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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 [괴문서] 유혹에 실패해버린 심볼리 루돌프


말딸) [괴문서] 유혹에 실패해버린 심볼리 루돌프_1.gif

 

 

 어느 평일의 오후였다.



 여느 때처럼 트레이닝과 수업이 끝난 뒤에, 심볼리 루돌프는 트레이너 군의 사무실에 찾아왔다. 늘 있는, 별다른 것 없는 일상이었으리라.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트레이너 군의 사무실에 언제나처럼 다른 우마무스메들이 있지 않다. 하야카와 타즈나 이사장 비서도 없다. 물론 두어 시간쯤 뒤에는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찾아오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그러니까, 심볼리 루돌프와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군은, 사무실에 단둘이 있는 것이다.



 당연히 긴장되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지는 않는다. 그야 당연하다. 트레이너 군의 사무실에 찾아온 것은, 그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남모를(전부 다 안다) 연심을 품고 있는 상대가 호출해서 같은 공간에 단둘이 있는 것이라면 응당 소녀의 마음이 눈치껏 두근콩닥거려야 했으나, 그 소녀의 마음은 오늘 휴업이다. 심볼리 루돌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트레이너 군이 오늘 자신을 사무실에 조금 일찍 부른 것은, 그가 담당 우마무스메들과 갖는 정기적인 미팅…다른 말로는 상담 자리다.



 그래, 트레이너로서는 업무의 일환이다. 심볼리 루돌프의 입에서 직접 트레이닝의 장단점을 듣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떤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과 이후 목표로 할 레이스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사실 이러한 논의의 자리가 딱히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심볼리 루돌프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트레이너 군이 그의 생각대로 황제를 트레이닝 시켜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따를 테니까.



 그 정도로 심볼리 루돌프는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군을 믿는다. 아니, 안 믿는다 해도 그녀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녀의 트레이너 군은 심볼리 루돌프, 황제라는 아명의 우마무스메는 물론이거니와 토키노 미노루, 신마라는 아명의 전설을 키워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사람이니까. 중앙 트레센에서 인정받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트레이너니까.



 그리고 토카이 테이오나 메지로 맥퀸을 비롯한 다른 담당 우마무스메들도 하나같이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기에, 그가 단순히 운으로만 트레이너를 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알고 있기 때문이니까.



 그렇기에, 황제의 담당 트레이너 군이 그냥 권위로 찍어눌러도 항명하기 어렵다. 항명해 봐야 심볼리 루돌프만 손해일 테니까. 



 하지만 의외로, 그는 딱히 권위적으로 찍어누르지 않는다. 그냥 그의 성격이 그런 것인지, 뭔가 별다른 신념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무튼 중앙 트레센에서 꽤 많은 권력을 가진 그가, 그것을 사용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런 사람이기에, 어찌 보면 모든 우마무스메의 행복을 위하는 황제, 심볼리 루돌프에게 걸맞은 트레이너요 걸맞은 태사이리라.



 평상시에 항상 앉아 있는 그의 사무 책상을 떠나, 황제의 트레이너 군은 심볼리 루돌프의 맞은편 소파로 걸어와 천천히 앉는다. 사이에 둔 작은 탁자 위에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물과 사과주스를 올려놓는다.



 “루돌프, 너 평소보다 호흡이 조금 거친데? 목 좀 축이는 게 어떠니.”



 “아…고맙다, 트레이너 군.”



 트레이닝이 끝난 뒤 샤워만 간단하게 하고 바로 왔기 때문에, 물을 마실 틈이 없었다. 트레이너 군 또한 그것을 알고 있기에, 평소처럼 미지근한 물이 아닌, 시원한 물과 주스를 준비해 준 것이다.



 트레이너 군의 배려심이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심볼리 루돌프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고 있었다(딱히 아니다).



 비록 그녀가 첫 담당 우마무스메는 아닐지언정, 가장 오래 담당한 우마무스메였기 때문에, 그런 트레이너 군과 심볼리 루돌프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리라(전혀 아니다).



 “…….”



 그런 심볼리 루돌프를 보며, 트레이너 군은 ‘또 이상한 생각 하네’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황제는 여러 방면에서 완벽하지만, 그 내면은 조금 제멋대로에 이상한 꼬맹이다. 다른 사람들이나 심볼리 루돌프 본인은 몰라도, 적어도 트레이너 군은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누가 뭐래도 사츠키상, 더비, 국화상, 재팬 컵에 이어 그랑프리까지 정복한, 명실상부 명 우마무스메가 아닌가. 황제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우마무스메이기에, 레이스 관련해서 만큼은 작은 빈틈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가끔 이상한 생각을 좀 하는 사춘기(가 막 지난) 소녀라 할지라도, 레이스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집중해 주리라 믿고 있다. 게다가 이제 곧 봄의 텐노상, 소위 말하는 하루텐을 앞둔 시기가 아닌가. 5관에 도전을 하는 만큼 집중, 또 집중해야 할 것이다.



 “2주 정도 남았다는 건 알고 있지?”



 “음, 물론이다. 컨디션도 맞춰서 끌어올리고 있으니 문제없다.”



 “좋아. 역시 루돌프야. 스스로 알아서 잘하고 있구나.”



 “당연하지. 나 자신의 목표기도 하거니와, 트레이너 군의 부담도 조금은 덜어줘야 하지 않겠나.”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워, 정말로.”



 정말로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심볼리 루돌프가 어른스러운 우마무스메이지만, 이 정도로 사려 깊을 줄은 몰랐다. 그녀 말고도 담당하는 우마무스메만 다섯이 더 있기에, 정말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로서는, 심볼리 루돌프의 작은 배려 하나가 큰 도움인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세심하게 다리를 관리해 줘야 하는 메지로 아르당이나 토카이 테이오, 이 둘에게 할애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기에…눈앞의 심볼리 루돌프가 정말로 대견해 보인다.



 그래, 마치―



 “―다 큰 딸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걸까.”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야 말았다. 그러다가 헉, 하는 마음에 심볼리 루돌프를 바라본다. 자칫 성희롱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그녀를 너무 아이 취급해버려서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절부조는 안 된다.



 “왜 그러나, 트레이너 군.”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물을 조금 마시며 트레이너 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못 들은 걸까,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생각을 바꾼다. 우마무스메의 청력으로 듣지 못했을 리 없다.



 “…….”



 그렇다면 그냥 못 들은 것으로 치고 넘어가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볼리 루돌프의 배려이리라. 여기서 그의 말실수에 트집을 잡는다면, 서로가 귀찮아질 것이니까. 게다가 트레이너 군에게 이상한 마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님을, 심볼리 루돌프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아니, 아무것도.”



 오히려 심볼리 루돌프가 트레이너 군에게 되묻는다. 그제야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것도 아니라 말한 뒤, 탁자 위에 올려둔 그의 노트북을 펼쳤다.



 “…….”



 하지만 이내 트레이너 군은 깨달았다.



 심볼리 루돌프의 귀가 뒤로 젖혀져 있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지만, 우마무스메가 감정을 숨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젖혀진 귀가 황제의 기분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볼리 루돌프의 기분이 나빠졌다고 해서, 그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먼저 사과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그녀가 정말로 사과를 원한다면, 트레이너 군에게 먼저 말을 할 것이다.



 자신의 기분을 상해게 했으니, 사과하라고. 심볼리 루돌프는 그런 우마무스메다.



 오히려 그가 먼저 사과하면 심볼리 루돌프가 ‘못 들은 척 넘어가려는’ 의도를 무시하는 처사가 된다. 황제 나름의 배려를 무시한다면, 오히려 더 화를 낼 테지. 이쪽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 좋으리라.



 “그러면, 레이스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음, 하루텐, 말이군.”



 “알고 있겠지만, 네게 도전장을 내민 우마무스메들이 한가득해. G1이니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이고.”



 그래, G1 중상의 무게감은 다른 중상과는 격이 다르다. 출전하는 우마무스메 하나하나가 운으로 나오는 예는 없다. 하나같이 전부, 잔디 위에서의 레이스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 우마무스메들.



 그런 우마무스메 사이에서 심볼리 루돌프는, 다섯 번째 왕관에 도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5관이 목표는 아니기에, 그렇게 말하는 트레이너 군도, 그리고 심볼리 루돌프 본인도 놀랄 정도로 덤덤했다.



 “알고 있겠지만…신 브라운, 사쿠라 가이센, 니시노 라이덴, 노무라 무사시, 골드웨이, 다이나 아일랜드, 메지로 몬스니, 아반티, 마루젠스타, 홋카이 페가수스, 미스터 르망, 난신 엑셀러, 스즈카 코반, 미스터 시비, 그리고…너, 심볼리 루돌프까지. 열다섯의 우마무스메가 전력으로 격돌한다.”



 트레이너 군의 말에 심볼리 루돌프는 음음,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같이 뛰어난 학생들이다. 진심으로, 정말로, 단 하나의 조롱과 거짓도 없이.



 “하나하나 훌륭한 우마무스메들이라 생각한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



 “트레이너 군.”



 하지만 그만큼, 심볼리 루돌프는 냉정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트레이너 군 또한 합리적인 결론을 이미 머릿속에서 도출해 냈을 것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황제가 아니었더라면…아니, 황제라 하여도 이는 오만함이다. 무릇 트레이너라면 담당 우마무스메의 이런 오만한 발언을 교정시켜야 했겠지만, 트레이너 군은 다르다. 그 또한 이미 확신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니, ‘트레이너 군’의 생각을 들려달라, 심볼리 루돌프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오만한 황제에게, 그녀의 스승은 짧게 한마디를 던진다.



 “…그럴 리가.”



 황제가 오만한 만큼, 그녀의 트레이너 군 또한 오만하다. 하지만 이는 오만이 아니다. 만에 하나, 라는 말을 할 법도 했지만, 심볼리 루돌프와 그녀의 트레이너 군은 ‘패배’라는 것은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심볼리 루돌프의 컨디션은 최상일 것이고, 트레이너 군의 작전은 완벽하고, 심볼리 루돌프는 그것을 완벽하게 이행해 낼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레이스 지능이라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변수는 없다. 심볼리 루돌프는 자신만만했고, 트레이너 군은 확신하고 있었다.



 “알잖아. 네가 도전하는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거.”



 심볼리 루돌프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교복 차림이건만, 마치 승부복을 입은 듯, 황제의 신위인 양 그녀의 몸에서 옅은 오라가 피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너는, 신잔에 도전하는 거니까.”



 그러니까, 애초에 다른 우마무스메들과의 경쟁은 관심 밖이다. 카츠라기 에이스에게 한번 패한 적이 있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누군가에게 패할 수도 있겠지만, 심볼리 루돌프가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는 이상, 그녀의 목표는 신잔을 넘어 그 이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그리고, 트레이너 군의 옛 담당 우마무스메…신마, 토키노 미노루까지 넘어설 것이다.



 그런 다음에 선언하리라. 토키노 미노루는 그의 ‘옛’ 담당 우마무스메일 뿐이며, 황제야말로 트레이너 군의 옆에 있기에 가장 어울리는 우마무스메라고. 어디에 있는지도, 누구인지도 모를 신마에게 호승심을 불태우며, 심볼리 루돌프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당연한 소리를.”



 “그래, 그러니까 잘 들어. 다른 우마무스메들의 성향을 고려해 보면, 이번에는 선행으로 달리는 것이 좋을 것 같고, 첫 번째 코너에 들어서면 바로―”



 “…….”



 이런, 심볼리 루돌프는 작게 혀를 쯧, 하고 찼다. 트레이너 군의 설명이 갑작스럽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심볼리 루돌프의 상담이라는 명분의 만남이었지만, 어느새인가 레이스 작전 설명회로 변질하여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거의 한 시간가량 다른 출주 우마무스메들의 분석과 코스별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이어졌다.



 물론 심볼리 루돌프는 열심히 들었다. 당연히 자신이 이길 것이라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무 준비도 안 하고 레이스에 출주해도 문제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최상의 상태로 최선을 다했을 때, 심볼리 루돌프의 승리가 확정적이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평소라면 잡념 하나 없이 집중하며 트레이너 군의 말을 경청했을 심볼리 루돌프이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조금 전에 트레이너 군이 했던 말이 거슬렸어서, 아직도 그녀의 귓가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큰 딸을 보는 아버지의 마음.



 아버지의 마음.



 다 커버린 딸.



 딸.



 심볼리 루돌프가, 트레이너 군의 딸 같은.



 여자로 보는 것이 아닌, 딸 같은 아이로 보고 있다.



 단순히 아이로 보는 것뿐이라면 그러려니 한다. 아무래도 트레이너 군과는 나이 차이가 조금 있으니까, 아무리 심볼리 루돌프가 어른스러워도 그가 보기에는 아이 같은 면이 분명히 있겠지.



 그래도 아이는, 여자로 발돋움할 수 있다. 오빠 오빠 하다가 아빠 된다고 트레이너 군의 고향에서는 그런 말도 있잖은가.



 하지만 딸 같은 느낌이라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연애 감정이 일절 없는, 그저 챙겨주고 돌봐줘야만 할 존재. 그녀가 발돋움이라도 하려 든다면, 트레이너 군은 분명 죄책감을 가질, 그런 존재.



 어떤 의미에서는, 여자로서는 최악의 경우.



 그렇기에, 심볼리 루돌프의 귀가 뒤로 젖혀진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연심의 대상이 그녀를 딸 같은 존재로 보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동안의 여러 어필이 무색하게, 심볼리 루돌프가 해 왔던 여자로서의 유혹은 대체 무엇이었느냔 말인가.



 “루돌프, 듣고 있어?”



 “음? 아아, 응…듣고 있다.”



 “그래, 아무튼 마지막 코너가 되기 전에 최외곽으로 빠지면, 네 앞을 막아서는 우마무스메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대로 라스트 스퍼트를 걸면 돼. 아무래도 선두는 스즈카 코반일 가능성이 큰데, 네가 충분히 앞지른다.”



 “…….”



 지금도, 한창때의 소녀와 단둘이 사무실에 있다는 자각도 없이, 딱딱할 정도로 레이스 이야기만 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안다곤 하지만, 그래도…조금이라도 심볼리 루돌프를 의식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을 연모하는, 성인이 되기 직전인, 한창때의 소녀와…단둘이라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심볼리 루돌프는 분명 아름다운 소녀요, 군살 없고 탄탄한 육체를 가졌으며, 나올 곳은 나오고 들어갈 곳은 들어간, 완벽에 가까운 여자의 몸을 가졌다. 그럴진대, 트레이너 군이 한 번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래서 루돌프, 네 의견은 어떠니.”



 “아…그래, 내 의견. 의견…말이지.”



 “괜찮아? 조금 멍한 것 같은데.”



 컨디션에 문제라도 있는 걸까, 그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심볼리 루돌프를 바라본다. 그 시선이 묘하게 정열적인 느낌이 들어, 황제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을 피한다.



 “딱히…문제는 없다.”



 “……?”



 하지만 누가 보아도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새다. 그 문제가 연심이라는 이름의 흥분 기미에 가깝다는 것은 황제라는 이름의 아가씨가 가진 작은 비밀이다.



 물론 그 비밀을 트레이너 군이 알 리가 없다. 석연찮은 눈빛으로 심볼리 루돌프를 잠시 보더니, 이내 다시금 그녀에게 물어본다.



 “그래서, 의견 있니?”



 “으응…트레이너 군의 설명으로 충분하다.”



 “…….”



 그 말에, 트레이너 군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가늘게 뜬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소의 심볼리 루돌프라면 그가 뭐라고 말하건 자기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편이다. 심지어 아무 의견이 없다는 말은 지금껏 한 적이 없다.



 그럴진대, 심볼리 루돌프의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트레이너 군의 시선을, 심볼리 루돌프는 조금 다르게 느끼고 있었다.



 연모하는 남자가 강렬한(아니다)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그의 모든 감각과 관심이 심볼리 루돌프를 향하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기에, 그녀로서는 살짝 달아오른 몸의 본능에 이끌리는 것 또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시선이 끝나는 곳(착각이다)에, 심볼리 루돌프의 탄탄하고 매끈한, 그러면서도 여성스러운 살집이 있는…허벅지를, 천천히 움직인다.



 살그머니, 꼬았던 다리를 풀며, 손으로 치마 끝을 잡고 슬쩍, 트레이너 군의 호기심을 자극할 정도로 약간만, 들어 올린다. 이래도 아버지의 느낌이냐. 딸 같은 느낌이냐. 그렇게 말하는 듯이, 그러면서도 안쪽은 절대 보이지 않게, 하이사이삭스와 교복의 치마 끝단을 절묘하게 컨트롤한다.



 그리고는 다시금 천천히, 꼼지락거리듯 움직이며 반대편으로 다리를 꼰다. 심볼리 루돌프의 매끈하고 탱탱한 허벅지가 맞물리고, 트레이너 군에게 보란 듯이 허벅지를 스윽스윽 움직여 이 사이에 끼우고 싶다는 욕망을 유도한다.



 “…….”



 그래, 그 시선이다. 트레이너 군의 굉장한 눈빛. 그의 학생을 보는 눈이 아닌, 여자를 보는 남자의 눈빛. 마음에 드는 암컷을 탐하고 싶은 욕망에 가득 찬, 욕정의 눈동자.



 “루돌프.”



 그렇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 자리에서 심볼리 루돌프를 범해버리겠다고 다짐하는 그런 눈빛, 조용히 부르는 자신의 이름. 황제답지 않게 두근두근 콩닥거리는 심장. 레이스를 지배하는 황제가 아닌, 한 명의 소녀가 될 뿐이다. 심볼리 루돌프는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 있다. 트레이너 군만 한 걸음 움직여 주면―



 “―화장실 가고 싶으면 말을 하지 그랬니.”



 “……뭐?”



 뺨에 발그레 돌던 홍조가 순식간에 창백하게 씻겨나간다. 눈앞의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왜 되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는 것인가. 정말로 이 심볼리 루돌프가 화장실을 가고 싶어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했을 리가 없다. 그래, 트레이너 군 또한 세심한 사람이고 나름대로 품위와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니, 심볼리 루돌프의 작은 제안에 대놓고 답변할 수 없었던 것이리라. 트레이너 군 나름의 답변인 것이다.



 화장실로 따라와…라는. 조금 마니악한 장소가 아닌가. 황제의 처음을 그런 밑바닥 같은 곳에서라니, 악취미다.



 “그래, 그렇군…그런 거였군, 후후.”



 “야, 루돌프. 네가 지금 뭘 생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거 아니야.”



 “……♪”



 심볼리 루돌프의 표정에서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강 짐작한 트레이너 군이 손을 내저으며 난색을 보였지만, 이미 황제에게 그 소리는 닿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상 하야카와 타즈나의 완력에 기대어야겠지만, 그녀는 지금 이 사무실에 없다. 애초에 심볼리 루돌프와 단둘이서 하는 작은 미팅이었으니까.



 “괜찮다, 트레이너 군. 숨기지 않아도 돼. 나는 트레이너 군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 줄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여 줄 수 있다고?”



 심볼리 루돌프의 말에, 트레이너 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 눈이다. 욕망에 가득 찬 눈동자. 심볼리 루돌프를 놓치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



 “당연하다. 그러니까 트레이너 군이 원하는 대로 화장실―”



 “그럼, 졸업한 뒤에 내 연구실로 들어와서 학-석사통합과정을 밟다가 석사 학기 끝날 떄 즈음에 박사과정으로 전환해서 Cell, Nature, Science 트리플 크라운 달성하고 졸업하자.”



 “……그, 그건 좀.”



 트레이너 군의 검고 질척한 끝없는 악의가 그녀를 덮치자, 흥분 기미가 순식간에 말끔히 사라진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억제 기능은 무서울 정도로 효과가 강력했다.



 예상치 못한 UFC에 황제는 당황했고, 그녀의 망상과 흥분 기미가 가신 것을 확인한 트레이너 군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미팅 중에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집중해야지, 루돌프.”



 “어째서…….”



 “……?”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트레이너 군을 노려보았다. 잘 타일렀다고 생각하는데, 뭔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인가. 하여간 알기 어려운 담당 우마무스메다. 속으로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려 했지만,



 “왜, 나에 대한 기준만, 엄격한 건가!”



 심볼리 루돌프가 빽―, 하고 소리를 지르며 감정을 표출하자, 귀찮은 일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아무래도 루돌프 너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중앙 트레센의 학생회장이니까.”



 “중앙 트레센의 학생회장이기 이전에, 나도 학생이다! 나도 트레이너 군의 다른 담당 아이들처럼 조금 더 트레이너 군의 세심한 배려와 상냥한 말이 필요하단 말이다!”



 “충분히, 상냥하게 대하고 있다고 생각하―”



 “애초에! 둘만 있을 때는! 루나, 라고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는가!”



 “…….”



 그랬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하고 머릿속에서 기억을 끄집어내 보지만, 딱히 기억나는 것은 없…진 않았고, 몇 번 그런 부탁 아닌 부탁을 듣긴 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담당 우마무스메를 애칭으로 부르라니, 트레이너 실격이 아닌가.



 “너를 애칭으로 부를 사이라기에는 조금…그렇지 않니?”



 “뭣…….”



 “아니, 일단은 트레이너와 담당 우마무스메 사이고, 부모님이 부르던 애칭을 내가 부르는 건 너무 거리감이 없는 행동이잖아.”



 지극히 합당하고 논리적인 말이었지만, 트레이너 군의 그 말에 심볼리 루돌프의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중등부 때부터 5년이나 내 담당 트레이너였는데, 거리감이 뭐가 어떻단 건데! 루나는, 루나는…트레이너 군한테 그렇게 불리고 싶은걸! 항상 루나라고 부르라는 것도 아니고, 단둘이 있을 때만! 루나라고 불러 달라고! 트레이너 군은! 그게! 그렇게 어려워?!”



 “…….”



 황제로서의 위엄은 다 집어치우고, 이젠 그냥 어린아이 떼쓰듯 빼애액거리고 있었다. 심볼리 루돌프라기보단 몸만 큰 토카이 테이오같은 느낌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하찌미 드링크 압수당해 삐져 있는 토카이 테이오.



 왜 자신의 담당 우마무스메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한 군데 망가져 있는 걸까, 속으로 한숨을 푹푹 내쉰다. 좋건 싫건 눈앞의 담당 우마무스메를 빨리 달래야, 하루텐까지 컨디션에 지장이 없으리라.



 “그래그래, 노력해 볼게.”



 “그렇게 성의 없이 둘러대지 말고! 루나라고 부르겠다고 해줘!”



 “하루텐에서 일착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



 “그건 당연한 거고!”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하여간, 욕심 많은 황제다. 레이스 트로피로도 모자라 담당 트레이너에게까지 뭔가를 뜯어내고 싶어 한다. 알아서 조공을 바쳐라, 이 말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5년을 담당했는데, 뭔가 더 바라는 것이 있음을 모를 리 없다.



 그렇기에, 황제의 담당 트레이너로서 가끔은 져 줘야 하는 것이다.



 “뭐…하루텐에서 일착하면 작은 소원이라도 하나 들어줄 테니까.”



 그래봐야 주말에 외출, 심볼리의 이름에 걸맞은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한 끼, 조금 많이 가 봐야 살짝 어른스러운 데이트 느낌의 놀아주기 정도겠지. 어깨를 으쓱이며 내달의 가계부의 펑크를 걱정한다.



 “……호오.”



 하지만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심볼리 루돌프의 눈빛이 만족스럽게 바뀌는 것과 동시에 평소처럼 승부욕에 불타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아니, 승부욕뿐만이 아니라…조금은 질척질척한 욕망의 불꽃 또한 타오르고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 거다, 트레이너 군.”



 “미리 말하지만, 이상한 건 안 된다?”



 “알고 있다. 이상하지 않아. 이상할 리가 없다.”



 심볼리 루돌프의 미소가, 묘하게 무섭다고 느껴지는 날이었다.




 *  *  *  *  *  *  *  *  *  *




 그리고 예상대로, 심볼리 루돌프는 하루텐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일착.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위닝 라이브가 끝나고, 트레이너 군과 함께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돌아왔다.



 도쿄역에서 잠시 그녀의 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오니, 역 앞에서 트레이너 군이 중앙 트레센까지 그녀를 모셔갈 차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심볼리 루돌프는 곧바로 중앙 트레센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히죽, 입꼬리를 올리며 트레이너 군에게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트레이너 군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먼저, 눈웃음을 치며 천천히 말한다.



 “트레이너 군의 집에 초대를 부탁하지. 설마하니 약속해놓고 담당 우마무스메의 ‘작은’ 소원을 거절하진 않겠지.”



 “그건 조금 이상한 부탁―”



 “딸이, 아버지의 집에 가는 게, 뭐가 이상하지?”



 “……아.”



 체크메이트였다. 거절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심볼리 루돌프는 이미 조수석의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답지 않은 고혹적인 웃음과 함께, 운전석의 시트를 손으로 팡팡 친다.



 이리로 오라는 듯, 황제의 뜻에 순응하라는 듯이.



 봄이 끝나가는, 도쿄의 따스한 날이었다.





 ==========

 

 

 

 새벽 기습 개문서 앗하하!


 

말딸) [괴문서] 유혹에 실패해버린 심볼리 루돌프_2.webp

댓글
  • 카니에타 2025/07/20 08:35

    루나루나야... 그럼 딸로서 아버지를 덮치거나 그런 짓은 안 할 거지? ...안 할 거지??

  • KaidoHKS 2025/07/20 06:56

    나중에 루나한테 강제로 우마뾰이당하면 트레이너 당신의 행동인걸로 아십시오......가 보이는군요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 KaidoHKS 2025/07/20 06:56

    나중에 루나한테 강제로 우마뾰이당하면 트레이너 당신의 행동인걸로 아십시오......가 보이는군요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r3xRZT)

  • 카니에타 2025/07/20 08:35

    루나루나야... 그럼 딸로서 아버지를 덮치거나 그런 짓은 안 할 거지? ...안 할 거지??

    (r3xR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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