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파트 좀 짓는다고 세계유산이 취소되겠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한 번 등재되면 영원히 등재되는 게 아니라서

언제든 취소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유야 여러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유산의 역사적 가치 뿐만 아니라

유산을 잘 '보존'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역사 깊은 유산이라도

해당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언제든 삭제될 수 있으며,

이미 삭제된 전례 또한 존재한다.

아라비아 오릭스의 경우는

밀렵과 자연 파괴가 이유였으니 그렇다 치고,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경우는

대체 왜 삭제가 되었을까?

한국의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해인 2009년.

독일의 엘베강 일대에 형성된 유서 깊은 도시

드레스덴 중심부가 세계유산에서 취소된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이유는

순수 녹지대와 계곡이 잘 간직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 시대의 옛 유적들이 잘 남아있었기 때문.

실제로 엘베 계곡 주변으로

르네상스 시대 옛 유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세계유산에 오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다만, 다리 하나를 지은 게 문제였다.

엘베강 양쪽으로 나뉘어진 도시를 연결하는

약 800m 길이의 다리를 짓기로 하면서,

유네스코는 엘베강 유역의 자연지대 파손 염려를 이유로

엘베 계곡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다리가 완공된 몇 년 뒤,

르네상스 분위기의 도심과는 어울리지 않는 교량이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를 크게 훼손한다는 이유로

세계유산위원회는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세계유산 삭제를 확정했다.

물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겠지만,

어쨌든 역사적 가치는 훼손되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조선 왕릉은

18개 지역에 흩어진 40기를 모두 포함한다.

여기서 하나라도 따로 빼놓거나 할 수는 없으며,

다리 하나 때문에 지역 전체가 세계유산에서 빠진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경우처럼

하나가 빠지면 그냥 모두 빠진다고 봐야 한다.

조선 왕릉이 등재된 데에는

몇 가지 기준점을 넘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례 전통에 입각한 풍수지리의 원리가 녹아있고,

한국과 동아시아 무덤 발전을 여실히 보여주며,

규범화된 제례를 통해 전통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

유네스코는 조선 왕릉의 완전성을 높게 쳤으며,

엄격한 법률로 완충지역 안의 개발을 제한했기에

조선 왕릉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시켰다.

등재하기 이전에 도심 난개발로 인해

몇몇 유적 경관에 영향을 미친 경우도 있었지만,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조선왕릉 유적 내에서

도시 건물을 보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나마 등재될 수 있었던 것.

그러니 엄격한 법률로

개발 제한을 하겠다는 전제가 무너지거나,

유적 경관에 새로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나오면

드레스덴 엘베 계곡의 사례처럼

조선 왕릉 40기 전체가 100% 취소될 것이다.

길다란 다리 하나와

우후죽순 늘어선 아파트 단지 수십 개.

어느 쪽이 더 흉물스러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