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줄 요약은 맨 밑에 있음*
오늘은 추석-한국의 추수의 달 축일입니다.
한국인들은 음력월로 8월 15일이 되는, 밝은 보름달이 빛나는 날에 행사를 치릅니다.
한국 달 항아리의 이름은 단순히 그 크고 하얀 달과 같은 자태에서 비롯된것 뿐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볼때의 색과 형태의 변화에서도 이름값이 나타납니다.
과연 정말로 전직 강도 전전직 해적이었던 영국이 이걸 거래로 얻었을까?
물론 영국이 역사적으로 악당이었지만, 이건 정말 거래로 얻은거다. 정확히는, 영국인 개인이.
일제 강점기때 영국의 도예가인 '버나드 리치'가 조선에서 여러 예술품을 매입했는데,
위 사진의 백자 달 항아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18세기, 그러니까 대략 1700년대 어느지점에 만들어졌으니 구입할때는 200년된 항아리였고, 지금은 300년된 항아리 되겠다.
It was in great part due to the interest of Japanese Folk Crafts scholars such as Yanagi Soetsu,
Kawai Kanjiro and Hamada Shoji that appreciation,
particularly of Korean ceramics, developed in the West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twentieth century.
야나기 소에츠, 카와이 칸지로, 하마다 소지 등의 일본 민속 학자들의 관심을 통하여
20세기 전반기에 서양 세계에서 한국 자기에 대한 감상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Bernard Leach, who lived and worked in Japan for many years and also tr에이브이elled to Korea,
was part of this group and very influential in educating Western taste.
일본에서 거주하고 일하며 조선으로 여행도 갔던 버나드 리치 또한 이러한 사람들 중의 하나로서 서양의 미학 교육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He admired Korean pots for their natural unselfconciousness and he is known to h에이브이e collected Korean ceramics and furniture,
including this particularly beautiful piece of white porcelain, which he acquired in Korea in 1935 and g에이브이e to the potter Lucie Rie in 1943.
She kept it in her studio until her death.
그는 조선의 도자기들이 지닌 자연스러운 무의식의 미에 심취하였고 다양한 종류의 조선 자기와 가구를 수집했으며,
그중에는 1935년에 그가 조선에서 구입하고 1943년에 제자 '루시 리'에게 넘겨준, 여기의 이 아름다운 백자 또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이 백자를 자신의 작업실에 죽을때까지 지니고 있었습니다.
Yanagi Soetsu talks of the freedom found in Korean pots, compared to Japanese ones:
야나기 소에츠는 일본 자기와 비교하여 조선 자기에서 발견 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In modern art, as everyone knows, the beauty of deformity is very often emphasised, insisted upon.
But how different is Korean deformity. The former is produced deliberately, the latter naturally.
Korean work is merely the natural result of the artisan's state of mind, which is free from dualistic man-made rules...
Here lies buried the mystery of the endless beauty of the Korean artisan's work.
He simply makes what he wants, without pretension".
"현대 미술에선, 모두가 알다시피, 불균형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강조되고, 추구될 때가 많습니다.
허나 이에 비해 조선 예술의 불균형은 얼마나 다릅니까. 현대 미술은 불균형성을 의도하나, 조선 예술은 자연스레 다가옵니다.
조선의 예술품은 장인의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빚어지며, 인간의 이원론적 규칙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유로우니...
이 지점에 조선의 장인들이 만드는 예술품에서 오는 무한한 미의 신비가 묻혀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식없이, 그들이 원하는것을 만들고자 할 따름입니다."
( https://www.britishmuseum.org/collection/object/A_1999-0302-1 )
(전략)...그의 저서 '동과 서를 넘어서'를 보면 자신이 존경하는 백자의 나라에서 개인전을 갖고 싶어 1935년 덕수궁에서 전시회를 열고 강연회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귀국할 때 이 달항아리를 구입해 가면서 "나는 행복을 안고 갑니다"라며 기뻐했다.
버나드 리치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평생 곁에 두고 보아온 이 달항아리를 애제자인 루시 리에게 주었다.
그리고 1995년 루시 리는 죽으면서 이를 다시 버나드의 부인인 재닛 리치에게 주었으며, 1998년 재닛이 죽자 그의 유품들과 함께 경매에 부치게 되었다.
당시 대영박물관에는 한빛문화재단의 한광호 회장이 기부한 한국유물 구입기금이 있었다.
박물관 유물구입위원회는 시세의 4분의 1밖에 안 되는 약 1억2000만원을 적어내며 요행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 한국인이 약 5억원에 낙찰시켰다.
그러나 바로 이때 IMF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자 경락자가 포기하는 바람에 대영박물관으로 차례가 돌아와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연이 이렇고 보니 이 달항아리는 제 팔자 따라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후략)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3/24/2010032401976.html)
( https://just-go.tistory.com/55 )
*세줄 요약*
1. 영국이 관련되어 있지만 영국이 혐성을 부리진 않았다. 개인이 구매한것이 경매에서 박물관으로 넘어간것.
2. 사실 대영박물관은 "사면 좋고, 안되면 별수없다"는 식으로 구매했다.
3. 대영박물관이 한국 유물들을 사모을 대금은 '화정 한광호'씨의 뜻에 의해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을 만드는 조건으로 기부되었다.
올~
이게 되네 ㅋㅋㅋ 강도질이 아니라 됐구만 ㅎ
두디뒙 2021/09/22 01:57
올~
엘메렌스 2021/09/22 02:01
이게 되네 ㅋㅋㅋ 강도질이 아니라 됐구만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