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읽어 보면 좋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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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저번 글과 저번 글에서 구조주의 서사 이론과,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스토리로 구체화하는 방법을 설명했음.
오늘 설명하는 건 이전 글보다 덜 실용적이고, 더 이론 위주임.
그래서 미리 말해두자면, 현실은 이론만으로 전부 설명할 수 없음. 그러니 다음 이론을 적용할 때는 적절히 수정을 가하길 바람.

지금부터 설명할 내용은 위 두 책에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관심 있으면 찾아 볼 것.
여기서 이론적 토대가 되는 '캐릭터 소설 쓰는 법'은 원서 초판이 2004년에 나왔음. 내용은 라이트 노벨이 타겟이고.
그래서 다른 장르의 소설을 쓰려고 한다면 그다지 도움이 안 될지도 모름.
그럼에도 오늘 날 웹소설, 특히 노벨피아 위주의 웹소설이나 혹은 웹툰 스토리 작법에는 어느 정도 유효할 거라 생각됨.
1. 캐릭터 소설은 무엇인가
우선 장르라는 것은 작품의 내적 특징이 동일한 작품들을 묶어서 지칭하는 것임.
위 책들의 저자 오쓰카 에이지는 캐릭터 소설의 특징을 현실이 아닌 만화적 세계를 재현하는 캐릭터 상품 위주의 소설이라고 봤음.
(특히 일본) 근대 문학은 현실을 사생하는 소설이 위주였음. 여기서 사생은 실물이나 경치를 옮겨 그리는 일을 말함. '사생화'의 사생임.
하지만 캐릭터 소설은 현실을 사생하는 것이 아닌, 만화를 재현하는 것임.
2. 만화적 세계관. 기호설
만화적 세계관은 무엇인가. 데즈카 오사무는 만화를 기호의 집합체로 봤음.
만화의 표현법은 기호로서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것임.
가장 단순화시켜 보자면
(^ - ^)
라는 건 [(] [^] [-]라는 세 개의 기호가 섞인 것 뿐임.
하지만 사람들은 이걸 '웃는 얼굴'이라고 이해함.
데포르메를 어느 정도 할 것이냐, 어느 정도 실제 극화체로 할 것이냐의 차이일 뿐, 모든 만화의 내용은 이렇게 기호화할 수 있다고, 데즈카 오사무는 주장했음.
(ㅜ - ㅜ)
라는 것도 마찬가지임. 위의 기호 조합에서 [^] 가 빠지고 [ㅜ]가 추가된 것임.
하지만 기호가 말하고자 하는 건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음.
이렇게 기호는 패턴의 변화를 통해 의미가 달라짐.
캐릭터 소설은 이 패턴을 재현하는 것임.

유게 늙은이들이 좋아하는 미사카 미코토의 기호 패턴을 분석하면
[주황 머리] [여중생] [츤데레] [강함] 등등의 기호가 패턴화되어 있음.
이 패턴이 캐릭터를 정의하고, 하나의 기호만 바뀌어도 캐릭터는 바뀜. 캐릭터는 서사와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캐릭터가 바뀌면 서사도 바뀜.
즉, [빨간 머리] [여중생] [츤데레] [강함]이라는 패턴이 되면
작안의 샤나도 될 수 있음
이렇게 기호의 집합으로서 캐릭터가 정의되고 서사가 결정되는 소설을 캐릭터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음.
바꿔 말하면 무엇이냐.
패턴을 읽고 그 안의 기호만 조금만 바꾸는 것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임.
이런 것도 캐릭터 소설의 주요 특징임.
+여기서 살짝 번외
만화의 기호는 현실을 사생하는 방법임. 캐릭터 소설은 여기서 더 나아가 기호 자체를 재현함.
철학에서는 '시뮬라시옹'라는 개념이 있는데
시뮬라시옹는 원본이 없거나, 원본과의 연결이 끊긴 복제품을 뜻함.
만화는 현실이라는 원본을 사생하기 위해 기호를 사용했지만, 캐릭터 소설은 현실이라는 원본이 아닌 기호 자체를 사생함. 캐릭터 소설은 시뮬라크르(시뮬라시옹의 명사형)이라고 할 수 있음.
이런 발상을 확장하면 오타쿠 문화 전체를 시뮬라시옹으로 설명할 수 있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즈마 히로키의

를 읽어보면 좋음.
3. 캐릭터 소설의 서사적 특징
일반적으로 서사는 어떠한 주제를 목적으로 따라감. 하지만 캐릭터 소설에서 목적은 캐릭터 자체임.
때문에 캐릭터가 갈림길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서사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음. 예컨대, 멀티 엔딩 또한 가능한 거지.
오쓰카 에이지는 이 예시로 에반게리온을 가져옴. 에반게리온 TVA의 마지막을 보면 갑자기 뜬금없이 학원물 같은 에피소드가 나옴. 이는 신지를 비롯한 에반게리온 캐릭터들이 맞이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가능성임.
이렇듯 캐릭터가 놓이는 상황과 그 선택에 따라 이야기의 성격과 결말도 확 바뀔 수 있다는 것.

3-1. TRPG적 서사 창작
오쓰카 에이지는 캐릭터 소설의 서사 작법 방법론으로 TRPG를 가져옴.
TRPG는 게임 디자이너(세계관 메이커), 게임 마스터(이야기를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 사건을 만들고 보상을 제어하는 사람), 플레이어(캐릭터로서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3 요소가 축임.
TRPG 플레이 기록인 리플레이를 각색해서 내놓으면 그 자체로 창작품이 되는데, 우리가 잘 나는 '로도스도 전기'도 이렇게 만들어졌음.
즉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TRPG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은 위 3개의 요소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음.
라이트 노벨이나 판타지 웹소설을 보면 DnD 세계관을 차용한 것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음.
세계관은 직접 만들어도 되지만, 이렇게 세계관을 차용함해도 이미 게임 디자이너의 요소는 충족됨.
게임 마스터의 요소는 내가 이전 글에서 설명했던 구조주의 서사 이론을 읽으면 이해가 가능할 거임. 중요한 건 주제를 목적으로 달려나가는 게 아니라 캐릭터가 목적이라는 점이기 때문에 서사 전체를 설계한다기 보다는 전령관, 관문 등의 서사적 장치를 배치한다는 식으로 보면 됨.
플레이어의 요소는 앞서 설명한 대로 기호의 패턴으로서 캐릭터를 만들고 그 캐릭터를 세계관과 서사적 장치 위에서 연기하면 됨.
이렇게 이야기의 기본 요소가 만들어지고, 이걸 창작 매체의 형식에 따라 다듬으면 캐릭터 소설도, 캐릭터 웹툰도 될 수가 있음.
4. 생동감 있는 캐릭터 만들기
4-1. 캐릭터의 기호성
앞서 기호의 패턴으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고 했음.
캐릭터는 서사와 뗄 수 없기 때문에, 캐릭터를 어떻게 조형하느냐에 따라 그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서사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음.
그렇기 때문에 기호 하나를 사용할 때도 그 캐릭터의 서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좋음
위 미사카 미코토와 작안의 샤나 예시에서 [주황 머리] -> [빨간 머리]로 기호가 바뀌었음.
하지만 [빨간 머리]에는 샤나만의 서사적 설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그 기호가 돋보일 수 있음. 캐릭터성이 살아나는 거지.
캐릭터는 기호가 신체임.
기호를 어떻게 설정하는가는 캐릭터 신체의 생동감을 불어넣어줌.
[어린 아이], [할머니]라는 기호가 패턴화된 캐릭터를 상상해보자. 이질적인 기호이지만 이 두 개를 합치면
이른바 '로리 바바'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짐.
로리 바바라는 속성을 단순히 속성으로 둘 게 아니라, 그것을 신체라고 상상한다면
캐릭터의 정신에도 영향을 미침.
몸은 어린아이지만, 정신은 할머니라는 게 캐릭터 입장에선 어떤 괴리감을 만들지
그리고 그 괴리감을 연기하면 어떤 서사가 발생할지
이런 걸 상상하면 재밌고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임.
4-2. 라이너스의 담요(이행 대상) 캐릭터
라이너스의 담요란 일종의 애착 물건인데, 더 나아가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임.
라이너스의 담요는 애착물이란 점에서 가족의 울타리를 상징함. 안정적이고 싶고, 보호 바고 싶고, 정신의 심층에 각인된' 가족'의 상징일 수 있음
성장기에 겪었던 결핍과, 그에 대한 불완전한 보상이 라이너스의 담요임.
'원령공주'의 히로인 산에게 두 늑대가 그것일 수 있고, 좀 더 넓게 보자면 '에반게리온' 주인공 신지에게 초호기가 그것일 수 있음.
라이너스의 담요는 이행 대상이란 다른 명칭처럼, 다른 것으로 넘어가야함. 그래야 캐릭터는 성장하여 어른이 되고, 서사가 완성됨.
이 이행 대상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따라 이야기의 방향은 달라짐.
이상적인 어른이 된다면 이별을 하거나, 버리거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거고.
구조주의 서사 이론적으로 설명하자면, 라이너스의 담요는 정신적 스승의 역할도 하지만 결국은 어른이 되기 위해선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그림자의 역할도 할 수 있음.
이 라이너스의 담요는 캐릭터 구성에서 사용해도 좋고 안 해도 좋지만, 역시 만든다면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을 만들 수 있음.
4-3. 결핍과 성흔
캐릭터는 신체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무언가 결핍되어 있거나 결여되어 있을 수 있음.
이 결여는 욕망을 낳고, 욕망은 계획을 세움. 이 계획이 모종의 이유로 무너질 때 이야기가 시작됨.
결여는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게 하는 원동력임.
그리고 결여의 회복은 이야기를 끝내는 목적임.
대표적으로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에드 형제는 신체가 결여되어 있음.
두 형제의 욕망은 신체를 되찾는 것이고, 계획은 현자의 돌을 찾아내는 거임.
이 계획이 호문클러스 등 방해 세력의 등장으로 어그러질 때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함.
과잉 또한 결핍의 일종일 수 있는데, 결국은 인물들이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임.
이 불균형을 어떻게 해결할지, 불균형에서 균형으로 찾아가는 것이 이야기임.
균형에 주인공이 맞추어질지, 세계가 맞추어질지가 갈등의 핵심임.
'최종병기 그녀'에서 히로인은 기계몸을 가지게 되며 불균형이 생기기 시작했고
균형을 맞추기 위해 세상을 멸망시키는, 세카이계물적인 서사로 갈등을 봉합함.
한편 캐릭터는 성흔을 가질 수도 있음.
캐릭터가 모종의 선의 화신이란 증거이자, 차별 받는 이유임. 이는 선과 악, 질서와 반질서의 불균형을 의미함.
예컨대 예수는 동정녀에서 태어났다는 것, 못자국을 가졌다는 성흔을 가짐.
성흔은 물리적 물건, 신체적 표상일 수도 있지만, 추상적 형이상적 상징일 수도 있음.
어떠한 것이든 성흔은 주인공의 운명을 예견하고, 진짜 주인공과 가짜 주인공을 가르는 기준이 됨.
뭔가 이론 위주라서 알맹이 없이 써진 글 같음.
결론은 캐릭터의 기호의 패턴을 분석하고 재패턴화 해볼 것
그리고 기호가 신체인 캐릭터들에게 신체적 특성을 고려해서 생동감을 만들어 볼 것
이렇게 생각하면 될 거 같음.
추천 댓글 주면 고맙고
와드 쓰면 다음에 또 작법 방법론 쓰면 대댓 달아줌(근데 다음 글이 언제 될지 모름)
질문 있으면 쪽지로 보내는 걸 추천함. 댓글 알림을 꺼놔서.
일단 와드! 박고 내일 천천히 봐야겠다.
알려줘서 고마워!
TRPG DnD에 매몰되버린 것들이 많지..
거기다가 용사물과 배틀물에서도 못 벗어나고
캐릭터를 기호의 집합으로 보고 그 기호의 측면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서 서사를 사용하여 캐릭터를 이루는 기호를 조명한다로 이해해도 되려나?
ㅇㅇ
조금 더 나아가서 이야기하자면
기호의 측면을 번갈아가며 조명하기를 반복하는 장르(캐릭터를 이루는 기호의 변화가 없거나 미미함),
기호가 변화하고 그에 따라 서사가 변화하며 변화한 서사에 따라 캐릭터가 변화하며 진동하는 장르로 구분 가능할거 같은데 이거(캐릭터와 서사가 서로 상호작용하여 서로를 자신에 맞추어 이끌어가다 결말로 수렴함)
확실히 좀 더 나아간 이야기이긴 한데, 일단 오쓰카 에이지는 거기까진 안 내다 봤음.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라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