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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을 보고.. 자신이 온 곳을 부정한 자, 다시 그 곳으로 향하다 (스포 포함)
얀 코마사 감독의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을 VOD로 보았습니다.
원제는 기독교의 성체축일(聖體祝日)을 뜻하는
라틴어 [Corpus Christi] 입니다.
번역이 적절하게 이루어진 사례로 여겨집니다.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어
[기생충], [페인 & 글로리]와 경쟁한 작품이죠.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는 착한 영화라고 느꼈지만
예감을 보기좋게 빗나가는 작품입니다.
극의 진행은 예측을 허락하지 않고
결말에 이르러선 상당한 충격까지 선사합니다.
종교의 본질, 성직자의 자질, 속죄와 용서,
한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이중성,
그것이 공동체 질서에 미치는 영향 등,
매우 다양한 각도에서
존재론적, 윤리적 질문을 제기하는 영화이더군요.
신랄하고 통렬합니다.
무엇보다 상당히 흥미진진하며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은 흥미를 배가시킵니다.
신부를 꿈꾸지만 신부가 될 수 없는
20세 청년 다니엘(바르토시 비엘레니아).
가석방으로 소년원에서 출소한 그는
토마시(루카즈 시므라트) 신부의 도움으로
어느 마을의 목공소에 일자리를 얻게 됩니다.
목공소에 들어가기 전 성당의 종소리에 이끌려
그 마을의 성당에 들어가게 된 다니엘은
소년원에서 훔친 사제복을 이용하고
토마시 신부의 이름을 도용함으로써
그 성당의 주임 신부 자리를 대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그의 파격적인 행동에
사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마을 사람들은
친근감을 느끼며 서서히 그를 신뢰합니다.
[문신을 한 신부님]은 대담하게도
영화가 다루게 될 주제를
소년원 벽에 붙은 낱말 카드로 먼저 보여주죠.
고통, 분노, 폭력, 가족, 사랑, 파멸...
이 영화가 가장 먼저 화두로 삼는 주제는
속죄와 용서의 딜레마입니다.
다니엘이 어떤 이유로 소년원에 수감됐는지는
영화의 후반부, 소년원 동기인
핀체르(토마시 지엥텍)의 고해성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밝혀집니다.
마약, 술, 담배에 중독된 다니엘은
한 친구를 폭행하고 그 결과 친구는 사망합니다.
폭행을 한 이유는 자신의 허세를 위해서였죠.
그는 소년원에서 교화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소년원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마약, 술, 담배에 탐닉하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가 가석방을 받게 된 이유도
죽은 친구의 형이 같은 소년원에 입소해
자신의 신변을 위협했기에
평상시 존경하던 토마시 신부를 졸랐기 때문이죠.
다니엘의 신심(信心)이 언제부터 돈독했는지는
영화 안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다니엘의 신앙심이 특별하다는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다니엘의 모순이 시작되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가짜 사제로서 그의 말씀을 대리해 행하는 그는
신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합니다.
엘리자(엘리자 리쳄벨)에게 했던 말 그대로,
다니엘은 어디에서 왔는지보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죠.
범죄자는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의 이율배반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의 언행이 지닌 모순은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 밖의 사제복,
그가 입은 사제복 안의 문신,
양자의 모순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문신은 사회가 그에게 찍은 낙인(烙印)입니다.
성당이 있는 마을에도 딜레마가 있습니다.
일년 전 있었던 비극적 사건.
음주운전자의 차와 충돌하며
마을의 젊은이 여섯 명이 사망했습니다.
피해자 유족들은 가해자가 실제로
술을 마셨는지에 대해 의도적으로 함구하며
가해자를 교구내 묘지에 매장하기를 거부하죠.
가해자의 사진을 성당 앞 게시판에 올리는 것도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피해자의 가족들은 이 비극이
주님이 계획하신 일이라 말하면서도
가해자의 아내를 철저히 배척하고
심지어 그녀에게 악담이 적힌 편지를 보냅니다.
다니엘이 시장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이 사건에 유달리 집착하는 이유는
가해자를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이겠죠.
신보다 앞서 자신을 기꺼이 용서한 그는
피해자의 유족들이 가해자를 용서하고
그 분골을 교구 묘지에 매장할 것을 주장합니다.
술에 만취한 것은 오히려 피해자들이었단 진실을
엘리자를 통해 알아낸 다니엘은
사랑과 용서라는 교리를 실천하라 말합니다.
가장 잘 하는 것은 포기와 손가락질이라며
그들을 나무라고,
비극은 주님으로부터 멀어진 내용의 우화라며
그들에게 설교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의 그런 말과 행동은
서서히 공동체 구성원들을 바꾸어 나가죠.
여기에서 영화는 다시 묻습니다.
성직자의 권능(權能)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신학교에 다니며 신학을 공부하지도 않은 자가
정상적인 과정으로 사제의 자리에 오른 이보다
더 훌륭하게 성직자로서의 책무를 다할 때
그의 행동은 용납될 수 있는가.
한 번 낙인이 찍힌 자는
주님의 말씀을 대리할 자격마저 잃는 것인가.
더 나아가,
옳은 결과는 잘못된 과정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바르토시 비엘레니아.
1992년에 출생한 폴란드의 배우로서
이 영화가 그의 장편 데뷔작입니다.
놀랍네요.
사슴의 눈을 닮은 선한 눈에 악마를 담습니다.
지극히 성스러운 마스크에
불안과 퇴폐와 허무, 고독까지 담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도 공존합니다.
그렇게 푸른 눈동자를 본 적이 없네요.
사파이어 같기도 하고 지중해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배우입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을 감출 수 없듯
사제복 아래 문신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습니다.
다니엘의 진짜 신분이 드러나고
진짜 토마스 신부가 다니엘을 찾아 옵니다.
토마스 신부는 다니엘이 집전할 예정인,
교통사고 가해자의 장례미사를 허락하지 않죠.
다니엘이 신도들과 함께 보낸
행복했던 시간들을 담은 사진들을 보면서
토마스 신부의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토마스 신부 몰래 신도들 앞에 선 다니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응시하더니
사제복을 벗고 자신의 문신을
세상에 드러냅니다.
다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제 귀엔 분명 들렸습니다.
"너희들 가운데 죄 짓지 않은 자,
먼저 내게 돌을 던져라..."
그 순간 다니엘은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간을 점프한 영화는 엔딩으로 향합니다.
다시 소년원.
자신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친구의 형이
다니엘을 최종적으로 응징하려 합니다.
그의 주먹을 온 몸으로 받아낼 거라 믿었습니다.
구도자로서 떠난 순례의 길에서 돌아온 다니엘이
순교(殉敎)를 택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말로는 용서와 사랑을 외치면서도
마음으로는 용서와 사랑을 행하지 못하는
모든 성직자들과 신도들의 죄를
문신이란 낙인이 찍힌 자신의 육신으로
대속(代贖)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원 목공소엔 불이 붙고
가짜이긴 했지만 잠시나마 사제였던 그는
성(聖)의 얼굴을 완전히 거둔 채
속(俗)의 세계로 귀환합니다.
그의 눈에선 결연한 분노가 이글이글거립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과 용서는 어느새 사라졌고
세상을 향한 사랑과 용서도 동시에 사라집니다.
어디에서 왔는지보다
어디로 갈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자신과 세상을 애써 기망하던 가짜 예수는
정확히 자신이 떠나온 그 곳을 향해
되돌아가려 합니다...
사랑과 용서를 행하는 그 곳이
바로 천국이라 설파하던 사제는
이제 천국을 등지고 지옥으로 향하려 합니다...
영화의 시작,
소년원 벽에 붙어 있던 여섯 개의 카드들 중
가짜 예수가 끝내 선택한 카드는
파멸입니다...
오,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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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글을 읽고 나니 영화가 긍금해지고 뭔가 흥미롭네요.
봐야할 영화 하나가 더 생겼습니다.
영화 감상후 다시 한번 찾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ㅎ
리뷰 감사합니다. 이 영화 꼭 보고 싶네요...
오 영화 봣는데 이해가 이제야되네요
design_zoo// 꼬옥 보셔야 할 문제작입니다. 전혀 뻔하지 않은, 뒷통수 제대로 맞는...
끼얏호만세// 네 의미있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파이랑// 제 리뷰가 도움드린 것 같아 뿌듯하고 기분 좋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액션영화인가 했는데;; 이 영화 땡기네요 ㅎ
언제나 그렇듯 영화를 엄청 땡기게하다못해 고픈, 스크린 앞으로 당장 앉게하는 리뷰입니다.
스크랩합니다.
선댄스, 리치리치미 // 의미있게 즐감하시길 바랍니다
zigollo// 네 ^^
영화 한편 본 기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