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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컬) 뭐야소설 재밌어요 4편

시놉시스 : https://cafe.naver.com/trickcal/9540

1편 : https://cafe.naver.com/trickcal/9725

2편 : https://cafe.naver.com/trickcal/9896

3편 : https://cafe.naver.com/trickcal/10044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나도 정확하게 모른다. 다행히 이번에는 도끼질로 잠을 깨진 않았다. 자연스럽게 깬 나는 이전의 일이 생각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관찰했다.

주변의 풍경은 전과 비슷했다. 내 본체를 중심으로 요정의 마을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잠든 요정들과 비슷하게 생긴 요정들이 비슷한 모습으로 생활했다. 다만 새로운 요정들에겐 제대로 된 종교가 있었다.

[세계수 교단]

지식이 전수되지 않았겠지만 새 요정들도 나를 세계수라 부르며 찬양했다. 하지만 맹목적이고 과격한 믿음을 보여주진 않았다. 내가 했던 말처럼 내 주변에 둘러앉아 기도를 한답시고 낮잠을 자는 게 다였다. 자다가 배고프면 밥을 먹으러 가고, 그러다가 또 자고, 먹었다. 내가 바란 대로다. 무의식중에 내 바람이 새 요정들에게 깃든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여왕이라는 직위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위상은 예전과 달랐다. 여왕은 그저 골치 아픈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동네북 같은 존재였다. 어떤 요정은 여왕에게 짬처리 시킨다는 표현을 썼다. 짬이 뭘까?

나는 계속 깨어 있지 않고 잠들었다 깨기를 반복했다. 깨어 있는 동안 변화한 숲을 구경하고 질릴 때쯤 잠들었다. 그들에게 끼어드는 일 없이 그저 관찰했다. 처음에는 과거의 내 실수로 벌어진 일과 비슷한 일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서였다. 다행히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소소한 다툼은 여전히 존재했다.

“너희 요정들은 항상 그렇게 드러난 것만 신경 쓰지! 사실 보이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몰라! 이 단세포들!”

“햇볕을 잘 받고 가지를 잘 뻗는 게 더 중요해! 너희 마녀들이야말로 매일 땅속에서만 지내니까 우중충한 거야!”

새 요정들은 시간이 지나며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낮에 태어난 요정들은 지상에 사는 걸 선호했고, 밤에 태어난 요정들은 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 사는 걸 선호했다.

잠들었다가 일어날수록 나뉘는 게 심해졌는데, 나중엔 아예 서로 다른 종족처럼 되었다. 지상에 사는 요정은 여전히 요정이었지만 지하에 사는 요정은 ‘마녀’라고 불렸다.

어느 순간부터 마녀는 완전히 요정과 떨어져 나가서 독립해버렸다. 마녀들은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 내 뿌리 근처에 새 터전을 마련해 살았다. 요정과 마녀가 가끔 다투긴 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내버려 두면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 중재하고 해결했다. 그렇게 세상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빛이 나타났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그 빛의 기둥이었다. 에린이 나타났을 때와 똑같은 빛의 기둥 말이다. 자다가 깨길 반복하는 동안 차츰 식었던 마음에 급격하게 불길이 일었다.

나는 황급히 빛의 기둥이 떨어진 곳을 찾았다.

그곳에 에린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종족이 있었다. 수백 명이나. 처음엔 인간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귀가 뾰족하고 길었다.

“와아아아아! 드디어 탈출했다!”

“고, 공기! 신선한 공기에요! 쿰쿰한 지하의 공기가 아니라 지상의 공기라고요오옷!”

“아하하핫! 나는 자유다!!! 이제 그 뭐 같은 휴대폰 안 만들어도 돼!!”

새로 나타난 종족은 사실 미친 게 아닐까? 샘솟아 오르던 호기심이 잠시 사라질 정도로 당황했다. 이대로 얘들 지켜봐도 괜찮겠지? 별문제 없을 거야. 아마.

“으갸갹! 여긴 무슨 촌동네야!? 왜 Why-fi가 안 잡혀? 내 하이패드가 먹통이라니!”

“화내는 박사님…… 멋있습니다.”

미친 꼴을 구경하고 있다가 한 가지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이 애들. 에린이랑 같은 말을 쓴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야? 설마 탈출에 실패한 건가? 또 우릴 잡으러 오는 건 아니겠지?”

“그럴 확률은 없습니다. 저희가 떠날 때 자폭장치를 발동시켰으니 절대 따라올 수 없을 겁니다.”

에린이 가르쳐준 그 언어가 분명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만 가르치고 글을 가르치진 않았다. 그래서 이 세상의 글자는 에린이 가르쳐준 글자와 달랐다. 즉, 저들은 에린과 같은 세상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

내 신경은 온통 새로운 종족에게 쏠렸다. 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그들을 계속 지켜보았다. 이 유사인간들은 자신을 ‘엘프’라고 불렀다. 바로 실체화해서 엘프들에게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과거의 실수가 생각나서 참았다.

엘프들은 허름하고 꾀죄죄한 모습이었지만 신기한 장치들을 많이 들고 있었다. 어떤 장치는 단추만 누르면 알아서 땅을 팠고, 어떤 물건은 나무에 갖다 대기만 해도 나무가 잘렸다. 그들은 그런 장치를 이용해 놀라운 속도로 무언가를 만들어갔다. 그들이 금세 만들어낸 것은 마을이었다. 기존에 숲에 있던 다른 종족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숲의 다른 종족도 엘프와 만났다. 요정이 가장 먼저 만났는데 숲을 마구잡이로 개발하는 엘프를 경계했다. 숲을 아끼는 요정은 엘프와 빈번하게 분쟁을 일으켰다. 계속 분쟁이 발생하자 엘프가 먼저 접고 들어가서 요정과 협정을 맺기로 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실체화했다. 이걸 어떻게 안 보고 버텨? 물론 정체를 밝히지 않고 평범한 요정인 척을 했다. 요정들 틈에 끼어서 엘프와 요정의 협정을 구경했다.

“이게…… 뭐야?”

“저희가 더 이상 지상 영역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계약서입니다, 요정족의 여왕.”

“계약서가 뭔데?”

“아, 죄송합니다. 아직 그럴 문명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나 보군요. 그냥 약속이 담긴 종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상한 건 없는지 읽어보고 마지막 장에 서명하시면 됩니다. 참, 서명이 뭔지는 아시죠?”

“이, 이걸 읽으라고?”

요정 여왕은 한 뼘 정도 되는 두께의 종이 뭉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대충 훑어보다가 귀찮다는 듯이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서명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엘프는 참 영악했다. 엘프 마을로 돌아간 엘프들이 떠드는 말을 들었다.

“역시 약관은 길게 만드는 게 최고야. 귀찮아서 대충 보고 서명해 버리잖아.”

“아무튼 받았으니 됐지. 그러면 이제 지하 개발을 속행하자구!”

협정 이후에 엘프들이 지상 개발을 멈추긴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하에서 영역을 몰래 개발하기 시작했다. 저러다가 마녀들과 마찰이 생기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아직은 마녀의 마을과 꽤 거리가 있었다.

엘프는 지상의 마을보다 지하의 시설을 더 거대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들의 기술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걱정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엘프들의 지하 시설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정확히는 엘프들이 내 시선을 차단한 것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황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관찰할 수 없으니 직접 실체화해서 일반 요정인 척 그들에게 접근했다.

“아, 그거? 마력중화 장치잖아. 요정들이 마법을 쓰는 거 보고 연구하다가 개발했어.”

“마력중화 장치요? 아, 이것도 좀 드시면서 일하세요.”

“어이구, 뭘 이런 걸 다. 일단 주니까 받기는 하지만 내가 원래 이런 엘프는 아니에요. 음, 요정이나 정령이 쓰는 마법이 다 마력을 기반으로 하더라고. 그래서 마력의 흐름이 통하지 못하도록 아예 차단해버린 거지.”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내 힘으로 지하를 볼 수 없다는 건 알겠다. 대신 그렇게 해서까지 감추려고 하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지하에 뭐가 있냐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아마 시장님이나 박사들 정도만 알걸?”

일반 엘프들에게 알아낸 정보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나는 방법을 바꿔서 요정의 사절인 척하며 자칭 ‘시장’이라는 엘프들의 수장에게 접근했다. 엘레나라는 이름의 엘프였다. 시장은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지만 그들의 기술력에 대해 칭찬을 하며 구슬리니 금방 알아서 밝혔다.

“우리는 그저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 있을 뿐이야. 지하에 차원 도약 장치를 건설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차원 도약?”

“뭐 말해도 이해 못 할걸? 대충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장치라고만 알아 둬.”

“혹시 그럼 처음 여기에 올 때도 그걸로 온 거야?”

“당연하지! 그 빌어먹을 인간 놈들에게서 탈출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어!”

“인간?”

시장은 증오에 찬 눈길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한동안 인간에게 온갖 저주와 욕을 퍼붓던 시장은 겨우 진정한 후에 대답했다.

“그런 씹어먹어도 시원하지 않을 종족이 있어. 너는 말해줘도 이해 못 하겠지만.”

“혹시 그래서 인간들이 쓰는 언어로 말하는 거야?”

“그래! 수십 년을 갇혀 살면서 원래 쓰던 엘프어도 잊어먹었다고! 으으, 지독한 놈들…… 응?”

엘프 시장의 눈이 갑자기 동그랗게 변했다. 그리고는 날 이상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넌 내가 쓰는 말이 인간 언어인 건 어떻게 알았어?”

“어? 어, 어…….”

실수했다. 내 정체가 여기서 들키면 곤란한데. 인간이라는 말을 듣고 너무 신났어.

“그, 그냥 지나가다가 다른 엘프들의 말을 엿들었어. 우, 우연히!”

“우연히?”

“앗! 나, 나도 참. 해야 할 일을 잊고 있었네! 급한 일인데!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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