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게이들은 국사시간에 많이 배웠을 거다.
조선시대 실학자 중상주의 박지원.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이렇게 유능한 사람이 왜 안 쓰였을까?
조선이 그토록 병-신이어서 안 썼나?
그런데 얘는 정조 시기 사람인데, 정조가 등-신인가?
그래서 아예 사학과에 청강을 하러 들어가서 공부했었다.
결론은 박지원은 쓸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왜일까?
그 사상이 현실을 전혀 안 봤기 때문.
박지원은 말년까지 수레를 극찬하며, 조선이 수레를 쓰지 않아 망한다고 노래를 불렀다.
수레가 안 쓰이는 이유가 양반들이 게을러서라고 결론짓고, 양반층을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진짜 사실일까?
사실 조선 시대에 수레가 다닐 길을 정비할 기술력이 없다.
기본적으로 한반도는 산지가 매우 많다.
이 산지 곳곳에 길을 뚫는 것.
16세기 기술로 가능할까?
기껏해야 사람 다니는 길 하나 파는 것도 힘들다.
그러마 몇몇은 그럴 거다.
'잔도를 파면 되지!'
실제로 박지원은 중국 사천성에 있는 잔도 얘기를 들었을 거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산에도 길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겠지.
하지만 박지원의 머릿속에 아예 배제해버린 게 하나 있다.
사천성은 의외로 사계절 변화가 적다.
비가 고르게 내리고, 온도도 그리 급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반도는?
여름에 심심할 때마다 태풍이 몰아친다.
1년, 2년?
산에 만든 잔도가 버티겠지.
그런데 3년까지 버틸 수 있을까?
현대에도 태풍에 도로가 작살나는데 16세기 기술로?
그럼 여기서 정리를 해보자.
산에 수레가 다닐 길을 만들 정도에 3년마다 정비를 해야 된다.
이건 로마가 와도 못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하면 이런 얘기가 나온다.
'중국 사신들 오는 길은 정비했는데?'
그것도 찾아보니 수레가 다니는 길이 아니라, 사람이 등짐 메고 다니는 길이더라.
결국 조선이,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길조차도 수레가 못 다닌다.
이게 사대부들이 게을러서인가?
그리고 박지원의 현실 인식이 개작살났다는 걸 보여주는 부분.
당장 박지원이 살던 시기의 조선은 상업이 태동하고 있던 시기다.
수레가 안 쓰여서 물류가 막혀있는 조선이 어떻게 상업이 발달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수레보다 더 좋은 운송방법이 있었거든.
이건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적인 한계 때문에 그런 거고.
박지원 올려치기라고 하는데 꽤 의미가 큰게 그 이전까지 덕이 있으면 모든것이 잘 풀린다는 식의 덕치주의에서 '뿅뿅새끼들아, 일단 먹고 살기 편해야 사람이 덕이고 나발이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라는 반박을 정면에서 했다는게 큼.
화강암질이라 폭파에도 한계가 있음.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조선에 수출했으면 됐다. 다이너마이트트트트트
화강암질이라 폭파에도 한계가 있음.
농담을 진지로 받으면 무안단물.
그렇군..
물론 반대하는 애들 논거가 좀 요상했던것도 있다.
아니. 길을 정비하면 그 길로 적이 쳐들어오기 쉽다니... 조선군은 어쩌고, 평시 물동량은 어떻게 하려고... 임진왜란 때 길이 험해서 욕본건 맞긴 하지만...
사실 길 말고 다리 문제도 있긴 했다더라.
이건 참고할 수 있는 레퍼런스적인 한계 때문에 그런 거고.
박지원 올려치기라고 하는데 꽤 의미가 큰게 그 이전까지 덕이 있으면 모든것이 잘 풀린다는 식의 덕치주의에서 '뿅뿅새끼들아, 일단 먹고 살기 편해야 사람이 덕이고 나발이고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지!' 라는 반박을 정면에서 했다는게 큼.
그런데 그 반박만하고 그 이후에 유의미하게 영향을 끼친 게 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