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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정신을 잃지 않은 독일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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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하르텐슈타인 Werner Hartenstein

 

베르너 하르텐슈타인은 역전의 유보트 U-156을 지휘했던 전설적인 유보트 에이스 중 한명이었으며

그는 수행기간 동안 20척의 적 함선을 격침시킨 전과를 가진 독일 전쟁해군의 자랑이었으며, 또한 내가 소개할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1908년 2월 27일, 작센 주(Sachsen)의 대도시 플라우엔(Plauen)에서 태어났으며, 평범한 청춘을 보내고 1926년 인문계 김나지움을 졸업한 직후

독일국 국가해군(ReichsMarine)에 입대를 희망하고 지원했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입대는 거부당했고, 이후 2년 여간 독일 명문대학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 재학하였다

 

이후 다시 입대를 지원하여 1928년 처음 군인의 길에 들어선 하르텐슈타인은 국가해군에서 2년 여간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14개월 간 순양함 엠덴에서 근무하였으며

1933년 1월 30일, 독일은 수권법으로 나치가 합법적으로 권력을 찬탈한 이후 독일 해군에도 큰 변화가 다가왔는데

그가 몸담고 있었던 국가해군은 전쟁해군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국가가 아닌 나치당과 히틀러 개인에게 충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통적인 프로이센의 정신을 가지고 있던 하르텐슈타인 개인으로서 국가에 충정을 바칠지언정 인간성마저 결여시킬 정도로 사리분별을 못한 것은 아니었다

 

어쨋거나 그는 1936년 9월 30일, 처음으로 바다 위가 아닌 해저 임무를 위해 어뢰정 그라이프(Greif)에 배정되었고

1937년 6월 1일, 대위로 진급한 이후 여러 차례의 해상 순찰과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그는 청동 스페인십자 훈장을 수여받는 영예를 누렸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도 하르텐슈타인은 수 많은 공적을 세웠고, 그는 혜성같이 등장한 조국 독일의 자랑으로 남게될 평범한 군인이 될 수도 있었다

적어도 1942년 9월 12일 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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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여객선 RMS Laconia의 사진이 담긴 엽서

 

1921년 진수된 RMS Laconia는 민간 여객선으로 사용되었지만 2차대전 발발로 1942년 영국 해군에게 징발되었고, 사건 당시에는 이탈리아군 포로를 수용하였고

케이프 타운에서 시에라리온에 위치한 프리 타운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내부에는 463명의 해군 장교와 승무원, 87명의 민간인, 286명의 영국 육군, 103명의 폴란드군

그리고 1,783명의 이탈리아군 포로가 수용칸에 감금되어 루돌프 샤프의 지휘 아래에 항해 중에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네번쨰 대서양 정찰 임무에 나선 하르텐슈타인 대위와 U-156은 포착된 RMS 라코니아 호를 격침시키고, 곧바로 구조자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독일군 신호에 뜻밖에 동맹국인 이탈리아어가 수신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빨리 많은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 즉시 구조 지원을 요청하였다

 

조난당한 라코니아호 탑승자들을 구조하는 함선이 있다면, 본 함은 공격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본 함정이 함선이나 군용기의 공격을 받기 전까지만 유효할 것입니다.

또한 본 함정은 193명의 생존자들을 구조 중입니다. 현재 라코니아호와 저희의 위치는 남위 4도 53분경 서경 11도 26분입니다

-당시 U-156의 구조 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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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되니츠(Karl Doenitz)

 

카를 되니츠 당시 잠수함 사령관도 이 무전을 듣고 구조자 작업을 위해 근방에서 작전 수행중이었던 7척의 유보트 함대에게 구조작업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마찬가지로 연합국도 이 무전을 듣고 아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항공 정찰에 나섰고, 구조작업을 목격한 미 육군항공대 소속 제임스 하든 중위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이 주장한대로 독일 유보트는 민간인과 아군 구조를 위해 수해자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보고했으나 문제는 제임스 히든이 자리를 떠난 지 30분 뒤에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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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항공대의 민간인 사격을 그린 기록화

 

구조 작업이 4일 차에 접어든 9월 16일, U-156은 적에 대한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리고 갑판 위에 구조작업임을 알리는 적십자기를 내걸고 라코니아 호의 승조원 구조를 진행하던 중

갑자기 미 육군항공대의 B-24 '해방자'가 U-156와 민간인들을 향해 무차별 기관포 사격을 가해오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U-156을 노리던 B-24의 공습은 오히려 구명정에 올라타 목숨을 부지하며 유보트와 접촉중이었던 민간인들을 오사하여 살해하는 짓을 저질렀고

U-156 또한 공격으로 인한 피해로 더 이상 구조작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구조를 중단하고 급하게 잠항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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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C. 리차드슨 3세

 

미 육군항공대 소속 로버트 C. 리차드슨 3세 대위는 이 구조작업을 '아군(연합군)을 배제한 이탈리아군 위주의 구조작업' 이라 판단하고 공격을 개시하였고

그 덕분(?)에 죄 없는 민간인 사상자만 발생하게 되었지만, 그의 주장과는 달리 오히려 구조작업은 영국군과 영국 민간인을 위주로 진행되었다

 

오히려 라코니아 호 침몰 당시 영국군과 폴란드군은 자신들의 탈출로가 방해받지 않도록 이탈리아군 포로들이 수용된 수용칸을 의도적으로 잠궈버리고

그들의 탈출을 막아버렸고, 그러한 문제 때문에 이탈리아군 포로 1,800여 명 중 1,400여 명이 라코니아 호에 가둬진 채 목숨을 잃고 말았다

 

훗날 미 정부는 리차드슨 대위의 민간인 학살을 칭송하며 훈장을 수여하였고, 민간인 구조를 진행한 적십사를 공격한 행위를 철저하게 은폐하였지만

오히려 이러한 행위는 자신들에게 독으로 되돌아와 전후 진행된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전쟁범죄자 카를 되니츠의 죄질을 두고 재판을 하던 중

리차드슨 3세의 범죄 행위를 증거로 되니츠를 변호할 기회가 생겼고, 이는 되니츠의 악랄한 전쟁범죄 행위의 죄질이 낮아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물론 리차드슨 3세는 잘 먹고 잘 살다 2011년 장수하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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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항공대의 공습 하루 전인 9월 15일, 구조작업을 진행하는 U-156, U-507

 

그렇지만 하르텐슈타인이 요청한 구조 지원에 답하여 독일 전쟁해군 소속 U-506, U-507, 이탈리아 해군 소속 코만단테 카펠리니는 피해가 경미하여 구조작업을 진행 할 수 있었고

민간인들을 구출하려던 그의 노력 덕분에 12일 간 약 1,100여 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구하게 되었고, 영국군은 포로가 되어 북아프리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북아프리카가 연합군의 손에 들어오면서 이들도 해방됨)

 

민간인 구조를 진행하는 구난선을 공격한 미국의 행태에 분노한 카를 되니츠는 즉시 모든 잠수함 전대에게 민간인 구조 금지와 무차별 사살을 문서화 하였지만

하르텐슈타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해군들에게는 이 조항은 제대로 지켜지지는 못했고, 암암리에 민간인 구조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미 육군항공대의 적십자선 공격은 '라코니아 사건'으로 남게 되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베르너 하르텐슈타인의 기사도 정신은 칭송받아 마땅하였고

독일에서도 그에게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하며 그의 위상은 더 드높아졌다

 

 이후에도 그는 되니츠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격침시킨 함선의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1942년 9월 19일에도 케이프 타운에서 프리 타운으로 이동 중이었던

영국의 RMS Quebec city를 발견하였고, 격침 이후에 휴전 명령을 내려 구조자 작업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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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시티의 생존자 데이비드 C. 존스가 하르텐슈타인과의 만남을 회고하는 The Enemy We Killed, My Friend

 

생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하르텐슈타인은 생존자들에게 자신이 공격했던 배의 이름을 물어봤으며, 자신들을 죽이지 않고 물과 식량을 거리낌 없이 나누어 줬으며

오히려 자신들에게 가장 가까운 육지로 가는 길까지 알려주었고, 이 보다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그러한 행위로 인해 공격을 받았던 과거가 있다며

더 돕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달라며 설명한 그의 인도주의적 행위를 기억하고 있다

 

이후 베르너 하르텐슈타인은 소령으로 진급하여 다섯 번쨰 대서양 임무에 나섰지만, 1943년 3월 8일 작전 수행 중 미 해군항공대 PBY 카탈리나의 공격을 받고

35세의 젊은 나이로 자신과 함께 했던 유보트 U-156과 함께 대서양 바다 아래에 잠드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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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으로서의 본문과 인륜 사이에서 솔선수범하게 생존자 구출에 나섰던 베르너 하르텐슈타인은 현재도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으며

2011년 영국, 독일 합작으로 방영된 TV 드라마 'The Sinking Of Laconia' (라코니아 호의 침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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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 되시고, 안전하게 육지에 도착하길 기원합니다

우리 언젠가 보다 나은 세상에서, 보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만나길 바랍니다

여러분 안녕히 가세요

-퀘벡시티 생존자에게

 

 

댓글
  • 아마존식인종 2021/06/12 20:30

    이런 독일군 독일수도?

  • 川島瑞樹 2021/06/12 20:31

    일본에도 군인이 존재했는데.독일도 군인이 존재했겟지 뭐...


  • 아마존식인종
    2021/06/12 20:30

    이런 독일군 독일수도?

    (cRWhq0)


  • 박찬기
    2021/06/12 20:35

    아 나에게 저런 손직 해줬으면 좋겠다

    (cRWhq0)


  • 川島瑞樹
    2021/06/12 20:31

    일본에도 군인이 존재했는데.독일도 군인이 존재했겟지 뭐...

    (cRWhq0)


  • 크라드메서
    2021/06/12 20:33

    북아메리카?

    (cRWhq0)


  • 데드풀!
    2021/06/12 20:34

    오타

    (cRWhq0)


  • 데드풀!
    2021/06/12 20:35

    수정

    (cRWhq0)


  • 春來🎗
    2021/06/12 20:35

    크..

    (cRWhq0)


  • Maximo
    2021/06/12 20:35

    민간인 쏜 놈은 대체...

    (cRWhq0)


  • K200APC
    2021/06/12 20:35

    해당 일화가 반영된 전함소녀의 U-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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