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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에서 죽은 사람들



인류의 석유 문명이 발달한 뒤로 알래스카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당했다. 물론 죽음이야 다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개중엔 도저히 죽지 말아야 될 상황에서도 죽은 경우가 있었던 것이 문제다. 
이번에 소개할 사람 역시 그 수많은 알래스카의 어이없는 죽음 중 하나로, 이 사람이야 말로 자연을 우습게 본 대가를 톡톡히 (죽음으로) 치른 대표적인 사례. (가장 어리석은 죽음만 뽑아준다는 다윈 시상식에 소개될만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칼 맥쿤(Carl McCunn).
1946년생. 텍사스 주 태생. 70년대 알래스카 석유 붐을 따라 페어뱅크 시에 정착했다. 직업은 석유 파이프 건설자, 취미로 사진 찍기를 즐겼다고.
칼의 알래스카 자연에 대한 사랑이 넘치고 넘쳐 흘러 결국 어느날, 알래스카의 자연 한복판으로 들어가 그곳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한가득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칼은 1981년 5월 초 비행기 조종사를 돈을 주고 구해 알래스카의 깊은 오지로 떠난다. 그는 여름철 내내 알래스카의 품 안에 살기 위해 수많은 준비물을 가득 싣고 갔다.
대형 텐트, 사진 필름 500통, 20구경, 33구경 라이플, 샷건, 엄청난 양의 식량과 옷가지 등등.
그가 도착한 곳은 콜린 리버라고 불리는 강 어귀의 어느 호수였는데... 뭐 아무튼 지도에 이름도 없는 굉장히 동떨어진 오지였단다.
그런데 이 당시 35살의 아저씨는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비행기 일방 통행 티켓만 끊었단다. 비행기 조종사에게 "3달 뒤에 나 좀 데리러 오쇼"라고 말을 안 했던 거다.
칼은 분명 그곳에 집 짓고 농사 지어서 정착할 생각은 아니었다. 사진 좀 지겹게 찍다가 추워지면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다니?
그의 살아 생전 친구들은 그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후에 증언했다. 칼은 기본적으로 신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자연에 대한 동경도 존경도 문학적 감상도 없었다. 그는 그냥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야생으로 출사? 그거 폼나는데? 그래서 알래스카 한복판에 갔던 거다.
친구들은 그가 무척 친절하고 착하고 사교성이 풍부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인기도 많았고 파티도 많이 했고 친구도 많았다. 단지 좀 흠이라면 현실 감각이 떨어졌다는 거.
그게 좀 치명적이었다.
칼이 집에 돌아갈 걱정을 하게 된 건 8월 말이었다. 알래스카에서 8월 말이면 얼어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이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이곳엔 아무도 오질 않는다... 여기서 나갈 방도를 미리 알아보지 않은 건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해가 짧아지고 기온은 무섭게 곤두박질쳤다. 그는 이제 출사가 문제가 아니라 생존하는게 문제였다. 그는 일기에 또 이렇게 적었다.
"여기 오자마자 총탄을 죄다 호수에 내다 버린 게 자꾸 생각난다. 그땐 총탄이 너무 많아 웃겨서 버렸는데, 이젠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총탄이 필요해졌다..."
9월의 어느날 아침, 그는 오리를 사냥하고 있었다. 그때 때마침 할렐루야 하느님 맙소사 머리 위로 경비행기가 지나갔다. 칼은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한번 지나쳤던 비행기는 다시 돌아와 칼을 향해 저공 비행을 했다. (당시 비행기는 수상 착륙기가 아니라 호수 위에 착륙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두번째 지나갈 때 칼은 더 이상 손을 흔들지 않고 '드디어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허리를 굽혀 짐을 챙겼다고.
칼은 비행기가 분명히 자기를 봤다고 판단, 텐트에서 짐을 챙겨 놓고 오매불망 구조대를 기다렸다. 그러나, 구조대는 일주일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그는 한참 뒤에야 자신의 사냥 허가증 뒤에 적힌 '구조 요청법'을 볼 수 있었다.
야생에서 조난 당했을 때 구조 요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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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비행기를 봤을 때, 두손을 번쩍 들어 흔들면 "구조 요청,"
한 손만 흔들면 "난 괜찮으니 그냥 가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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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은 비행기가 지나갈 때 오른손만 어깨 높이로 들어 흔들었던 것이 기억났다. (다른 손에 총을 들고 있었기 때문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비행기는 '분명 저 사람 혼자인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라는 생각에 선회 비행을 했던 거다. 근데 이 양반이 구조 요청은 커녕 짐이나 챙기고 있으니 비행기는 '별 이상한 놈 다 보겠군'하고 그냥 집에 간거다.
이게 칼에게 제공됐던 마지막 생존의 기회였다.
9월 말이 되자 호수는 단단하게 얼어붙었고, 가져온 식량은 죄다 동이 났으며, 총알도 거의 다 떨어져, 먹고 살 길이 매우 막막했다. 그는 이제 풀줄기를 묶어 토끼 덫을 놓고, 병으로 죽은 순록 고기를 떼 먹으며 생계를 유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10월이 되자 그의 몸엔 더 이상 연소할 수 있는 지방이 남아있질 않았고, 미치도록 춥고 긴 밤엔 미치도록 추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구조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마을에선 지금쯤 자기가 돌아오지 않아 난리가 났을 테고, 나를 구조하기 위해 사람들을 급파했을 것'이라는 게 칼의 계산이었다.
그는 정말로 어느날 갑자기 사람들이 뿅하고 나타나 자기를 집으로 데려가 줄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만화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정말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둘중 하나가 될 지경이 되서야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점점 심하게 걱정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상당히 겁나는 상황이다."
바야흐로 때는 11월, 연일 영하 20도까지 우습게 내려가는 상황이었다. 칼의 손가락, 발가락, 코... 그의 몸에 삐죽한 부위는 모두 극심한 동상에 걸려 사정없이 뭉개지고 있었다. 그가 일기에 쓴대로 "이건 너무나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이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해지자 그는 캠프를 떠나 남쪽으로 걸어 나갈 생각도 했다. 그러나 이미 몸에 극심한 장애가 온 상황에서 그건 불가능이었다.
후일 전문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칼이 있었던 장소는 알라스카 오지 중에서도 아주 쌩오지로, 짐승의 감각을 가진 최강의 터프 가이도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곳이었단다. 하물며 문명 세계에서 파티나 즐기다 온 아저씨가 별 수 있을리가...
칼의 일기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썼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하느님 아버지 저의 연약함과 죄를 사하여 주소서. 저의 가족을 굽어 살피소서."
그는 30구경 엽총 구멍을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때는 11월 말이었다.
그의 돌덩이처럼 얼어붙은 시체는 그 다음 해 2월, 알래스카 주 방위군에 의해 발견됐다.

댓글

  • LVCIVS BRVTVS
    2021/12/11 20:18

    미련한 모험은 이렇게 치명적인거구나

    (zmjsby)

(zmjs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