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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적 이야기를 들려줄게

어릴 때 할아버지랑 같이 산 속에서 살았음
요즘 자연인이라고 하잖아. 할아버지도 그런 분이셨음
진짜 완전 첩첩산중에 나무로 된 집이었어
툇마루가 딸린 방 2개와 장작 때는 부엌이 전부였어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할아버지랑 살던 집에서 읍내로 나가려면
대여섯살이었던 내 걸음으로 거의 반나절은 가야 했거든?
그런데도 손님들이 자주 왔었어
보통은 점을 보러 온다거나, 아픈 곳 좀 고쳐달라고 왔음
할아버지가 무당은 아니었고 사람들이 도사님이라고 불렀어
사실 나도 지금까지 할아버지 성함을 몰라
할아버지한테 여쭤본 적이 있는데,
할부지 왈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정의를 내리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멈춘다"
이런 말씀만 하셨음
그리고 나는 항상 발가벗은 채로 살았는데
왕왕 손님들이 내 모습에 대해 할아버지한테 물어보면
"세상에 물들면 그 무게가 천근이요,
떼어내기란 생살을 뜯는 것보다 어렵다"
이렇게 답하시곤 했어
참 독특하셨지;;;
그런 할아버지 영향인지 나도 어설픈 재주가 몇 개 있었는데,
아파서 오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가 아픈지 보이는 것도 그 중 하나였어
사람마다 고유한 색이 있는데,
아픈 부위가 있으면 그 부분이 유독 파랗거나 빨갛거나 해서
전체적인 색과 조화가 안 되더라구
그리고 또 동물들이랑 자주 놀기도 했어
대화를 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지나가다 새나 동물을 발견했을 때,
마음속으로 부르면 다가오더라구
여하튼 그날은 진짜 볕이 좋은 봄이었어
나는 보통 집으로 날아드는 새나
풀 뜯으러 오는 고라니,
집 밑에 있는 개울로 놀러오는 가족 단위의 멧돼지들이랑 놀곤 했는데
그때는 손님들이 다녀간지 꽤 오래여서 괜히 사람이 보고 싶은거야
그래서 할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마을 쪽으로 내려갔어
읍내까지는 엄청 멀다는 걸 알고 있어서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뭔가 가다보면 중간에 한 명 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
그렇게 몇시간을 내려갔을까
갑자기 아랫쪽 풀숲에서 소리가 나는거야
그래서 처음엔 동물인줄 알고 무슨 동물일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연분홍 치마를 입은 여자애가 튀어나오는 거 아니겠어?
내 또래의 아이는 정말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너무 반갑기도 했고,
눈은 크고 코는 자그마한데 오똑하게 서있고,
볼은 통통하고 불그스레한 게 정말 이뻐서 놀란 와중에 먼저 인사를 했지
그러니까 걔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 이런 표정을 짓는거야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한 번 크게 인사했어
그제야 소녀가 활짝 웃으면서 인사하더라구
그때부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어
재잘재잘 이야기 하면서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편하고 재미있게 보냈음
그러다보니 어느새 벌써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거야
갑자기 할아버지한테 혼나겠다는 생각과
산 속에선 해가 엄청 빨리 떨어져서 늦장을 부리면 큰일나는데 어쩌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면서 아쉽지만 얼른 집으로 가야겠다 싶었어
그래도 아쉬움은 남아서 그 여자애한테
사는 곳은 어디인지, 언제 또 볼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자기도 산에 사는데 이 근처에 집이 있다면서
오늘 만났던 곳에 날마다 온다고 하더라구
그래서 다시 또 온다고 급하게 작별인사를 하고선 후다닥 집으로 갔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나를 보고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려고 하다가
그냥 늦었다고 얼른 씻고 밥먹자고 하시는거야
오 그래서 할아버지가 좋은 일이 있으셨나? 다행이다 생각했지
그 뒤로도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내려가서 그 여자애랑 놀았어
같이 개울에서 물장난도 치고, 꽃반지나 꽃목걸이도 만들어주고,
열매나 꽃을 따먹기도 하고 그랬음
진짜 그 여자애는 볼때마다 이쁘더라
그렇게 반 년 정도를 자주 만나서 놀았어
그러다가 갑자기 할아버지가 편찮아지셨지
매일 다른 사람들 고쳐주시길래 할아버지는 안 아플 줄 알았는데
얼굴도 헬쓱해지고 누워계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더라구
할아버지가 아프시니까
내가 죽도 쑤고, 빨래도 하고, 나물도 따오고 했어
겨울이 오고 있어서 장작도 많이 준비 해둬야 했는데
그때는 내가 어려서 장작은 어떻게 할 수 없더라구
집으로 찾아오신 손님들이 가끔 장작을 패주시곤 했는데
할아버지가 계속 아프시니 점점 발길이 끊어지더라
여튼 나도 이것 저것 일이 많아서 여자애를 보러 갈 수가 없었어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실까봐 겁도 나고..
그러다가 내가 작은 이모라고 부르던 아주머니가 올라오셨어
처음에 손님으로 몇 번 오셨다가 나중에는 집안일도 도와주시고
살림도 챙겨주시고 하셨던 분이야
아주머니가 오셔서 며칠 묵으면서 밥이랑 빨래도 해주시고
살림도 좀 봐주신다고 하셨어
어린 나 혼자서 버거웠는데 정말 감사하더라

댓글
  • 愛Loveyou 2021/08/04 23:06

    순간 산삼이라길래
    산에서 쌌다는(산 쌈) 썰인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요

    (DI1myg)

  • lucky 2021/08/05 11:19

    동화작가 하면 대성하겠네

    (DI1myg)

  • 코숏 2021/08/05 12:37

    겁나재밌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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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멋진돼징 2021/08/05 12:52

    누가 뒤에 이어서 써 줬으면 좋겠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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