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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동기가 말하는 이재명...

많은 분들이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성남시장과 저와의 인연에 관하여 궁금해 하시기에 올립니다.
저와 이재명시장은 사법연수원18기로 1987년 3월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서 서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대학교로 치면 1년 선배가 되기에 이재명시장이 저에게는 깍득하게 선배로 호칭하였습니다. 당시 연수원동기로서는 문병호 국민의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정성호의원, 또 진선미의원의 큰오빠인 전주의 진봉헌변호사, 차지훈변호사, 이찬진변호사등이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서슬이 퍼랬던 군부독재치하였지만 민주화운동의 영향을 받아 문병호최고위원의 제안으로 사법연수원내에서 노동법연구회를 만들어서 나름대로 진보적인 법조인이 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노동법연구회에 이상수변호사, 노무현변호사(후에 대통령)를 모셔서 강연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변신하면서 자신의 생활 도 바꾸어지는 것을 실감나게 말씀하셔서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렇게 노동법연구회를 만들 때 문병호최고위원이 저에게 이재명시장이 성품이 좋고 맑은 사람이니 함께 하는게 어떠냐하여 제가 만나보니 말 그대로 정의감이 넘치고 올곧은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이재명시장도 노동법연구회에 가입시켜서 함께 노동법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재명시장이 대학시절 사법시험에만 몰두하여 일반 사회과학책을 읽지 못한 것 같기에 저는 가끔 사회과학책을 사서 이재명시장에 주고는 읽은 후에 함께 토론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술먹고 성남시 언덕위에 있던 이재명시장집에가서 자고는 아침에 일어나 어머님이 차려주신 안동식 식사도 얻어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사법연수연수원1년차인 1987년 6월항쟁이 일어나자 우리들은 함께 시청앞에 나가 시민들의 시위대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시위후 술한잔 걸치면서 군부독재를 비판하기도 하였습니다. 6월항쟁이후에는 나름대로 서민들에게 다가가는 법조인이 되고자 하여 서울YMCA에 함께 나가 무료법률상담활동을 하기도 하였고, 석탑노동상당소에 나가 노동상담을 배우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노태우정권이 수립된 후 보수적인 정기승대법관을 대법원장으로 임명하려고 할 때 저와 이재명시장등 노동법연구회 회원들은 늦은 밤 사법연수원 부근 여관에 모여 이를 반대하는 사법연수생서명을 하기로 하고, 밤새 서명문안을 토론하였습니다. 그 때 서명문 초안을 이재명시장이 작성하였는 데 워낙 잘 써서 저희들이 거의 수정하지 않고 서명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법연수생서명에 18기 19기 약200여명이 참여하였고 저녁에 종로3가부근에서 만나 수집한 서명지를 모아 기자들에게 공개하였습니다. 이 서명때문인지는 몰라도 정기승대법관의 대법원장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었고, 이 사건 때문에 이재명시장과 저 그리고 앞장선 사법연수생들이 징계대상에 올랐지만 당시 시절이 민주화된 측면이 있어 운 좋게도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법조계에서 신망이 높은 이일규 전 대법원판사가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어 나름대로 저희들의 서명은 성과를 거두었다 할 것입니다.
그 후 저희들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서 서민과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지역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저와 문병호최고위원은 부평에, 이재명시장은 성남에, 정성호의원은 의정부에 변호사를 개업하였고 민변에도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세칭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우리들은 자주는 아니더라도 틈틈히 만나서 옛회포도 풀고 서로를 다짐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당이 다른 관계로 이재명시장을 돕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가끔 통화를 하면 격려정도는 하지요. 제가 20대부터 함께 한 이재명시장은 올곧고 영혼이 맑으며 의협심이 강해서 어려운 사람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어느덧 이번 대통령선거의 유력한 후보가 된 이재명시장을 이제는 후배가 아닌 큰 정치인으로서 치하하며 좋은 성과가 있기를 그리고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여 우리나라의 커다란 일꾼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재명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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