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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제작자, 원동연님의 설강화 의견을 읽고 생각하게 된 창작자의 자세.

원동연님 설강화 논란에 관련한 의견 잘 보았습니다.
원동연 님처럼 대단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도 가끔 창작물을 쓰고 그리며, 돈을 버는 사람인지라 요즘 창작의 자유와 소비자의 검열에 관해 수많은 생각이 들던 참인데요. 의견을 읽고 다른 의견을 피드백할 자유도 개개인에 있는 듯하여 글에 관해 몇 가지 의문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설강화 사태로 ‘창작의 자유’를 부르짖는 여러 감독님이나 제작자분들이 단순 기사가 아닌 설강화나 조선구마사를 직접 보시긴 하셨을까? 하고 생각이 들 만큼, 허구적 설정을 비교하신 문단에서의 비교군이 매우 틀린 것 같아서요.
유독 영화 관계자분들이 조선구마사를 영화와 비교하는 걸 즐기시는데, 사실 존경받는 역사적 인물을 가지고 허구의 상상력을 표현한 이 두 작품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에서는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이 위인을 가지고 황당한 상상력을 더하되 절대 링컨이 가진 본질적인 이미지를 훼손하지 않아요.
매우 고결한 성정과 인류를 뱀파이어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는, 그야말로 실제 링컨보다 더한 히어로물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 작가의 자유와 다채로운 상상력을 더해서 링컨을 사실 ‘인종차별주의자’의 면모가 있었다는 설정을 은근하게 깔아두었다면 어땠을까요? 뱀파이어들이 죄다 흑인이어서 링컨이 그 흑인 뱀파이어들을 죄다 칼로 도륙하는 그런 장면이 있었다면요. 실제 링컨은 사실 인종주의자였다는 논쟁이 많잖아요.
과연 그런 설정을 했다면 자유의 나라인 미국에서도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화가 될 수 있었을까요? 뭐 그냥, 상상해보는 겁니다. 왜냐면 미국에서도 역사적 인물의 다면성을 키운답시고 그런 선택을 하진 않았거든요.
이 부분에서 와는 확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요.
이방원이 낮에는 왕이지만 밤에는 흡혈귀 사냥꾼이 되어 “백성들을 위해” 흡혈귀 때려잡고 다닌다는 설정으로 만들면 누가 역사왜곡이니 아예 폐기하자고까지 이야기가 나왔겠어요. 아니면 누가 봐도 조선 시대를 표방하며 왕세자가 백성들을 좀비로부터 구하는 을 누가 폐지하라 하던가요.
조선구마사처럼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혼령은 태종을 농간한 악령으로 만들어 놓고, '태종'은 그 악령에 홀려 백성을 잔인하게 도륙하는 왕으로 묘사하고, 세종이 되는 '충녕대군'을 형제들에 밀려난 패배감으로 열폭하는 인물로 그리면서, “6대조인 목조(이성계의 고모부)께서도 기생 때문에 삼척으로 야반도주를 하셨던 분이셨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고 선조를 비하하고 자조하는 대사를 치는 거 아니고서야.
이런 의도적인 방식으로 조선이 세워진 초기 1대 3대 4대 왕을 동시에 모욕하고, 조선 왕실이 독자적인 문화보다는 중국풍을 따랐다는 소품과 연출을 계속 보여주며, ‘악령과의 거래를 통해 조선을 건국했다’는 설정을 하는 것만 아니라면 말이죠.
미국에서도 위대한 미국의 건국을 이런 의도적인 방식으로 오염시키는 작품이 공중파를 통해 나온다면, 글쎄요, 그 자유의 나라에서도 방송국이 테러를 안 당하면 다행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설강화는 도저히 비슷한 영화를 찾을 수가 없어서 다들 를 인용하시는 것 같은데. 왜 없죠? 영화 피아니스트가 있잖아요.
물론 이 영화는 유대인 슈필만의 시선을 따라가며 나치의 잔혹함과 비인륜적인 행위를 고증처럼 끔찍하게 그려내지만, 유대인 슈필만을 숨겨주고 도와주는 나치 장교가 있지 않습니까? 이런 인간적인 나치 장교가 한 명 있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미화 가능하지 않나요? 그런데 왜 이 영화는 예시로 꺼내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슈필만의 자서전을 영화화한 실화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호젠펠트라는 나치 장교가 있었고, 실제 호젠펠트는 그저 슈필만 한 명이 아니라 수많은 유대인과 폴란드인을 구했거든요. 훗날 유대인과 폴란드인의 요청으로 세계의 의인으로 올라갔을 만큼요.
그런데 안기부는요? 단 한 명이라도 ‘대쪽같고, 인간적으로 고뇌하며, 환멸을 느끼는’ 안기부 요원이 한 케이스라도 있었던가요.
그 미국에서도 링컨을 뱀파이어 헌터물로 만드는 B급 영화는 나왔으나, 히틀러를 뱀파이어 헌터물로 만들진 않습니다.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미국에서도 후자인 영화는 나올 수가 없어요. 창작의 자유로 히틀러를 우습게 비하하고 희화화하며 묘사해도, 히틀러도 알고 보면 "여리고 감성적이고 문화적 소양이 깊었던 인간적인 인물"로 내러티브를 슬쩍 깔아두진 않아요.
누가 봐도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설정과 분위기와 복장을 해놓고 ‘이 사람은 그저 허구인데, 왜 표현의 자유를 막느냐’며 되려 방귀 뀐 놈이 성내듯이 우기지도 않습니다.
최소한의 지성으로 사리 분별을 하는 이상, 그런 영화가 나오면 미국인도 유럽인도 한마음 한뜻으로 일어나 작품을 폐기하고 그러한 작품을 만든 감독은 평생 매장당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으니까요. 왜냐면 저기 먼 아시아의 독재는 남 일이지만, 나치는 그들에게 직접적인 역사고 슬픔이고 뼈아픈 실책이거든요.


「베냐민은 “특정 이데올로기의 선전 선동을 위하여 미적이고 감성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파시즘의 전략”을 ‘정치의 미학화’라고 명명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레니 리펜슈탈(L Riefenstahl)이 만든 라는 다큐멘터리다. 193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를 기록한 이 영화는 예술적으로 탁월한 완성도를 뽐내며,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연출과 이미지는 대중을 사로잡았고, 나치즘을 효과적으로 선전했다. ‘미학’이란 단순히 아름답게 가장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정치의 미학화’는 정치적인 것을 어떤 감각적 지각의 형태로 조직하는 것을 뜻한다. 독재자가 자신이 정한 목표를 위해 학살을 일삼을 때조차, 카리스마와 결단력으로 연출되면 미학화될 수 있다. 요즘 말로 하면 ‘정꾸’(정치 꾸미기)다. 는 언뜻 보면 드라마라는 허구의 예술이 정치적 도구가 된 것 같다.
베냐민적으로 말하자면 이 드라마는 정치의 미학화 사례이다. 독재 시절 권력자도 멋있을 수 있고, 일방적 가해자로 보이는 국가기관에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진짜 간첩이 있었으니까)는 정치적 메시지가 너무 뚜렷하다.」
https://news.v.daum.net/v/20211224162150906 ‘설강화'..시대에 휘말린 청춘의 사랑, 이 하나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오염시켰다 [이진송의 아니 근데] 기사 인용.
사실 알고 보면 만큼 무엄한 상상력이 어디 있나요. 광해가 사실 알고 보면 광대 하선이 잠시동안 대역을 맡은 것이고, 폭군스러웠던 광해가 마지막에 깨달음을 얻은 것도 광대 하선 덕분이라는 발칙한 상상력이요.
근데 왜 광해는 천만까지 관객 수를 기록하며 상업 영화로서 더없는 찬사를 받았고, 설강화는 청원 30만을 넘는 폐지 지지를 받으며, 광고 송출이 끊기고, 시청률 1.8을 기록했을까요?
왜 영화 광해는 중립외교로 유명한 광해군의 이미지를 망친다며 상영 중지 여론이 온전히 모이지 않았을까요? 청원이 없어서? 아니요. 광해가 사실 중국의 지시를 받아 대동법을 만들었다, 그런 음습한 설정이 없어서요.
한국 소비자들이 무조건 창작을 창작으로 보지 못하고, 작품을 바라보는 마인드가 암담하게 막혀 있기만 했다면 가 무려 1200만을 넘지는 못했을 겁니다. 다양한 컨텐츠 분야가 이토록 발달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누군가는 마냥 창작자들이 천재적이고 대단해서 지금의 한국 컨텐츠 문화가 빛나고 있다고 하겠지만, 전 생각이 다릅니다. 창작자들의 공급을 날카롭게 소비하고 이해하고 비판하고 사랑하는 소비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뤄온 공생관계나 마찬가지예요.
차라리 캡틴 세종대왕이 환생해서 외계인을 무찌르는 히어로 영화는 B급이 된다 한들 영화가 재밌으면 유쾌하게 소비할 수 있어요. 말했잖아요. 이방원이 인류를 구하는 그놈의 뱀파이어 헌터 해보자니까요. 정말 상영 중지를 원하고 폐지 의견까지 나오고 트럭 시위가 돌아다니는지.
뭐 민주주의 사회니 태종과 세종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들이 의견을 낼 수는 있어도, 다수의 사람이 그때야말로 창작자들을 위해 정당한 목소리를 실어줄 겁니다. 그때야말로 쩌렁쩌렁 내세울 수 있는 거예요. 창작의 자유, 제작의 독립성.
생생하고 극적인 몰입감을 더하기 위해 불운한 시대 배경은 이용하고 싶고, 그 시대에 실제 있었던 사건들과 고통들은 허구의 인물이니 검열하지 말아달라? 그럼 독재 정권도 아니어야죠. 민주화 운동도 없었어야죠. 안기부가 없었어야죠. 그 그림자들을 다시 되새길만한 설정들이 없었어야 ‘허구다운’ 허구라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공급자들이 훼손하지 말아야 할 것을 훼손하지 않는 선을 함부로 넘을 자유가 있다면, 그걸 거대한 방송국의 영향력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폭격처럼 퍼붓는다면, 여러 시청자가 그 폭격을 반격하기 위해 보이콧하고 광고들을 압박하고 폐지하라는 목소리를 낼 자유도 있는 겁니다. 그게 같은 여론이 모이고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의 자유니까요.


억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창작욕이 얼마나 사람을 들끓고 미치게 만드는지 저도 너무 잘 알거든요. 어떨 때는 식욕 수면욕 성욕보다 강해요. 밥도 안 먹고 안 자고 쓰게 만듭니다. 누우려다가도 갑자기 뭔가 떠올라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어요. 섹♡보다 좋아요. 재밌는 글이 줄줄 써지면 그 희열감 말도 못하죠.
그러니 누군들 조선총독부 고위 간부 아들과 독립군 딸의 비극적인 사랑을 안 쓰고 싶을까요? 네, 독재 정권 아래 안기부 딸과 북한 간첩? 정말 쓰고 싶은 소재예요.
정말 모든 자유가 한계 없이 부여된다면 미친 듯이 휘갈겨 쓸 수 있습니다. 이 비극적 사랑을 만든 시대가 잘못이다, 개개인은 잘못 없다. 그런 고결한 주제로 뒤덮으며, 나는 위대한 주제를 말하는 창작가라고 위안하면서 얼마든지요. 근데 그건 다 쓰면 방송국이 아니라 컴퓨터 휴지통에 들어가야죠. 그걸 굳이 바깥에 내놓곤 나의 자유인데 왜 욕하냐며 억울해할 게 아니라.
혼자 똥 싸는 화장실과 사람들이 거니는 길거리 정도는 구분해야 합니다. 모텔과 공원 정도는 구분해야 창작자를 떠나 정상적인 시민이잖아요.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있다는 걸 알아야죠.
그런 두려움과 자기검열 없이 들끓는 창작욕구만이 위대하다고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다면, 그건 창작자들이 말하는 예술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똥 싸는 걸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변태적 배설이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늘 두렵습니다. 창작을 사랑하지만 한 편으로는 너무나 창작이 두려워요.
제가 앞뒤 분간하지 못하고 격렬하게 쓴 글과 그림이 역사 위에 서 있었던 사람들에게, 또는 현시대를 동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손톱 끝으로 긁어내리는 상처라도 된다고 생각하면 어떨 땐 무서워서 펜을 못 움직여요.
근데 그렇게 늘 부끄럽고 두렵고 염려하면서 자기반성을 해야, 인간을 논하고 사회를 논하고 자기 철학을 논할 수 있는 창작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반응에는 무지하고,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쳐 무시하고, 왜 다수의 논리가 그것을 향해 강력한 목소리로 모였는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작품의 주제는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위로하는 작품을 만든다? 참 말도 안 되는 모순과 기만이라고 생각해요.
한참 어른이 된 저는 아직도 해리포터의 입학 통지서를 기다립니다. 아직도 아이언맨의 죽음이 믿기지 않아요. 어디서 누군가는 ‘신과 함께’를 보고 나태 지옥을 걱정할 거예요.
보는 이를 몰입시키고 납득시키기 위해 CG에 돈을 들이고 세트에 돈을 들이고 온갖 그럴듯한 미술과 연출을 다 해놓곤, 비판받으면 “어? 이거 허구인데 믿는 게 뿅뿅이지, 믿긴 왜 믿어.”하고 발을 빼는 건 창작자로서 성숙한 자세도 아니고, 올바른 태도도 아니라고 봅니다.
누군가에게 창작물은 그런 의미잖아요. 원하든 원치 않든 내 손을 떠나 세상에 나가면 기어코 한 인간에게 거세게 영향력을 새겨넣는 것. 솔직히 그게 좋아서 다들 돈이 되든 안 되든 창작에 매달리는 게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거든요. 정산 날 입금된 돈도 ‘솔직히’ 좋지만, 누군가 정성스레 쓴 댓글 하나에, 절절한 후기 하나에 심장이 뛰어서 변태처럼 실실 웃거든요.
설강화가 폐지 되든 되지 않든, 이 시점에서 수많은 창작자가 가져야 할 태도와 두려움은 ‘내 작품도 저렇게 폐지가 되면 어쩌나’가 아니라, ‘내가 가진 창작욕도 어떤 이에게 저렇게 악영향을 주면 어쩌나’ 바로 그게 아닐까 싶어요. 부디 창작의 자유와 배설 같은 방종을 헷갈려 결국 “운동권 학생들은 비하하면 안 됩니까?”하고 되묻는 수준으로 종착하지는 맙시다.
그냥 좀, 추하잖아요.

댓글
  • ㄴㅍㅇㄴㄱㅇ 2021/12/27 22:45

    이걸 가져와야 완성이 되겠네.

  • lean28 2021/12/27 22:47

    기초교육받을때 잠만 처잤나 어떻게된게 창작자가 자유만 챙기고 책임은 나몰라라하는건지 모르겠음


  • ㄴㅍㅇㄴㄱㅇ
    2021/12/27 22:45

    이걸 가져와야 완성이 되겠네.

    (8oHvLO)


  • lean28
    2021/12/27 22:47

    기초교육받을때 잠만 처잤나 어떻게된게 창작자가 자유만 챙기고 책임은 나몰라라하는건지 모르겠음

    (8oHv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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