은 미식 연구회가, 쿠로다테 하루나가 미리 끔찍한 일을 저지르기 전에 그 계획을 알아내서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에 하루나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 모, 그걸 맛보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하려고?"
"으음, 좋은 지적이에요, 선생님. 말씀하신 게 맞아요. 아무리 미식의 길이 중요하다 한들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 분에게 '제게도 젖을 좀 주실 수 있을까요?' 라고 부탁할 수는 없으니까요."
여고생의 입에서 젖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이 굉장히 미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쩐 일로 하루나의 입에서 상식적인 말이 나왔다. 선생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젖이 많은 여성도 있어서, 젖동냥을 하는 척하고 성숙유를 구해본 적은 있었지만, 역시 갓 짜낸 것이 아닌게 아쉬웠달까요."
하루나는 진심으로 아쉬운 듯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선생이 얼굴을 감싸쥐었다. 도대체 세상 어떤 여고생이 모유를 마셔보고 싶다며 젖동냥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 선생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은 하루나는 마치 연극을 하듯 표정을 고쳐 지었다. 가슴에 한 손을 올리고 다른 팔을 쭉 펴는 것이 정말로 계획을 자랑하는 악역 배우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 악역이 맞지 않을까.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곳은 있다던가요. 신선한 모유를, 그것도 시간에 따라 맛을 비교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답니다!"
핫, 선생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지금이 중요했다. 하루나의 그 집념에 두려워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미식연구회의 피해자를 줄이는 것이 선생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주로 선생의 위장을 위해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선생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던지, 입꼬리를 슬쩍 올린 하루나가 선생에게 한발짝 다가갔다. 여학생들끼리만 있어서 그런지, 가끔 이렇게 이성과의 거리감도 지나치게 가까운 학생들이 몇 있었다. 슬쩍 풍겨오는 달큰한 향기에 선생이 숨을 삼켰다.
"조금 긴 계획이 될 것 같은데,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과격한 것만 아니라면."
하루나는 선생의 답에 빙긋 웃었다. 능히 사람을 홀릴 수 있는 웃음이었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아가씨다운 모습에, 평소에도 좀 겉모습처럼 얌전하면 좋을텐데, 하고 선생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데?"
"으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이어지는 선생의 물음에 달력을 바라본 하루나가 손가락을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뭔가 계산하는 걸까.
검산을 하듯 몇번인가 손을 접었다 폈다한 하루나가 손뼉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마침 오늘 딱 좋은 날이네요."
"무슨 날인데?"
"제 위험일이랍니다."
-
10개월짜리 계획
생각나서 수정 좀 더 하고 추하게 재업함
미식이네요
선생님 뒤에 장면이 잘린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생각으로, 미식연구를 위해서라면 모두가 함께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미식은 모두와 함께 즐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것 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라는 하루나의 대답을 끝으로 방 안에서는 묘한 ㅅㅇ소리와 흐느적 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브륭브륭
2022/08/20 09:39
미식이네요
둥그런연필
2022/08/20 09:41
선생님 뒤에 장면이 잘린것 같습니다
Esper Q.LEE
2022/08/20 09:41
선생님은 순간의 위기를 모면할 생각으로, 미식연구를 위해서라면 모두가 함께 있어야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미식은 모두와 함께 즐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것 만큼은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라는 하루나의 대답을 끝으로 방 안에서는 묘한 ㅅㅇ소리와 흐느적 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ZON-
2022/08/20 09:46
아기와 함께 미식탐방은 언제 나오나요
ㅍH도ㅍH릿
2022/08/20 09:46
거기선 후우카의 위험일이라고 했어야지!
Mask빌런
2022/08/20 09:46
도와줘 히나아아아아아!!
로리에트연방
2022/08/20 09:47
여기 하루나 만큼 광기에 물든놈이 하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