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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야 하는 사람과 가야만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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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까지 이어진 길이 끝나고, 4륜이 아니면 갈수없는 험한길을 따라 올라가면 촌집 하나가 나온다.
빈집으로 방치된 집을 임대해서 부부가 들어왔다.
6개월정도 살겠다며 선불로 30만원을 지불했고, 뒤에 다시 일년치 60만원을 더 계산했고, 일년하고 두어달쯤 지난듯 하다.
전기는 들어오지만, 수도는 없다.
깊은 오지라는 느낌이 든다.
우진은 개인택시를 하다가 팔아버리고 영업용 택시를 운전하다가 그만두고 산을 찾았다.
농번기에 일을 도와주고 일당을 받기도 하지만, 한달에 몇일 뿐이다.
도시에 있을때는 한달 술값도 안되는 돈이지만, 야채와 나물, 더덕이며 도라지, 버섯들을 자연산으로 구해오니, 작은 돈에도 별 부담이 없다.
오늘은 잔대를 좀 구하겠다며 산행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이상한 가족인듯 비칠수도 있으니, 짧은 설명을 하고 넘어가자.
우진은 결혼을 일찍 했었다.
외동아들 이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시켰다.
말 그대로, 결혼을 한게 아니라 시켜서 했다.
그러니 결과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갓난아기를 두고 이혼을 했고, 혼자서 아들 하나를 키웠다.
아들이 다 큰 어느날 지금의 아내를 만나서 재혼을 했고, 아들은 그런 아빠를 인정할수 없다며 인연을 끊어버렸다.
우진또한 별 생각없이 찾을 생각도 해본적 없이 살아간다.
“형, 잘 지냈어?”
“경호, 오랜만이다!”
“이야~ 누나는 더 이뻐진다!”
“하이고~ 말이라도 고맙다!”
“거의 정상까지 가야하는데, 빨리 출발하자!”
“잔대, 좀 없으면 가까운데서 천천히 구해요.
힘들게 험한곳으로 가려고 하지말구요.”
“다른게 없으면 급할거 없는데, 잔대는 아니다.
지난번에 봐둔곳이 있거든.
잔대랑 더덕이랑 도라지 넉넉하게 캐올테니까, 혼자 좀 있어!”
“알았어요.
갔다오면, 달래 된장찌개 해줄거죠?”
“응, 내가 해줄테니까, 반찬 만들지 마!”
버섯과 잔대를 구하며 산을 올라간다.
“형, 누나 좀 어때?”
“니가봐도 괜찮지?”
“그러게, 정말 신기한 일이야!”
“길어야 3개월정도 살거라고 했거든?
지금 14개월 지났다.
이게 산 공기가 좋아서 그런건지, 잔대가 도움이 된건지 모르겠다.”
“통증도 없는거 같던데?”
“아니다.
진통제는 없으면 안된다.
어떤날은 하루종일 움직이지도 못하고, 어떤날은 이렇게 멀쩡하게 보내고....
아마 내가 걱정할까봐 참기도 하겠지....”
살려 내겠다며 개인택시까지 팔아서 투병생활을 했건만, 암이라는 녀석은 여기저기 전이를 하고 다시금 재발을 하더니, 결국 손쓸 정도를 넘었다며 3개월 판정을 받았다.
그 후로는 두사람이 오히려 차분해 졌다.
차라리 마지막 시간들을 함께 하자며 산을 찾았다.
“저사람 잠잘때, 조용하면 얼마나 불안한지 아나?”
“그래, 그렇겠지....”
“조용하면, 걱정되서 한번 불러본다.
불러도 대답이 없으면, 조용히 가서 숨소리 들어본다.
숨소리도 잘 안들리면 코에 손가락을 올려본다.
숨 쉬는지......
숨 쉬고있으면, 얼마나 고마운지 아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싶을만큼.....”
김밥 하나를 먹다가 눈물샘이 터진 모양이다.
“이만큼 살아주니 기쁘기도 하고, 통증 참는거.....
보면.....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하루하루가.....
긴장속에 산다!”
집에서는 울고싶어도 울지 못했을게다.
“남자들이야 뭐 별 문제될건 없을건데, 사실 여자들은 산에서 산다는게 불편한게 너무 많거든.
씻는것도 힘들고....
누나는 어떻게 겨울 보냈어?”
도저히 힘들어서 겨울에 뒷마당에 창고하나 만들고 목욕실로 쓰기 시작했다.
난로하나로 온기 만들고, 배관만 뚫어서 물이 빠지게 만들어두고 물통을 욕조처럼 사용하거든.
샤워하는 동안에 나는 밖에서 가마솥에 끓인물 계속 퍼나르지!
나야, 양동이 하나면 씻고도 남지만, 여자들은 물 아까운지 몰라!
뺑이치고 있다!”
쓸만큼 잔대를 구해서 내려왔더니, 반대의 상황이다.
남자가 아픈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과 달리, 아픈 아내는 남편이 걱정이다.
음식이다.
아무리 가르쳐도 늘지않는 음식 실력에, 혼자된 시간에 먹는게 부실할까봐 신경쓰인다.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까먹는다며 한숨쉬고 있다.
보내야 하는 사람의 걱정과, 가야만 하는 사람의 걱정이 만나는 시간이다.
“형, 요즘은 어때?”
“응, 아직은 실감이 않나.
밖에 있으면, 집에서 기다릴거 같아서 가고싶고, 맛있는거 먹다보면 갖다 주고싶어서 포장 하고싶고....
걷다보면 뒤에 따라 오는거 같고, 밥상 차리다보면 숟가락 하나더 놓게 되더라.
산에 올라가면 울고 내려오고, 아침에 일어나면 눈 뜨기가 싫어.
계속 보고싶어서......”
댓글
  • hblood 2022/04/24 19:07

    눈물이 나네요...

    (3ZeEv9)

  • 알고보니할부36개월 2022/04/24 19:14

    눈물나는 사람들도 눈물이 끝나면 또 웃을일이 생기더군요.
    저녁시간 잘 보내세요.

    (3ZeEv9)

  • 복구자(伏久者) 2022/04/24 20:05

    절절하고 애틋한 사람의 향기가 묻어나는 글을,지나다가 우연히 읽고 감동합니다.
    현실에 불만투성이인 저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3ZeEv9)

(3ZeEv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