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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삼국지] 저는 제갈량이 소하 + 장량 + 한신이라고 봅니다. 제갈량 저평가가 너무 심함.



가능하면 본문 읽고 댓글 달아주세요. 본문 안읽고 한신 >>> 제갈량 같은 말은 안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_-;








저는 제갈량이 굉장히 저평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한국 팬덤에서요.


불펜에서는 심지어 사마의와 누가 낫냐고 묻고 사마의가 낫다는 글까지 나올 정도니...


제가 생각하는 제갈량의 내치, 전략, 군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제갈량의 집권때 촉의 상황인데요.


후한말기 140년 형주의 인구는 630만에 달했는데,  한나라의 5천만 인구가 삼국시대 집계된 800여만으로 줄어든 통계를 보면 행정적 영향력이 미친 형주의 인구는 100여만에 달했겠죠.


형주 상실로 거의 익주의 반에 달하는, 1/3의  인구를 잃어버린 촉나라가 고작 3,4년 뒤에는 또다시 이릉대전에서 8만명의 병사를 대부분 손실하는 대패를 당합니다. 촉나라가 병사가 10만이었는데 이 두 패배는 거의 재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했다고 봐야죠. 장평대전에서 대부분의 병력을 상실한 조나라와 비슷할 정도로 엄청난 손실이라고 봅니다.


이릉대전에서 촉나라의 대부분의 전력이 날았고 황권과 함께 318명이 위나라에 투항했는데 그 중 열후가 된 게 42인, 장군이나 낭장이 된 게 100명 정도로 촉의 에이스급 인재풀도 함께 증발합니다. 유비의 죽음과 함께 촉나라 각지에서 반란도 일어나고요.


하지만 제갈량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작은 반란을 모두 진압하고, 남만의 큰 반란은 옹개를 달래 내치를 돌보는 한편 소금장사와 비단장사의 국유화로 경제를 재건시키고 국력을 신장시킨 뒤 바로 남만을 평정합니다.


제갈량의 출사표와 북벌은 227년의 일인데, 이때는 유비 사후 고작  4년 뒤의 일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1차 북벌군의 숫자는 20만에 달했는데, 멸망때 인구 94만에 병사 10만이던 촉나라가 이렇게 동원했을 수는 없고 이는 인부와 수송 노역에 동원된 사람도 합친 숫자가 아닐까, 대략 10만명이었을 거라 추측합니다.


나라가 망할법한 대패를 2번 당하고 유비가 평생 포켓으로 수집하던 인재풀이 다 날아간 상황에서 4년만에 전성기 촉의 국력 만큼의 병사를 뽑아냅니다.


이뿐만 아니라 기록을 보면 촉은 법치에서 위나 오보다 훨씬 공정했음을 알 수 있고 말 잘못하면 목날아가는 그 시대에 상당히 긴 재판도 이루어지곤 했었죠. 그리고 제갈량은 227년부터 죽는 234년까지 7년동안 5차례의 전쟁을 통해 촉의 5배 국력을 가진 위나라를 공격하며, 보통 전쟁을 하면 국고가 고갈되고 내치가 망가집니다만 이 과정에서 촉은 오히려 내치가 탄탄해지고 기반이 안정화 됩니다. 잦은 전쟁에 민심이탈도 없었고요.


이건 경이로운 수준의 내치 능력인데 어째서 내정을 논할때 소하를 제갈량 위에 두는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통일의 공을 생각하면 소하가 위지만 둘의 상황이 절대로 같은 게 아닙니다. 초한쟁패기는 파촉 vs 중원의 싸움이 아니리 유방 vs 항우의 일대일 구도였고 한신이 치고나올 때야 항우 세력이 근소 우세였지만 삼진이 평정되고 나서는 유방에게 제후가 몰려들어 금방 유방의 세력이 더 커지게 되죠.


이걸 뒷바침 해주는 게 유방이 치고나온지 1년만에 유방은 중국 동쪽 끝에서 항우의 수도인 팽성을 대군으로 포위하고 있게 됩니다. 제갈량이 북벌 시작해 1년만에 장안-낙양-허창까지 되다 밀어버리고 위나라의 10배가 넘는 대군으로 하비를 포위하고 있는 건 제갈량이 아니라 전쟁의 신이 와도 할 수가 없죠. 둘의 상황이 그만큼 달랐습니다.


소하가 일등공신에 통일의 개국공신이라 하나 결국 초한쟁패기는 압도적인 세력이 항우의 반복되는 삽질로 인해 쪼그라든 세력을 짓누른 형세죠. 저는 내치에서 제갈량이 올타임 넘버원으로 꼽힐 수도 있을 정도로 소하보다 확연히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제갈량의 사신과 사마의가 나눈 대화에서 보면 제갈량은 20대 이하의 매 이상의 처벌을 일일이 관장할 정도로 나라의 대소사를 혼자 다 챙깁니다. 이게 비의가 일전에 제갈량에게 '승싱이 되서 일을 혼자서 다 하시려 하시니 아래사람들을 활용하는 게 낫지 않느냐'라고 해서 제갈량이 깨우친 바가 있어 일을 줄인 뒤의 일화입니다. 말 그대로 그 전에는 나라의 모든 일을 다 떠맡아 원맨쇼를 했다는 건데 제갈량의 완벽주의자 성격도 있지만 촉한의 인재부족을 들어내기도 합니다. 제갈량이 보기에 아래사람들이 자기가 혼자 다 하는 것보다 일을 못했다는 거니까요.


제갈량의 직책은 상국 / 승상 / 녹상서사 / 가절 / 익주목/ 영사례교위였는데, 이건 나라의 모든 책임을 거의 다 짊어졌다고 보면 됩니다.


상국: 전권을 가진 신하

승상: 국무총리

녹상서사: 섭정 (조조 동탁이 이 지위를 가졌음)

가절: 녹봉 2,000석 이하의 관리를 황제의 허가 없이 목을 칠 수 있음. 나라 전체의 법 집행권

익주목: 촉나라의 영토가 익주가 다인데 익주의 수장. 나라 전체의 행정권.

사례교위: 수도 방위 및 치안 담당. 장비 자리였는데 사망 후 제갈량이 받음. 군권.


이건 현대로 보면 대통령겸 국무총리겸 비서실장겸 수도방위사령관겸 대법관겸 국방부장관 국회의장겸이죠.


그러니까 제갈량이 4년만에 나라가 망할 정도의 대패를 격은 국가를 인재는 어쩔 수 없어도 국력을 전성기에 가깝게 끌어올린 건 거의 제갈량 스스로의 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전략적인 부분에서, 제갈량은 빌붙일 곳도 없던 유비를 황제까지 만들어 냅니다. 이는 항우 다음가는 세력이었던 유방을 중화의 지배자로 만든 장량의 대전략에도 뒤진다고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천하삼분론이야 이미 식자들 사의에서 논의되었지만 구체적으로 그걸 실현하고 유비를 그 한 축으로 삼아 전략을 성공시킵니다. 애초에 유종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형주 장악이 실패로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요.







마지막으로 제갈량의 군재는 확실히 한신 밑이겠죠. 하지만 무성왕묘에 제사를 지낼때 배향한 걸 보면 제갈량은 심지어 한신 백기가 꼽히지 않을 때도 한번도 빠지지 않았을 정도로 역대 왕조에서는 강태공과 동급으로 취급받았습니다. 또한 5배의 국가를 상대로 어려운 공세를 가하면서 실패해도 한번도 큰 타격을 받지 않았고 내실은 오히려 견고해졌고, 3차북벌 진창성에서 막혀도 바로 직후에 북벌을 해내 성과를 이루는 등 큰 패배를 격지도 않았으며, 후퇴를 잘하는 자가 명장이다라는 평가도 있는데 후퇴할때 역시 위나라에 더 큰 손실을 주면 주었지 5번의 전쟁동 큰 피배를 입은 적이 없었죠.


전쟁중 목우/유마 발명으로 군수물자 이동의 어려움에 스스로 발명품까지 도입했고, 연노등의 무기도 개량했고,후대까지 쓰였다는(에, 말이 이렇지만 참고가 된 수준이지 그대로 쓰였을리는 없지요) 팔진법도 만들어 활용했고 사마의가 나중에 감탄하기도 합니다.


제갈량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진수가 크게 보는 안목에 비해서는 임기응변이 부족했다라고 평한 내용인데 그게 제갈량의 군재에 대한 가장 박한 평가가 아닐련지요. 사마의가 제갈량을 평할때 비슷한 평을 했었고(그 말을 한 사마의는 정작 제갈량과 붙은 두번의 야전에서 다 깨지고 수비만 한 사람입니다..) 진의 고조 선황제가 한 평을 진나라 역사가인 진수가 답습합니다. 후대왕조나 동시대 사람들은 전부 제갈량을 진부가 평한 것 이상으로 뛰어난 명장이라고 본 듯 한데 진수의 평 하나만 가지고 제갈량의 임기응변이 부족했다 보기도 힘듭니다.


5배 강한 국가를 상대로 모험을 할 수 있었을련지도 의문이고 인재난까지 겹친 상황인데 제갈량의 1차 북벌 계획이나 4차의 퇴각하자마자 기습적인 컴백, 5차 오장원 농사짓기와 성동격서 등 임기응변이 없다고 보기도 힘드네요. 물론 조심한 측면은 있지만 그건 당연한 거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제갈량의 군재가 역대급과 비교하기는 떨어져도 삼국지 시대에서는 원탑이라고 봅니다. 보통 원탑으로 꼽히는 조조야 승리도 많았지만 서영, 여포, 장수, 또다시 장수, 주유, 손권, 유비등에게 여러차례 패하였습니다. 물론 조조는 승리가 훨씬 많고 무패의 명장은 없다싶이 하니 조조는 명장이고 군재도 삼국지 탑급이라고 봅니다만, 제가 제갈량을 조조보다 군소우위로 보는 점은 과정 때문입니다. 조조의 군적 업적이야 제갈량과 상대가 안될 정도지만 조조는 대군을 이끌고 자기보다 적은 상대에게 패한 게 적어도 장수에게 두번, 주유에게 한번, 손권에게 한번, 유비에게 한번 등 너무 많아요. 명장은 전력적 열세나, 소수인 적에게 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서양사 최고의 명장인 나폴레옹이 일생에 조조와 똑같이 8패를 격었는데 (약 50승 8패) 나폴레옹은 자기와 적거나 같은 숫자의 적에게는 단 한번도 패한적이 없습니다. 제갈량 또한 1차북벌과 3차북벌때 병력이 우세이긴 했습니다만, 1차북벌의 전술적 움직임은 훌륭했고 (마속을 쓰는 용인술의 실패로 졌지만요) 3차북벌때는 물러서자마자 재차 4차북벌로 성과를 냈기도 했으니까요.


군사적 업적에서야 조조가 압승이지만 내용에서 제갈량이 좀 더 앞선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또다른 서양사 최고의 명장인 한니발은 훨씬 강력한 로마를 상대로 이탈리아 원정에서 큰 성과를 냈지만 로마가 수비일변도로 변하면서는 별다른 성과도 없이 16년간 이탈리아 반도를 떠도는 게 전부였습니다. 하물며 촉 위의 국력차야 카르타고 로마 이상일진데 위나라가 수비일변도로 나왔을때 그걸 깨트리는 건 한신 백기라도 별다른 방도가 있었을까 싶어요. 나폴레옹도 공성전에 들어가선 별다른 힘을 못썼고요.


제갈량의 적수였기에 연의에서 라이벌로 취급된 사마의 주유와는 아예 비할 바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여간 저는 제갈량이 소하를 넘어서는 정치, 장량과 같은 전략적 식견, 그리고 한신보다는 떨어지지만 삼국지 내에서는 최고 혹은 조조와 최고를 다투는 군재를 가진 초인급 전략가이자 정치가라고 생각합니다. 한삼걸 3인을 합친 인재(... 에서 내정을 더하고 군재를 뺀)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삼국지 내에서 인물이 많지만 역대로 꼽으면 조조는 통일군주들에게 밀리는데 제갈량은 역대급 재상으로 손꼽히니까 가히 삼국시대 최고의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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