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쿨섹 좌의 외 할아버지, 고이즈미 마타지로.
야쿠자 고이즈미 구미의 오야붕 출신.
14살에 가업을 잇기 싫어 육군 예비 학교에 몰래 입학 했다가 자유민권운동가 이타가키 다이스케의 연설을 듣고 보통 선거론에 눈을 뜸.
하지만 형이 죽고 어쩔 수 없이 군인의 꿈을 접고 비계(건축) 기술자가 되어 등과 팔에 용 문신을 새김.
당시 공권력이 약해 거친 기술자들을 휘어 잡기 위해선 문신이 필수
당시 노동자들이 돈 때먹히는 일이 잦았고, 이를 해결해주고 수완도 좋아 자연스럽게 오야붕이 됨.
입헌 개진당에 입성하며 정치에 입문하자 그의 아버지는 야쿠자 세계보다 더 험난한 정치판에 뛰어든 아들을 보고 '아들 망쳤다'고 한탄함.
당시 일본 정치판은 야쿠자들을 고용해 경호, 유권자 동원, 반대파 집회 방해를 하는 세계였음.
중의원 때는 자유민권운동, 보통선거 추진운동의 투사로 활동하게 되어서 그의 야쿠자 이미지는 부패한 기성 정치에 경종을 울리는
서민들을 위한 이미지로 자리잡았고
당시 정치계가 꺼리던 노동자들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보통 선거'를 제한적이게 나마 이뤄냄.
요코스카 시민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예복이 없어 곤란한 그를 위해 시민들이 돈을 모아 예복도 사줌.
일본이 세계 2차 대전으로 군국주의에 들어서자 반대파에 들어서며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고 무력하게 굴복함.
저 할아버지의 아웃사이더 스타일을 그대로 물려받은 펀쿨섹좌의 아버지 또한
자민당을 부수자 소리치며 구조 개혁을 시행하고
사자 머리 스타일, 미디어 적극 활용, 직설 화법으로 기존 정치와 다른 신선한 행보를 했었고.
그를 이어 받은 펀쿨섹좌는
'무제한 비축미 방출.' '무관세 쌀 수입'을 시행하며
외할아버지 때 부터 이어 내려져온 '야인'기질을 타고 났다고 평가 받고 있음.
팔아니고 등에 문신을
사진도 있던데 무섭더라
팔아니고 등에 문신을
사진도 있던데 무섭더라
땡큐. 고칠게.
팔에도 있네 ㄷㄷㄷㄷ
총리를 해먹은 사람이 아웃사이더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스타일이라고 하면 이해가 간다
다만 저런 기조로 작은 정부 지향을 하다가 준이치로 시절엔 민영화로...
정치 성향 자체가 리버럴이라 보편적인 일본 정계의 기득권 입장에선 충돌이 잦고 이레귤러스러운 성격을 띔
그래도 나름 긍정적인 면으로는 일본의 대중들의 의견이나 시각을 고려하는 쪽에 가깝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