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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조선에 제일 아쉬운 역사 두가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
역사교과서에는 경복궁 재건에 자금이 부족해져 당백전을 발행하여 경제가 악화되었다 정도의 서술
실제 순조1년치 예산인 60만냥의 12년치인 720만냥 투입
삼정의문란으로 돈이 없어 당백전 발행하여 재건함.
이것때문에 조선의 실물경제가 아작남.
문제는 이시기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가는 절체절명의 기회였으나
조선 스스로 저 어마어마한 예산으로 궁 건설을 때려버림
이와 비교되는게 서태후의 북양함대.
북양함대는 포탄이 없어서 싸움조차 못하는 비리의 근원이지만
그래도 독일의 최신식 함대를 구축하기는 했었음..
마지막 하나는 기축옥사.
조선시대의 나머지 사화를 합친것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죽어나감 이때부터 소모적인 정쟁이 극화됨
바로 이어지는 임진왜란때 쓰일 초급장교(유생과 선비들)
이 싹다 갈려나가며 조선은 인재난에 허덕이게 한 주범.
조선의 두번의 악재는 일본인데 그 악재 1~2년전에
엄청난 실수를 조선이 해주었다는점이...

댓글
  • Charlietdot 2020/09/27 02:34

    추천합니다. 개인적으론 소현세자가 왕이 못되고 독살당한게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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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첸졉 2020/09/27 02:35

    당백전이 일종의 화폐개혁인데
    경제개념 조차 모르고 휘두른 칼이라
    1:100짜리 새화폐를 그냥 마구잡이로 찍어냄
    조선은 거기서 아디오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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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요-레로 2020/09/27 02:36

    그냥 성리학 버렸어야함...20세기에도 위정척사이러는데 무슨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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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첸졉 2020/09/27 02:38

    딩요-레로// 성리학이 아니라 성리교입니다.
    조선은 못버려요. 역성혁명으로 왕조가 바껴야 가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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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2:39

    첸졉//거기서 조선은 사실상 끝이였죠.
    예전에는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일본에 통째로 먹혔는지
    이해 자체가 안되었는데 저걸 보고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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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nolja 2020/09/27 02:42

    난 1847년에 흥선대원군이 동지사로 중국을 방문하지 못한 것. 동지사는 동지 무렵에 중국에 파견하는 사신인데 1847년은 1차 아편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그때 흥선대원군이 중국을 방문했다면 서양과 청나라의 선명히 대비되는 현실을 지대로 체감하고 왔을 겁니다. 역만없이지만, 그랬다면 원래는 존황양이파였지만 영국을 가보고 2차 아편전쟁 직후의 상하이를 가본 다음 서양이 대세임을 직감하고 개화파로 전향한 이토 히로부미처럼 흥선대원군도
    집권하고 서원철폐 등 한창 개혁을 밀어붙일 때 문호개방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뇌피셜 때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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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렌체 2020/09/27 02:42

    문종이 빨리 죽은 것도 추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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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2:42

    지금드는 생각이지만 180석을 보면?.
    성리학을 만드는것도 따르는것도 결국 그 국민이 아닐지
    다만 조선이 망하는 과정은 전근대 국가의 한계점을 너무 명확하게 보여준거죠.
    전근대시스템은 현명한 군주 한명이 있다면 독재처럼
    단기간에 산업화-경제발전-시민의식등 국가 시스템을
    150년 정도 당길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무능한 군주가 오면 150년이 아니라 석기시대로
    보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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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2:45

    [리플수정]yanolja//중국에 갔었더라도 별 반 다르진 않았을겁니다.
    중국 애들도 서양 최신식 함대를 사고 별짓을 다했지만.
    전근대적인 문제점은 개선 못했고
    일본과 전생에서 패배하죠..
    서태후같은 권력의 화신인 흥선대원군이 있는 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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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aksung 2020/09/27 02:46

    계유정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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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첸졉 2020/09/27 02:46

    yanolja// 흥선의 정치적 기반이 약해서 쇄국모드는 필연이었다고 봅니다.
    내부의 불만세력을 잠재우는데는 외부의 적이 최고니까요.
    그리고 흥선은 왕이 아니라 왕의 아버지일뿐이고 그 왕조차 정통성이 약하죠.
    더불어 15세가 되면 성인이던 사회입니다.
    권력을 휘두룰 명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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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딩요-레로 2020/09/27 02:52

    첸졉// 고종이 바보라서 대원군이 권력 꽤 오래 잡을수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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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2:52

    챈졉// 그런의미가 아닙니다.전근대에서 근대로 가기 위해서필수적으로 군주제에 권력이 무너져야 합니다.
    그런대 흥선대원군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죠.
    정치적권력이 약해서 쇄국모드를 한게 아니라.
    자기 권력을 잃기 싫었기 땜에 그렇게 한겁니다.
    선후관계가 잘못되었다고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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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nolja 2020/09/27 02:53

    그래고리얀//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이죠. 일본은 에도시대부터 난학을 중심으로 닦아온 내공이 있었기에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이구요. 중국은 본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서 바뀌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죠. 중국의 안보우산 아래 있던 우리는, 중국이 아니었기에 집권자가 중국이 깨지는 걸 목격했다면 중국 중심의 세계관이 바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거죠. 임오군란으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 갔다 오고나선 흥선대원군이 서양식 문물을 선보이고 그랬어요. 어찌해도 망했을 것 같은 조선이지만 구한말에 반전의 기회가 있었다면 그때가 아니었은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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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2:54

    챈졉// 그러니까 어쩔수 없었다 필연이다 라기 보다
    흥선대원군의 개인의 선택인거죠.
    경복궁 재건 같은 경우도 자기 권력이나 욕심에 의해서
    무리한 추진을 한거구요.
    흥선대원군의 사람이라는게 필연인가 그건 모르겠지만.
    행동 자체는 필연이라고 보기 어렵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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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nolja 2020/09/27 02:58

    더구나 일본이 개항한 1850년와 우리가 개항한 1870년대는 제국주의의 진행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가 있죠. 1850년대는 제국주의가 그래도 순했어요(?) 근데 1870년대로 오면 제국주의가 그야말로 짐승이 되죠. 그런 면에서 영국이 처음에 개항을 요구했을 때 개항했다면 제국주의가 아직은 순한맛일 때고 일본의 지식층도 조선을 접수하자보다는 저 미개한 나라가 개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입장이 보다 강했던 만큼 우리가 식민지가 되지 않고 근대화 시도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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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3:01

    예산의 12년치를 경복궁 재건에 몰빵 때린것도 모자라
    당백전까지 발행해서 나라를 망친 사람이
    서양식 문물을 보고 전근대에서 개혁개방을 했을까요?
    청나라도 서태후가 독일 최신식 북양함대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저때 청나라는 양무운동이라고 근대식 군사무기는 도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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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첸졉 2020/09/27 03:02

    [리플수정]그래고리얀// 자기 권력의 명분이 약한 상태에서 가장 큰 기득권 세력인 서원과 척을 진 상태입니다.
    그러니 외부의 적이 있어야 자기 권력을 유지할 명분이 생기죠.
    그리고 쇄국의 가장 큰 결정타는 남연군 묘 도굴사건입니다.
    당시 조선 사회가 받아들일수 없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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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3:05

    아편전쟁이 막 끝나던 참에도 경복궁 재건 때리는데 여념없던 인간입니다. 이미 조선에도 청나라가 전쟁에서 패배했던걸 알던 시점인데도 경복궁 재건에 12년치 예산을 날려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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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3:06

    임오군란 이후 서양식 문물을 도입했다고 말해서 이야기 하는겁니다. 이미 다른나라들은 최소한의 군사무기의 근대화라라도 노리던 시절에도 예산을 투입해서 경복궁 재건하고 당백전 발행해서 나라를 그냥 말아먹었어요. 이미 이 시점에서 쇄국이고 나발이고 의미가 없어지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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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nolja 2020/09/27 03:07

    그래고리얀// 서태후와 흥선대원군을 등치로 보신다면 더 할 말이 없네요. 당대 기득권과 맞짱 떴듼 서원철폐와 호포제 등 개혁정책을 편 것만 봐도 서태후와의 비교는 당치도 않습니다. 그리고 양무운동은 2차 아편전쟁이 끝난 다음 나온 거고 그때는 제국주의도 짐승의 단계로 접어든 땐데 자꾸 그 얘기를 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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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3:10

    제 말은 그겁니다.이미 제국주의 짐승 시절이고
    중국이 양무운동을 하면서 근대무기 도입할 시기에도
    경복궁 재건을 하고 있었다니까요?
    그런데 무슨 중국에 다녀오지 않아서라는 가정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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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nolja 2020/09/27 03:11

    그래고리얀// 직접 중국에 가서 서양의 맛을 체험하고 오니 개방에 호의적인 면을 보인 걸로 봐서 더 젊었던, 집권 이전에 국가경영의 야심을 품었을 때 그 맛을 직접 봤다면 좀 달랐을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는 거였습니다. 임오군란 이후에 무슨 서양문물을 본격 소개했다는 게 아니라. 제 생각은 충분히 말한 것 같으니 저는 이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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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3:12

    이미 두번의 아편전쟁과 중국이 근대식 서양무기 도입을 위해 양무운동을 하고 있던 1860년에도 경복궁 재건으로 나라 망쳐먹고 있었는데. 1847년에 중국을 방문해서 현실을 깨닫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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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고리얀 2020/09/27 03:15

    1847년이면 아직 2차 아편전쟁이 시작도 않았을때에요
    적어도 그때 개방을 하지 않았으면 상식적으로 납득이라도 가지요.
    중국 조차도 아직 완전히 현실을 모르던 시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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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56 2020/09/27 04:52

    와 경복궁 그게 뭐라고 그리 엄청난 예산이 쓰이나요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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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대충 2020/09/27 05:23

    경복궁 중건은 단순히 돈을 많이쓴거+경제체제 붕괴.. 저 시기에 할수있는 최악의 악수였던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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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35w53w532262aq24642a6 2020/09/27 05:37

    조선에서 제일 아쉬운건 이씨조선왕들이랑 양반들을
    모조리 믹서기에 갈아죽이지 못했다는것이겠죠
    얘네들이 빨갱이되고 김씨조선 북한만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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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35w53w532262aq24642a6 2020/09/27 05:39

    왕가랑 양반들 다들 목 따서 죽였어야했는데...
    이게 참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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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바닥 2020/09/27 05:54

    지나간 역사에
    가정이 의미가 없긴하죠
    하지만
    조선시대에서 가장 생각해볼 가정은
    분조 광해 옆에서 이순신이 나라를 다스리는것
    왜란 종식후 광해 이순신 투톱으로 달리기
    하지만
    이순신은 없고 광해는 맛이 가고
    조선 후기가 그렇게 도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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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같은말 2020/09/27 06:03

    계유정난에서 조선은 끝났다고 평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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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닝토리 2020/09/27 06:22

    계유정난 - 연산군 - 중종반정으로 인해, 태종,세종이 이뤄놓은 왕권기반이 무너져 국운이 다했음
    왜란, 호란이후 역성혁명을 통해 나라를 갈아엎었어야했는데, 결국 일제에게 먹힐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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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치 2020/09/27 06:42

    기축옥사는 생각이 좀 다른게... 바로 윗분이 말씀하신 계유정난 - 연산군 - 중종반정에 명종대 윤원형의 난정까지 겹치면서 기존의 훈구 정치세력의 모럴 해저드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집권한 것이 선조였거든요.
    그리고 그 선조가 훈구를 대체하기 위해 이황을 스승으로 삼아가면서 사림을 등용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 사림의 세력이 너무 세져서 오히려 왕이 휘둘리게 될 것 같으니 선택한 것이 붕당이요 기축옥사였고.
    그 사림 세력의 정신적 기반이 성리학이고, 인조대 이후 서인 - 노론으로 이어지다가 순조대 이후로 시작된 세도정치의 주축인 경화세족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 선조의 견제책이 무조건 나쁘다고는 볼 수 없죠.
    성리학이라는 주류학문을 대체하거나 혹은 정쟁화 될 가능성이 있었던 외래종교인 천주교가 조선에 전래된 것은 너무 늦은 시기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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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곰치 2020/09/27 06:46

    보통 소모적 정쟁의 끝은 기축옥사보다는 인조반정을 통한 북인의 몰락이나 이후 숙종대 환국을 통한 남인의 몰락 등이 더 큰 원인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선조 대의 기축옥사 뒤로도 선조는 동인인 류성룡과 서인인 윤두수를 적절히 제어하며 조정이 어느 한 쪽으로 이끌었고, 기축옥사를 주도했던 정철은 이후 선조에게 팽당한 사실만 봐도 뭐... 적어도 저 시점까지는 왕권이 신권을 (정상적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제어는 하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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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파갈매기 2020/09/27 09:44

    구한말 경복궁 재건이 조선 경제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게 했지만, 이후 흥선대원군 당시 세도정치를 무너뜨리고 재정을 안정화 시켰기 때문에 당백전 발행이 치명타 였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이후 민비일가의 세도정치로 인해 매관매직, 재정 탕감, 극심한 부정부패가 오히려 구한말 경제의 치명타가 되었고, 이로 인해 동학혁명, 임오군란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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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레이오스 2020/09/27 10:04

    생각해보셔야할께 흥선대원군은 유교 성리학자일뿐 근대? 개혁? 이런거와 거리가 먼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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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11 2020/09/27 10:05

    송파갈매기// 아뇨 흥선대원군의 개혁의지자체는 높이 살만한데 경복궁재건은 재정에 치명타 수준을 넘어서 그냥 망한원인1위로 꼽아도 부족하지않을정도에요. 몇년치예산을 다 땡겨쓴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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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11 2020/09/27 10:06

    카레이오스// 흥선대원군이 서구문물에 관심많은건 팩트였죠 프랑스 독일하고 접촉시도나 제너럴셔먼호 건져서 굴려볼라규 쌩쇼한건 유명한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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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초면돼 2020/09/27 10:06

    근데 19세기 후반에 경복궁 정도 지었다고 휘청거릴 나라면 말 다한 거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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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3011 2020/09/27 10:09

    경복궁재건은 지금으로치면 건축사업하나에 1000조원 꼬라박은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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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레이오스 2020/09/27 10:13

    203011// 그 정도 관심은 그냥 인간 호기심이죠 훗날 조선에 돌아왔을때 잠깐 다시 권력잡은적 있는데 그때도 개혁하는거 전부 거부했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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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드바드 2020/09/27 10:16

    그래도 경복궁 재건해놔서 지금은 서울 최고 관광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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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재앙 2020/09/27 10:20

    역성혁명으로 조선 갈아치우고 신왕조 개창하면 무조건 근대화가 이뤄졌을 거라는 순진한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건지 참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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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gloo 2020/09/27 11:01

    나라를 망하게 하는 주원인인 성리학과 쇄국 둘 다 했으니 조선은 안 망하면 이상한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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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를찌르자 2020/09/27 11:28

    홍경래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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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종훈 2020/09/27 11:29

    기축옥사 인정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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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종훈 2020/09/27 11:31

    개인적으로 수양군의(대군도 아까움) 계유정난요. 세종 문종시절 통치기반을 망치고 훈구 척신들의 집권을 보장해줌. 집현전 탄압으로 학술연구기관 붕괴. 정통성없는 수양이 스스로 명에게더욱더 사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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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종훈 2020/09/27 11:32

    신드바드// 그것도 일제가 건드려서 복원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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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ackSheep 2020/09/27 11:33

    청나라한테 대가리 깨지고도 정신 못차렸으면 거기서 그냥 망한거나 마찮가지.
    지금의 한국도 대깨문 상태인데 다음 대선 총선 정신 못차리면 조선 꼴 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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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dsoxGoGo 2020/09/27 11:51

    이런 글 참 좋네요 배우고 갑니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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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마이티 2020/09/27 12:23

    문선대원군 대깨문 개객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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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스터산 2020/09/27 12:32

    양란 이후 지배계층 물갈이가 안된게 가장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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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노미야츠바키 2020/09/27 12:50

    한국사 황현필은 흥선대원군 찬양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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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작하자 2020/09/27 12:52

    애초에 내재역량이 바닥인 상태에서 경복궁 중건같은 거 안했어도 대세에 지장없습니다 일본 메이지유신이 그냥 우당탕탕 운좋아 된 게 아닙니다 떵에 설사에 그 난리통을 겪었어도 끝내 성공시킨 건 나름대로 근대화를 이끌어낼 일본 내 역량이 축적되어 있어 가능한 거였고 조선은 일본 유신 3걸 정도의 인재가 열 배가 있었어도 안되는 사회였습니다 좀비는 아무리 치장을 해봐야 좀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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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리로이 2020/09/27 13:18

    그냥 유교탈레반 자체가 답이 없는 사상.. 그거 안버리고는 어떤 짓을 해도 발전 못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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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산삼릉 2020/09/27 13:24

    제리로이// 뭐든 유교탓으로 돌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본을 보면 유교탓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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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atius 2020/09/27 13:46

    [리플수정]성리학은 원시유교에 도교가 짬뽕된 학문을 가장한 종교에 가까웠죠. 성리학 때문에 조선은 600년 동안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오규 소라이는 성리학의 헛소리를 간파하고 현실지향적인 유교(일명 소라이학)를 정립하여 이후 일본의 근대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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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ooooon 2020/09/27 13:47

    계유정난때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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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산삼릉 2020/09/27 13:54

    Gratius// 그 "성리학 때문에"가 말이 안 되는 거죠. 학문을 발전시키지 못한 후손의 문제지. 학문이든 종교든 변화하고 발전해야 됩니다. 말씀하신 소라이도 하야시 라잔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이고 하야시 라잔은 이황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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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판행성 2020/09/27 14:04

    삼산삼릉// 국가 경제와는 하등 상관없는 성리학을 광신도처럼 신봉하던 조선 지배층들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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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atius 2020/09/27 14:10

    [리플수정]삼산삼릉// 그래서 그 성리학교조주의 때문에 학문 발전이 안된거죠. 조금이라도 참신한 의견을 내면 '사문난적'이라고 숙청을 시켜버리는 사회에서 무슨 학문 발전이 일어나겠습니까? 일본은 성리학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연구해서 발전시킬 수 있었던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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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산삼릉 2020/09/27 14:14

    사판행성// 그게 성리학의 문제가 아니란 얘깁니다. 성리학과 국가경제가 큰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이념을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 국력을 낭비한 게 문제죠. 성리학이든 다른 어떤 학문이든 같았을겁니다. 요즘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그러잖아요. 지정학적으로 외부에 신경쓸 것이 크게 없었던 조선에서는 일어날 확률이 높은 일이긴 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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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산삼릉 2020/09/27 14:18

    [리플수정]Gratius// 그럼 성리학 때문이라고 하면 안 되죠. 성리학은 단순히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것뿐입니다. 16세기 말 이후 지배계층의 문제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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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산삼릉 2020/09/27 14:21

    간단하게 비교해서 지금 우리가 국회의원을 비판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는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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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판행성 2020/09/27 14:25

    삼산삼릉// 성리학 못잃는 조선 지배계층 때문이라구요. 국력과 관련도 없는 학문을 나라 망할때까지 빨아제끼니 다른 학문들이 무슨 수로 클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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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산삼릉 2020/09/27 14:33

    [리플수정]사판행성// 조선은 처음부터 유교국가였습니다. 조선 초기는 유럽에 놔도 강대국 소릴 들을 정도로 괜찮은 국가였구요. 과학 등 학문적으로도 상당히 뛰어난 국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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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anolja 2020/09/27 15:42

    삼산삼릉// 하야시 라잔이나 오규 소라이나 신분이 별 볼일 없었습니다. 하야시 라잔은 하급 사무라이 아들이고 오규 소라이는 다이묘에게 속해있던 의사의 아들이었고 그마저도 집안이 망해 어디 시골에 가서 밥굶으며 자란 사람이에요. 그런 출신성분이었기에 기득권이 보지 못했던 눈으로 유학의 문제점을 간파해 실증주의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에도시대 대표적인 사상가가 됨으로써 에도시대 일본 지식계가 실증주의에 기반해 난학 등을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죠. 조선 성리학자들이 지식독점이 깨지는 걸 허용했나요? 유럽에서 근대가 발명될 수 있었던 것도 지식독점이 깨져서인데 조선이었다면 천출 소리 들었을 하야시 라잔이나 오규 소라이가 학문을 할 수 있었겠어요? 안분지족을 외치며 카스트제처럼 공고한 신분제에 기초해 지식독점을 끝까지 고수한 게 조선 사대부고 그게 성리학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건데 이황 영향을 받아서 하야시 라잔이 유학을 했으니 성리학은 문제없다는 귀결이 어떻게 나오나요? 일본은 기득권층의 지식독점이 깨진 상태에서 유학을 받아 들였으니까 조선처럼 원리주의에 빠지지 않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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