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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기생충] 이토록 완벽한 절망 (재업 스포포함)
[기생충] 첫 TV 방영 기념으로
작년 5월 30일 개봉일에 관람하고
5월 31일에 올렸던 리뷰를 재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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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가까이 지속된 삶의 무력과 우울로부터
저를 깨운 건 또 다시 영화였습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으로
대한민국 영화 100년 역사 최고의 쾌거를 이룬
바로 그 영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Parasite)].
쓸 이야기가 너무 많기에
많은 분들이 언급하실 부분들보다는
영화 속에 숨겨진 메타포,
감독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집중해 쓰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인터뷰 그대로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무수한 영화들의 자장 속에서
2019년 현재 대한민국 사회,
더 나아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사회의 보편적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조명하고 해부한 영화입니다.
봉 감독 스스로 쓴 것으로 알려진 각본부터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희비의 쌍곡선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각각의 상황을 가장 적절한 대사들로 포진시킵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조던 필 감독의 최근의 수작 [어스]와 비교해 본다면
[기생충]의 각본이 얼마나 뛰어난지 쉽게 알 수 있죠.
그리고 훌륭한 각본의 든든한 기반 위에
영화의 미장센들이 완벽히 구축되어 있습니다.
기택(송강호) 가족의 반지하에 위치한 집과
박사장(이선균) 가족의 부암동에 위치한 집이
그 미장센이 구현되는 공간인데,
디테일 하나하나를 눈여겨 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수직과 수평이 수시로 교차하는 이미지와
수직과 수평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의 동선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선 비.
당연히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져
낮은 곳부터 침수시키지만 높은 곳은 멀쩡합니다.
박사장 가족이 캠핑을 가면서 비워진 집에서
가진 자의 여유를 마음껏 흉내내던 기택의 가족은
천둥과 함께 시작된 폭우에
막상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침수됨을 모릅니다.
어두운 터널과 좁은 계단을 따라
폭우에 침수되고 있는 자신의 동네로 복귀하는
기택, 기우(최우식), 기정(박소담)의 여정을
카메라는 모든 정성을 다해 포착합니다.
그 여정은 당연히 계급적 추락의 여정이며,
계급적 환상에서 계급적 현실로의 복귀의 여정이죠.
급하게 물품 몇 개를 판자에 싣고
폭우로 불어난 물 속에서 수평으로 이동하는 셋을
카메라는 수직의 부감으로 내려다 봅니다.
예상치 못한 시간에 박사장 가족이 돌아왔을 때
기택 가족이 몸을 숨기는 공간은
침대 밑과 탁자 밑입니다.
강아지의 눈치를 보아야 하고
박사장 부부의 은밀한 대화를
고통스럽게 엿들을 수 밖에 없는.
박사장 집 지하실의 비밀공간의 설계도 흥미롭죠.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간 후
수평으로 벽을 밀고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 곳엔 박사장에게 철저히 기생하며,
동시에 박사장을 리스펙트하며 살아가는,
문광(이정은)의 남편이 존재합니다.
기생(寄生)이라는 관점에서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는 다를 게 없습니다.
계급상승의 욕망은 기택 가족이 더 크겠지만,
계급투쟁이나 계급전복의 의지가 없다는 점에서도
그들은 같습니다.
문제는 얼마든지 함께 기생을 할 수 있었던 그들이
기생의 자격을 전유(專有)하려 했다는 점이겠죠.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두 가족이 본격적으로 대립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문광 부부는 질서의 수호자인 경찰과
안락의 수호자인 박사장에게 알리겠다 협박하며
지극히 체제순응적인 태도를 고수합니다.
유산계급을 상대로 한 무산계급의 투쟁이 아니라
무산계급끼리의 투쟁이 참극을 잉태함이
이 영화의 비극적 아이러니입니다.
대한민국의 경계를 넘는다면,
원주민의 땅을 빼앗아 나라를 건설한 제국주의 역사,
이민자와 난민의 문제로까지 시선을 확장할 수 있죠.
문광 부부를 인디언 원주민으로,
박사장 가족을 주류 백인으로 치환한다면
기택 가족은 제 3세계 이민자들일 겁니다.
그러나 [기생충]은
그 지점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갑니다.
박사장이 몇 번에 걸쳐 말하는 대사.
"선(線)을 넘지 말라"는.
그 선은 당연히 계급의 선입니다.
몇 번의 아슬아슬한 상황에서도
기택 가족은 그 선을 지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래도 사모님을 사랑하시죠?" 정도가
위험수위에 가장 근접한 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선을 넘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냄새였습니다.
같은 계급끼리는 너무 익숙해져 맡을 수 없는,
그러나 가진 자들에게는
비 온 뒤 지하철 냄새로 단순화되는 냄새.
그 냄새를 처음 인식한 건 박사장의 아들 다송이죠.
또한 문광 남편이 보내는 모스 부호를
처음 눈치챈 사람도 다송입니다.
그리고 다송의 생일 파티에서 참극은 시작됩니다.
문광 남편의 칼 끝은 너무도 당연하게
박사장이 아니라 기택 가족을 향합니다.
그러나 급작스럽게 딸을 잃어 황망한 기택을
격발시키는 존재는 문광의 남편이 아니라
그 다급한 순간에도 한 손으로 코를 막으며
온 몸으로 혐오를 드러내는 박사장이었죠.
그 때서야 비로소
계급의 선을 결코 넘을 수 없다는,
신분적 정체성을 자각한 기택은
그의 칼을 빼앗아 박사장의 가슴을 찌릅니다.
'계획'이란 단어 역시 이 영화의 중요한 화두입니다.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며
기우의 치밀함을 칭찬하던 기택 본인에게
최고의 계획은 무계획이죠.
기택에게 삶의 계획들이 없었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반복적으로 어그러지는 계획들을 보며
기택이 자조적으로 터득한, 나름의 삶의 진실이죠.
계획을 세울 희망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
바로 그것이 봉준호 감독이 인식한
지금 우리 사회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절로 빛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완벽한 각본에 적확한 디렉팅이 주어지기 때문이죠.
모든 배우들이 제 몫을 다하지만,
최우식 배우와 이정은 배우는 실로 대단하네요.
이 영화의 주인공을 한 명만 꼽으라고 한다면
송강호 배우가 아니라 최우식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그 천연덕스러운 완급 조절의 힘이란...
이미 숱한 영화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한
홍경표 감독의 안정적이면서도
끊임없이 긴장감을 유도하는 촬영,
돌비 애트모스 믹싱을 이용한 섬세한 음향,
정재일 음악감독의 비범한 음악까지...
영화 [기생충]이 심사위원들 만장일치의 결정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게 된 요인들입니다.
참극이 있은 후,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영화는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을 통해
엔딩을 장식합니다.
기택이 기우에게 보내는 편지는 플래시백으로,
기우가 기택에게 보내는 편지는 플래시포워드로.
그러나 그 플래시포워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입니다.
폭우에 잠긴 집에서 물 위로 떠오른 후,
왠지 계속해서 기우에게 들러붙던 수석이
물리법칙을 위반한 거짓이듯.
영화의 엔딩,
기우가 멍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합니다.
이제 자신과 가족들은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지,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묻고 싶은 듯.
영화로써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것은
감독의 오판이자 오만일 수 있습니다.
다만, 위대한 영화는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고
그 해법을 찾기 위한 각성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계급 간의 대립과 충돌도 모자라
같은 계급끼리 서로 반목하며 이전투구를 하는,
그럼으로써 어느새 같은 냄새를 풍기며
모멸의 손가락질에 스스로를 노출시키고마는,
또는 그 반대로...
그 냄새에 기어이 보란 듯이 코를 막음으로써
모멸의 비웃음을 노출시키고마는,
이 비극적이고 절망적인 기생의 시대에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이라는 희망은
요원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봉준호 감독의 영화열차가 당도한 곳은
'절망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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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 불펜의 계급갈등을 초월한 좋은글 ㄷㄷ
저도 봉 감독의 통찰력에 감탄 해가며 엄청 재미있으면서도 슬프게 본
최고의 영화 입니다
과연 이 사회의 결말에는 시지프스가 굴리는 돌의 의미가 보일런지 회의감이 다시한번 밀려오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리플수정]흠 난 좀 비현실적이라 실망스러웠어요.
오히려 스카이캐슬이 더 현실적이죠.
부자들을 너무 순진하게 묘사한듯..
(난 부자들에게 전혀 반감도 없고 별로 부럽지도 않지만 부자들은 그렇게까지 올라간 만큼 뭔가 있습니다. 착하고 순수할수만은 없죠. 물론 간혹 몇몇은 세상물정 모르고 순진하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네트워크와 정보력으로 저정도로 순진하게 이용당하는건 현실성없죠.)
'선 넘는다'는 조국부부가 하는 행동보면 천룡인들에게 허용되는 선을 자기들외에는 허용안하는거 보면 맞는 소리이긴함.
혁명전야님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계급 간의 대립과 충돌, 같은 계급끼리의 반목과 이전투구를 보여준 영화라는 표현에 100% 동의합니다.
특정 집단을 제외한 이들(가붕게)에게는 선을 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현재의 우리 사회를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네요. 오늘 하루도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늘 건강하세요~
조국ㆍ추미애가 떠오르는군요.
짝짝짝!!!
일단 혁명전야님!!~~추석 연휴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도 tv로 해준 추석 영화로는 유일하게 tvn에서 방영해준 이 기생충을 봤습니다
다시 봐도 역시나 명작이고 이렇게 다시 또 재업해준거에 대해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제목이 바뀌어졌는데 이 제목 진짜 맘에 드네요..!!!
다시 또 읽어도 역시나 넘넘 좋습니다!!
저 당시의 기억도 넘 생생하고요..특히 첫문장을 읽고(정확하겐 첫문단이 아닌 두번째 단락이겠죠) 제가 넘넘 반가워서 글쓴것도요 ㅎㅎ
역시나 좋은 영화는 다시 봐도 더더욱 좋고 혁명전야님의 이 좋은글 역시 또 읽어도 넘나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본격적으로 날씨가 쌀쌀해져서 틈나는대로 영화 보기 딱인데 이게 잘 안되네요..ㅎㅎ ㅠㅠㅠ
그래도 혁명전야님의 추천해주신 영화들과 리뷰(아직 안본것들)의 작품들은 거의 다 다운받아 놓은 상태이니 이번해 가기전엔 천천히 보도록 해야 될거 같습니다!!
건강 정말 유의하시고 언제나 좋은 영화 글들 항상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지막 연휴 마무리 잘하시고 굿밤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