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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로 살면서 경험한 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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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야기를 담은 만큼 다른곳으로 퍼가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동의없는 불펌에 대해 강력 대응 하겠습니다.


오늘로 보배 눈팅한지 6일차 입니다.


현재는 대학병원을 나와 병원에서 근무중입니다.


제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순전히 제가 즐겁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글에 의사로서의 경험담이 더 많아져서 재미가 없더라도 제가 즐겁다면 계속 쓸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밤이 늦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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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중보건의 배치 과정


훈련소를 나오면 우리는 훈련생 수료 신분으로 보건복지부에 편입된다. 공중보건의는 참 독특한 신분이다. 병역을 행하는 중이니 병역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동시에 임기제 공무원으로서 공무원법의 적용도 받는다. 추가적으로 의료인으로서 의료법 적용도 받는다. 가끔 법의 내용이 상충될때가 있는데 그때가 가장 괴로웠다. 예를 들어 보건소장의 명령에 따라 공중보건의가 황제출장 예방접종을 해야 할 때, 보건소 산하 직원이라면 보건소장의 명령을 따르는것이 맞지만 병원을 벗어난 곳에서 진료행위와 접종행위를 하는것은 의료법상 위반이 된다. 그분들은 황제들이라 꼭 가서 놔드려야하는게 맞지만 나는 범법자가 되고 만다. 이토록 공중보건의들은 취약한 법테두리 안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훈련소를 나오게 되면 일주일간 직무교육을 받는다. 갓 졸업한 일반의부터 보드 (보드;전문의 자격)를 따고 나온 전문의까지 다양하고 이전과는 다른 공공의료에 종사하게 되기 때문에 추가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더 중요한 순간이 있다.

바로 지역 추첨이다. 지역 추첨은 정말 중요하다. 추첨을 잘못하게 되면 내가 살던 지역과 정반대되는곳에서 살수도 있고 심지어 섬에 떨어져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섬생활을 해야할 수도 있다.

우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없는 지역은 전라남도이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전남에는 무수히 많은 섬들이 있다. 그 섬들 모두에는 최소 한명 이상의 의사가 들어간다. 그래서 전라남도를 지망하는 사람은 모두의 박수를 받는다. 왜냐고? 한명이라도 낙오될 확률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때는 전라남도 TO가 500자리 정도 였는데 전라남도를 1순위로 지원한 사람은 딱 한명 있었다. 그 사람은 이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로써 내가 전남으로 갈 확률은 1/3에서 499/1499으로 하락하였다. 


결과는 직무교육이 끝난 다음날 아침 10:00에 발표된다. 직무교육이 끝나고 우리는 못다한 회포를 풀기 위해 동기들과 서울의 모처에서 거나하게 한잔 했다. 그때 나는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다 발견해서 벌컥벌컥 마시는것 같았다. 3차 4차 끝날줄 모르던 술자리는 5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내가 눈을 떴을때는 한 모텔방이었고 허벅지 털이 시퍼런 동생놈과 한 침대에서 동침중이었다. 합의에 의한 모텔행이었는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모텔방을 들어올때 했던 맹세는 기억났다. 


"우리 전라남도는 가지말자!"

"그래 가지말자 우린 아닐꺼야"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휴대폰에 문자 하나가 와 있는것을 발견했다. 앞으로 3년간 내가 일하게 될 지역은 이미 정해졌다. 갑자기 눈이 밝아졌다. 술에 의한 탈수에도 혀에서는 침이 과생성 된다. 침을 꿀꺽 삼켰다. 눈을 한번 지긋이 감는다. 휴대폰을 열었다.


다행히 지역 발표는 아니었다.


'신규 공중보건의 배치결과가 인터넷 포털에 게재 되었습니다'

포털에 접속한다. 평소엔 잘 써지던 내 주민등록번호가 자꾸 헷갈린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분명 맞게 썼는데 맞는 주민번호가 아니란다. 나는 여전히 취해있었다. 다시한번 눈을 감았다 뜨며 꾹꾹 눌렀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눈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과연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중략.........


나는 바로 집으로 내려왔고 다음날 배치받은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해 짐을 준비했다. 






2. 나의 최종 발령지는?


나는 전라남도 도청으로 출발했다. 그렇다. 나는 전라남도로 배치되었다. 499/1499의 확률로 전라남도에 당첨되었다. 전라남도로 온 사람들은 가지각색이었다. 499명중 1명은 1지망 전라남도로, 499명중 절반은 경기도와 충청도를 써서 떨어진 사람들이고 나머지 절반은 경상도 강원도 전라북도에서 온사람들이었다. 그렇다 전라남도가 아닌 지역을 쓴사람은 웬만하면 전라남도로 온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같이 낯빛이 어두웠다. 본적은 없지만 도청으로 가는길 서로가 서로를 알아봤다. 까까머리에 논산 날씨의 영향으로 계절에 맞지 않은 옷들을 한결같이 입고 있는 그들.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누가봐도 훈련소 갓나온 공중보건의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나는 누구보다 대비를 잘했다. 까까머리를 숨기기 위해 MLB모자도 쓰고 따뜻한 날씨에 화사한 옷도 입었단 말이다.

도청의 입구에 도착했다.


"공중보건의 선생님들은 2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네?"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변하는 그분은 내 신분까지 알고 있었다. 그분은 신기가 있는게 분명했다.


까까머리 500명이 무사히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지금부터 하는건 난수표를 뽑고 1번부터 순서대로 전라남도의 지역을 채우는 일이었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했다. 아무리 전라남도라 하더라도 지역만 잘 고른다면 전라북도보다 서울에 더 용이하게, 경상남도보다 부산에 빨리 갈 수도 있다. 이 순간을 위해 나는 지난밤 밤을 샜다. 나는 A4용지에 전라남도 지도를 그려놓고 각각의 지역을 분석했다. 그리고 지역별 예상 TO로 추적하여 예상번호대에 우선지역을 심사숙고하여 결정했다. 

이 심사숙고 과정에는 ㅈㅅㅇ의 도움이 컸다. 그렇다 ㅈㅅㅇ는 순천출신이었다. 사귄지 한달만에 강제 장거리 연애가 확정된 그녀는 당황스러울만도 했겠지만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생각했는지 한마리의 매가 되었다. 


'오빠 그곳은 절대 가면안돼'. '오빠 제발 제발'.... '그곳만은 절대 안돼'


문득 본과 1학년 병리학 시험때가 생각났다. 어딘지도 모르는 조직의 특징을 보고 답을 맞추기 위해 두꺼운 책을 새벽같이 보며 공부했던 시절... 난 그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고 그래서 그런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 지역에 대해 시군구 땅모양만 봐도 알아 맞출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다 난 그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 절실하지 않았어난..


퀭해진 눈을 하고 혹시나 놓치는게 있을까 싶어 집중하며 한손으론 밤새 공부했던 A4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 A4는 적들에게 들켜선 안될 나만의 비기였다. 

드디어 난수표 추첨이 시작되었다. 공정성을 위해 한명씩 앞으로 나가 번호를 뽑고 그 번호를 모두에게 공개하는 방식이었다. 쭉 뽑는다. 의외로 상위번호가 앞선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번이 등장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내 앞에서 450번이 나온다. 얼굴 안쪽에서 미소가 지어진다. 얼굴에는 총 세겹의 근육이 있고 나는 가장 안쪽 근육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웃었다. 

이것이 드라마라면 나는 분명 좋은번호가 나올것이다. 450번 다음에 뒷번호가 나오는건 드라마라도 재미가 없다. 

슥슥 섞다가 처음 걸린걸 집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휘휘 젓다가 두번째 집힌걸 들었다. 그리고 공개했다.

어라? 번호가 뒤집어졌나? 반대로 뒤집는다 어라? 뒤집어졌나? 반대로 뒤집는다....

뇌에 정지가 왔다.



460번....



시끄럽던 강당 내부가 조용해졌다. 퀭했던 눈이 하얘지더니 이내 내 눈을 피하는 까까머리들이 보였다. 웃진 않는데 내 귀속으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웃음은 내가 수초전 지었던 속웃음이었다. 

064번일지도 몰라.... 094번일지도 몰라.... 했던 내 헛된 희망은 이리 뒤집어도 저리 뒤집어도 460번이었다.

목을 타고 흐르던 식은땀이 식도로 들어가 흐르는듯 했다. 나는 괴로운듯 연거푸 기침을 두번하곤 쓰라린 가슴을 매만졌다. 그렇게 식도가 타들어 가는것 같았다.


밤새 공부를 했건만... 내가 봐야할 지역은 신안 완도 진도 고흥군이면 족했다. 설마 섬에 가겠냐는 생각이 현실로 바뀌었다. 왠지 밤새 생선 생각이 간절하더라니... 아주 3년 내내 생선 포식을 시켜주려고 신이 꿈을 이뤄주신것 같았다. 하하 완도 참돔이 그렇게 맛있더라니만..



중략..... (기억을 잃ㅎ엇ㅆ다)



현재 355번 선생님 지역 기입중. 본인 내심기대. 초조. 불안.

현재 420번 선생님 지역 기입중. 본인 초조. 불안.

현재 440번 선생님 지역 기입중. 하하 헤헤 호호


더이상 뭍의 지역이 남지 않았다. 이로서 나는 섬생활이 확정되었다.

아름다운 섬이 많은 신안군. 그중에서도 매우 힘들다는 섬으로 가게 되었다.


?(PS. 전라남도는 살아보니 살기엔 너무나 좋은곳이었습니다. 지나고나니 정말 행복했구요. 하지만 그녀와 자주 못본다는 사실이 괴로웠을뿐입니다)





3. ㅈㅅㅇ에게 어떻게 말해야할까?


"ㅅㅇ 나 섬으로 가게 됐어"

"..........................."

"거짓말 하지말구 다시 말해줘"

"응 ㅇㅇ도 알지? 나 그곳으로 들어가"

".................................."


찰나의 강펀치 충격을 맞아버린 그녀는 할말을 잃었다

너무 미안했다. 차라리 여자친구가 없었다면 섬으로 가는 순간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대학병원 생활은 지옥이었고 그곳을 탈출하는것만으로도 행복했을테니까

그러나 나는 어느순간부터 ㅈㅅㅇ가 삶의 중심이 되었다. 사랑하는 그녀와 떨어져 지낸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응 오빠 힘들었으니까 섬으로 가게 된것도 어쩌면 행운일지도 몰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녀는 강펀치에도 클린치로 숨을 고르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듯 일어났다.

맞다 그녀는 그 순간에도 본인의 속마음을 숨기고 있었다.


"선생님 배시간 떨어져요 빨리 이동합시다"


멍하게 넋을 놔버린 나를 툭툭치던 공무원. 이내 내 손을 끌어잡더니 선팅이 진하게된 엑센트안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이동하는 내내 속이 미식거렸지만 답답한 가슴까지 밀어내지 못했다. 미식거리던 내 속은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폭발했고 전날 먹은 술과 안주로 거하게 세계지도를 그렸다.


그렇게 나는 섬으로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탔다.



 

댓글
  • 자두야잘자 2019/12/26 04:54

    "...확률은 1/3에서 499/1499으로 하락하였다." 하하하 쎈쑤쟁이십니다. 오늘 새벽은 왠지 환하네요. 좋은날 되소서, 힘!

    (RABKnz)

  • 달이집사 2019/12/26 05:01

    저도 아픈곳이 많아서 병원에 많이입원해요ㅎ 증후군도있고 만성도있고 해서 ㅋ 정말좋은의사선생님 만나면 기분좋더라구요. 혈관이없는관계로 카테터 제대로해주시는분도 고맙고요~~개인병원하시는지 종합병원에서 근무하시는진 잘모르겠는데 항상 환자들 목소리에 귀기울여주시는 의사선생님이 되어주세요^^의사선생님들이 계셔서 저같은 환자들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것같네요^^

    (RABKnz)

  • 국가대표 2019/12/26 05:07

    줄겁게 정독했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지내세요.

    (RABKnz)

  • 전력왕풀밝기 2019/12/26 06:47

    정독 완료 ㅋㅋ

    (RABKnz)

  • jameslim 2019/12/26 07:03

    즐겁게 보고 갑니다! 오늘 하루도 좋은데이 되세요 ~

    (RABKnz)

  • 젠틀맹 2019/12/26 07:23

    확률이 0.3333333333%에서
    0.3328885924%로 굉장히 많이 하락하였군요 ㅋㅋㅋㅋ

    (RABKnz)

(RABK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