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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1588년 시전부락 정토 당시 조선군 지휘부 구성

시전부락 정토.jpeg

 

 

 

 

1588년 1월, 조선은 번호의 일획인 시전 부락에 대한 정토를 단행한다. 해당 정토는 작년인 1587년에 있었던 녹둔도 지역에 대한 여진계 번호 세력들의 공격과 함락에 대한 보복전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1 


1583년에 존재했던 니탕개의 난으로 불안해진 변경 지역과, 점차 현실화 되어가는 조선 바깥의 여진 세력, 조선에서는 소위 심처호라고 일컬어지는 건주, 해서계 여진 세력들의 성장 상황에서 조선은 번호 세력들의 '변경 질서'에 대한 저항이나 이반, 조선의 압력에 대한 보복에 대해 군사적 대응 태세를 구체화하는 동시에 여진 세력간 연대를 막기 위해 회유책을 세웠다. 이런 기조는 1587년에 있었던 녹둔도 전투에도 적용되었다. 조선측은 녹둔도 전투 이후 군사적 행동을 통해 여진세력에 대하여 단호한 대처, 역공을 하게 되었다.


조선측에서는 녹둔도를 침범한 주동 여진 세력 중 하나를 시전 부락으로 결론지었다. 정토의 관리와 감독을 총괄하는 북병사 이일은 이 때에 군병 2,500~2,700여명을 육진 지역에서 조발하여 시전 부락을 대대적으로 정토하였고 참획으로 383급을 얻었으며 2백여채의 가옥을 불태웠다.1


이 때에 참전한 조선군 지휘관들의 직책, 관직, 명단은 와 「정토시전시장관성명」을 참조할 시 다음과 같다.



중위 직할군

대장/함경북도 병마절도사(咸鏡北道 兵馬節度使) 이일(李鎰)

 

조전장/함경북도 병마우후(咸鏡北道 兵馬虞候) 서득운(徐得運)

 

종사관/함경북도 병마평사(咸鏡北道 兵馬評事) 이용순(李用淳)


수성도 찰방/승의랑 심극명(沈克明)


심약/선교랑 이혜정(李蕙汀)


조전장 /급제3 조대곤(曺大坤)


조전장/신각(申恪)


조전장/이영(李瑛)


조전장/원호(元豪)


조전장/전 판관 한인제(韓仁濟)


조전장/무이보 병마만호(撫夷堡 兵馬萬戶) 김억추(金億秋)4


조전장 /전 훈련원 참군(前 訓鍊院 參軍) 박홍장(朴弘長)



좌위


위장/회령진 도호부사(會寧鎭 都護府使) 변언수(邊彦琇)


종사관/전 판관 조경(趙儆)


선봉장/고령진 병마첨절제사(高嶺鎭 兵馬僉節制使) 유극량(劉克良)


용양도장 /이발(李發)


호분도장/전 현감 이종인(李宗仁)


사후도장/우응태(禹應台)


표확도장/전 통례원 인의(前 通禮院 引儀) 김경복(金慶福)


웅박도장/권지 훈련원 봉사(權知 訓鍊院 奉事) 황대봉(黃大鵬)


좌골격장/서예원(徐禮元)


우골격장/전 도총부 경력(前 都摠府 經歷) 송홍득(宋弘得)


좌화열장 /이옥(李沃)


우화열장 /변양준(邊良俊)


좌부장 /강중룡(姜仲龍)


전부장 /박지진(朴知進)


중부장/ 훈련원 주부(訓鍊院 主簿) 노흥문(魯興文)


유군장/ 용양위 후부장(龍驤衛 後部將) 이염(李琰)


우부장/ 권홍(權洪)


후부장/병절교위 부사과 송제(宋悌)


참퇴장/ 박인봉(朴仁鳳)


한후.장/ 영건보 병마만호(永建堡 兵馬萬戶) 박윤(朴潤)


일계원장/ 부령진 도호부사(富寧鎭 都護府使) 이지시(李之詩)


이계원장/경흥진 도호부사(慶興鎭 都護府使) 정현룡(鄭見龍)



우위


위장/ 온성진 도호부사(穩城鎭 都護府使) 양대수(楊大樹)


선봉장/ 함경북도 조방장(咸鏡北道 助防將) 이천(李薦)


영장/권지 훈련원 봉사 강만남(姜萬男)


용양도장/ 행부호군 선거이(宣居怡)


영장/ 보인 이용제(李用濟)


호분도장/ 전우후 김우추(金遇秋)


사후도장/ 오언량(吳彦良)


표확도장/ 전 찰방(前 察訪) 황진(黃進)


웅박도장/ 이충헌(李忠獻)


좌골격장/ 훈련원 첨정(訓鍊院 僉正) 원희(元熹)


우골격장/ 이경록(李慶祿)5


좌화열장/ 성천지(成天祉)


우화열장/ 이순신(李舜臣)6


좌부장/ 전 수문장 홍우(洪祐)


전부장/ 권지 훈련원 봉사 신초(辛礎)


위장/ 온성진 도호부사(穩城鎭 都護府使) 양대수(楊大樹)


종사관/ 김성○(金聲○)7


중부장/권지 훈련원 봉사 김몽록(金夢虎)


유군장/전 판관 전봉(田鳳)


우부장/훈련원 습독 원유남(元裕男)


후부장/권지 훈련원 봉사 ?8


참퇴장/전 만호 김광수(金光睟)


한후.장/서수라보 권관(西水羅堡權官 秀蘅 ) 임수형(林秀蘅)


일계원장/ 종성진 도호부사(鍾城鎭 都護府使) 원균(元均)


이계원장/ 명천현감 ?9



총병력


2,500~2,700 명


이들 중 많은 수는 시전부락 정토로부터 4년 뒤에 벌어지는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그 과정에서 전사하는 이도, 끝까지 살아남는 이도  존재했으며, 누군가는 역사에 남을 대공을 세우기도, 누군가는 참담한 패전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이 정토는 임진~정유재란에 참전한 장수들에게 있어 중요한 실전 경험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1.녹둔도 전투의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김진수, 2015, 「선조대(1587년) 녹둔도(鹿屯島) 전투에 대한 고찰」, 육군 군사 연구소, 『군사연구』 140을 참고.

2.2,500여명의 군병 동원은 조선왕조실록을 출전으로 한다. 2,700여명의 군병 동원은 제승방략을 출전으로 한다. 제승방략의 수치가 상대적으로 실제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되나, 2,500여명의 병력을 동원했으되 여기에 비정규 병력을 도합하여 2,700여명으로 계산했을 가능성도 있다.

3.이하 급제는 따로 붙이지 않음.

4.무이보 병마만호로 이억기(李億麒)를 서술하는 기록과 김억추를 서술하는 기록이 상존한다. 그러나 『선조실록』과 『호좌수영지』등을 참조하면 이 때에 이억기는 순천부사의 직임을 수행하고 있었으므로 김억추일 가능성이 높다.

5.녹둔도 전투 당시 경흥부사. 조산보 만호 이순신과 함께 백의종군 처벌대상으로서 보복전에 기용되었다.

6.녹둔도 전투 당시 조산보 만호, 전투 당시 일선 책임자. 이경록과 함께 백의종군 처벌대상으로서 보복전에 기용되었다.

7.누구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금산 전투 당시의 참전자였던 당시 영암군수 김성헌(金聲憲)일 가능성이 존재한다. 

8.이름이 누락되어 누구인지 불확실하다.

9.이름이 누락되어 누구인지 불확실하다.

댓글

  • 죄수번호-745705044
    2024/10/27 20:54

    여기서도 빛나보이는 여해 이순신....

    (Xf2M8u)


  • 미하엘 세턴
    2024/10/27 20:55

    빛나보이는 건 제가 볼드체를 했기 때문입니다.

    (Xf2M8u)


  • 죄수번호-745705044
    2024/10/27 20:55

    호에에엥....

    (Xf2M8u)


  • 비전문가
    2024/10/27 21:04

    한후.장

    (Xf2M8u)

(Xf2M8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