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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홀릭, 세대를 초월한다.

어제 저녁 또 하나의 아까운 소장품을 던졌다. 새로운 상품으로 바꾸기 위해서다.
-오늘 아침도 태양은 강열하다. 아파트를 나서자마자 더위를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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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장비병 치료비는 오디오에 비해 아주 저렴하다고는 한다.
그러나 말단 봉급쟁이에게는 그게 만만한 게 아니다.
-황급히 밤의 청색이 남아있는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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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를 나가 시장길 옆으로 빠져나갔다. 도매 시장은 이미 막장이고, 소매 시장은 이제 잠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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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늦은 시간이라 역전 건물을 크게 도는 코스를 택하고, 전농동으로 넘어가는 교각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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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이 시작되자마자 라이카에 접신했다. M3, summicron DR, 35mm 4th만 구하면 끝이라는
선배의 말을 듣고, 가지고 있던 콘탁스, 핫셀 다 팔아서 어렵사리 찾고 찾아서 장만했다.
사실 M3는 내게 공포의 사진기였다.
고등학생 시절, 합창대 지휘자님이 늘 예쁜 갈색 가죽 가방에 M3를 소중하게 담아 메고 다니면서
아주 가끔, 예쁜 여자애들만 찍고, 4x5로 흑백 프린트를 선물하고 했었는데,
내가 덥석 만졌다가 "야! 그거 니네 집값이야. 떨어트리면 집 팔아야 돼!" 라는 걱정스런 말에
아이고 뜨거워 십겁을 했었다. 그 후, 그 M3를 잊고 있었는데, 시각 변화를 시도하는 내게
선배가 RF 사진기를 소개하면서 바로 그 M3를 보여줬다. 보자마자 공포의 전율이 일어났는데,
그래도 너무 멋져서 나도 모르게 덥석 두 손으로 받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일대 변화를 시작했었다.
-역전을 돌아 내려가며, 늘 찍는 장면을 담았다. 그리고 뒤돌아 서서 반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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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동 시립대로길에 있는 고물상엔 아침마다 나이 드신 분들이 모여든다. 오늘은 강쥐까지 동행이다.
애완 동물 특히 강아지는 친절하고 든든한 반려다. 홀로 되신 분들에게 강아지보다 더 정을 주는 생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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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는 거리 스냅, 그리고 사람 사진을 찍는 사진기다.
브레송을 비롯한 오랜 라이카 매니아들이 전부 기자거나 여행가로 사람 사진을 찍었다.
우리 나라 김한용님, 한영수님, 임응식님 등 원로 사진가들은 모두 라이카로 거리를 스냅했다.
깨끗한 M3를 구한 그날 밤, 잠을 놓쳤다. 밤 새도록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가 방에서 쫏겨 났다.
렌즈도 없이 셔터를 마구 누르다가 갑자기 이거 너무 놀러서 닳아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겨우 멈췄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점심 시간을 기다려 명동, 남대문 카메라점을 수색하려고
안달했다. 시간이 왜 그리도 안 가던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농동에서 역전으로 다시 올라갔다. 아침 태양이 무서운 기세로 역광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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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더위에 지칠까 봐 화단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아! 그래, 시원하게 한 컷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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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에 남대문 샵에 가서 주문해서 아이없는 summicron DR을 구했다.
샵 주인 말로는, 잘 아는 단골 손님에게서 뺏다시피 했다고. 그래서 현금을 줘야 한다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내 잠에서 깬 식당 강아지가 응가를 하로 나왔다.
굿모닝 멍멍이~ 니들 요즘 죽을 맛이겠다. 털 옷 벗고 살면 안되나?
녀석, 들은 척도 안하고 볼 일 보러 갔다. 나도 땀에 쩔어서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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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35mm 렌즈를 다 구하는데 운이 좋아서 한 달 걸렸다. 특히 35mm가 귀했다.
한 두 개 보이는 건 쥬마론 3.5였는데, 많이 낡았다. 쥬미룩스와 6군8매도 있었는데
가격이 내 예산 밖이었다. 그런데 라이카 매니아들을 만날 때마다 룩스와 8매 뽐뿌가
강력했다. 결국 8매는 캐나다산, 독일산 두 종을 구해서 찍어봤고, 룩스는 50mm부터
구해서 사용하다가, 결국 35mm asph 박스품을 사들고 파리로 날아갔다.
지금은 모두 멀리 갔다. 부친 병원비로, 전시 비용으로, 책발간 비용으로,
올드 대형 렌즈 구입, 재조립 비용으로 10여년 동안 모았던 렌즈 다 날렸다.
그리고 이제 다시 모으기 시작한다. 올드 렌즈는 거의 다 써봤으니까, 신품으로.
룩스 50은 구했고, 룩스 35는 최신형 박스품으로 구하려고 한다.
내가 쓰다가 장롱 속에 잘 넣어두고 말 않고 하늘로 가면, 문득 그걸 발견한 손자가
감동할 것이라는 추측으로......생각만 해도 가슴 두근거린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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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7, Summaron 35mm f3.5
댓글
  • 구너스 2021/07/26 08:17

    사진도 글도 너무 좋네요. 이런 이야기는 왜이리 재밌는지 ㅜㅜ

    (piF5wY)

  • 구너스 2021/07/26 08:18

    아 작성하다가 등록되어버렸네요. 여튼 좋은 글 감사합니다!

    (piF5wY)

  • 利尔 2021/07/26 08:47

    항상 올리시는글 재밌게 잘보고있습니다..유익한 글과사진 감사드립니다^^

    (piF5wY)

(piF5w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