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천국 코하비닷컴
https://cohabe.com/mlbpark/46888

후기공무원 그만두고 여행 중인 30대의 성찰기, 불가리아편(2)

 



불가리아의 흑해를 찾았던 건 작년 10월이었다. 



계절의 변화를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때였다. 


밤 9시까지도 누릴 수 있었던 유럽의 따뜻한 햇살은 


이제 오후 5시만 되면 찾기 어려웠다. 



비 오는 날이 잦아졌고, 


금방이라도 세차게 물을 뿜어낼 기세의 


시커먼 구름들이 하늘을 덮는 날도 많았다. 


속절없이 떨어진 푸석한 낙엽들이


거리에 쌓여가기 시작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바다 옆에서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 



한여름의 성수기가 지난 흑해를 


찾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듬성듬성 해변에 꽂혀 있는 파라솔들은 비어 있었고, 


바다 위 갈매기들과 바다 속 해파리들은 


묘하게 정적이었다. 



흑해를 찾았던 모든 사람들이 


이미 모두 원래의 삶의 둥지로 돌아가고, 


우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계절이 바뀌었다는 건 


4월의 봄에 시작된 우리의 여행이 


벌써 6개월이 되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애초에 1년을 계획했던 여행이었고,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확연히 줄어 있었다. 



분명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소중하고 감사한 여행을 하고 있지만, 


차가운 가을바람은 냉정한 목소리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온 몸에 전달했다. 



우리가 선택한 이 여행, 


언젠가는 끝내야 할 이 여행. 


하지만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10월의 흑해는 말없이 고요했다.









때때로 송곳처럼 느껴지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여행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보석 같은 장소들이 주는 다채로운 에너지 때문이다. 



우리는 불가리아 흑해 주변의 세 도시인 


부르가스, 네세바르, 소조폴은 


때로는 유쾌한, 때로는 신비로운, 


때로는 차분한 에너지를 선사해 주었다. 



부르가스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고양이였다. 


사람보다 훨씬 많은 고양이들이 거리를 활보했고 


저마다 가로수 그늘을 차지하고 앉아 낮잠을 잤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어떤 고양이들은 


사뿐사뿐 다가와 야옹거리며 몸을 비벼댔고, 


우리는 마치 선택된 사람들처럼 기뻐했다. 



고대 도시의 유적들과 바다가 어우러져 있는 


네세바르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았다. 


네세바르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가 


3천 년에 걸친 이 도시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작은 바닷가 마을인 소조폴의 아침은 한적했다. 


해안가에 멋들어지게 자리 잡은 카페에서


간단한 아침식사와 커피를 곁들이면서


고요한 흑해를 감상했던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순간순간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라는 짙은 안개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









한 달에 한 번씩 다른 나라로 이사를 하는 여행은 


분명 즐겁고 기대되는 일이다. 



하지만 매달 다른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기력을 조금씩 소진시키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불어온 


낯선 타국의 차갑고 건조한 가을바람은, 


면역력이 약해진 우리를 움츠러들고 가라앉게 했다. 


조금만 걸어도 금방 피곤해졌고, 


까닭 모르는 두드러기가 우리를 괴롭혔다. 



면역력이 약해지니 


낯선 음식을 받아들이기도 어려워졌다. 


불가리아의 음식들은 대체로 우리 입맛에 잘 맞지만, 


이 시기에 우리는 식재료들을 직접 사다가 


간단한 요리를 해 먹으면서 몸을 추슬렀다. 



외식을 해야 할 때는 불가리아 음식인 샵스카 샐러드와 


요구르트 음료인 아이란을 주로 먹었다. 



불가리아의 전통 샐러드인 샵스카 샐러드는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만 영양은 훌륭하다. 


토마토, 오이, 피망 같은 신선한 야채에 


하얀 치즈 가루와 올리브를 섞어 먹는다. 



불가리아 어디서도 마실 수 있는 아이란 덕분에 


따로 유산균 영양제를 챙겨 먹지 않아도 됐다. 



샵스카 샐러드와 아이란은 


우리가 차츰차츰 기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장기 여행은 이렇게 때때로 고단하지만, 


오랜 시간의 체류는 우리의 선택폭을 넓혀 주었고 


좀 더 충실한 여행을 하게끔 이끌었다.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날씨에 많이 좌우된다. 


짧은 기간의 여행이라면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궂은 날이라도 


당초 계획한 스케줄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또한 아무리 아름다운 여행지라도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인파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소음은 


여행의 감동을 반감시키기 일쑤다. 



우리는 날씨와 시간을 고를 수 있었다.



우리는 햇볕 좋은 날, 


한적한 평일 오전 시간을 골라 


불가리아의 고도인 벨리코 터르노보를 찾았다. 



절벽을 휘감고 굽이치며 흐르는 강 때문에


천혜의 요새라는 굴레가 씌워지고, 


외부의 적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가 세워질 수밖에 없었던 이 도시의 운명. 



천 길 낭떠러지에 위태로운 집을 짓고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리듯 살았을 그 때의 사람들. 



한때는 불가리아 제국의 수도로서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번영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의 타겟이 되어 


무너지고 부서져 몰락했던 쓸쓸한 곳. 



조용하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벨리코 터르노보가 전해주는 이야기와 감정에 집중했다.









여행을 하면서 한국 음식이 특별히 그립지는 않았다. 


게다가 아시안 슈퍼마켓은 물론이고 


많은 유럽의 대형마트에서 신라면을 찾을 수 있어서, 


종종 라면을 사다 먹으면서 


한식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했다. 



그래도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 일본, 태국 식당들을 볼 때면 


조금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유럽 주요 도시에 일부 한식당들은 있지만, 


특히 떡볶이와 김밥 같은 분식을 


주로 판매하는 식당은 찾기 어렵다. 



불가리아 소피아는 


화사한 외관의 분식집이 있는 특별한 곳이다. 


한국인 부부께서 꾸려 나가고 계시는 이곳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많은 불가리아 젊은이들이 


특별히 현지화 시키지 않은


컵라면, 컵밥, 떡볶이, 김밥과 같은 


한국의 분식들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귀한 떡볶이와 김밥을 감사히 먹었다.









불가리아를 떠나기 며칠 전인 10월 중순 즈음, 


소피아를 감싸고 있는 비토샤 산 봉우리에 첫 눈이 왔다. 



수줍게 쌓인 첫 눈을 바라보는 심정은 


마냥 낭만적일 수는 없었다. 


조바심, 불안감, 그리고 압박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충분히 길다고 생각했던 여행이었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어느덧 6개월이 지나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수 없이 고민했던 


예전의 나를 생각하려고 한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떠난 여행. 


타의가 섞여 결정되었던 나의 삶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이끌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 함께 떠난 여행. 



여행의 매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나의 감정들을 소중히 돌보고, 


내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것들,


즐겁게 푹 빠질 수 있는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과 경험들을 


아내와 공유하면서 


나와 우리가 더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다 잘 될 거라는 긍정적인 기운과 함께 


또 다른 여행지로 떠날 수 있었다. 



2017년의 늦가을에, 


우리는 불가리아를 떠나 세르비아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불가리아 2편으로 찾아 뵙습니다. ^^


시간 내어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그럼 며칠 후 세르비아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댓글
  • 가즈아!!2018/05/15 07:42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 극도의어설픔2018/05/15 08:07

    저도 시간이 한정된 장기 여행을 했을때마다 매번 들었던 고민이 한국에 다시 돌아갔을때 앞으로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것인가 였던 것 같네요

    멋진 여행 한번으로 인생이 바뀔 확률은 희박하다고 보는 편이지만 적어도 여행을 떠나오기전의 나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의 원동력을 여행 과정을 통해 얻고 가고 싶은 욕심이랄까 그런게 항상 강박증처럼 생기더군요

    이번의 긴 여정이, 오롯이 자신의 행복을 찾으면서 얻은 여행지에서의 추억들이, 글쓴이님을 행복하게 해주길 바랍니다

  • 리베이트2018/05/15 11:38

    숍스카 진짜 맛있음.. 발칸반도에서 먹은 음식 중에 최고..

    한국에서도 자주 해먹네요

  • 4Justice2018/05/15 11:55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밤 늦은 시간에 지하도를 헤메이고 있는데 여자 갱단 같이 생긴 4명이 갑자기 다가오더

    니 도와준다고 해서 완전 겁 먹었었네요 ㅋㅋㅋㅋ

    알고 보니 흑해 쪽 불가리아 제2도시인 바르나에서 온 여대생들. 한 명은 일본어를 대학에서 전공하고

    있던데 암튼 이 친구들이 집에 가는 길까지 데려다 줬었네요. 한 처자는 엄청 예쁘고 통통하고

    푸근하던데....ㅎㅎㅎ

    불가리아 사람들은 대체로 정겨웠던 것으로 기억하네요. 풍경, 자연도 좋지만 누군가 그랬죠.

    여행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 Vajra2018/05/15 12:17

    잘 보고 있어요 ^^

  • jy아빠2018/05/15 12:42

    힐링하고 갑니다. 매번 감사합니다.

  • 앗싸나비왕2018/05/15 15:31

    글이 너무 좋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 엘지이상훈2018/05/15 18:20

    저보다 어리지만 멋진 삶을 사시는군요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월세살이2018/05/15 18:21

    답글 남겨주신 분들의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을 보면서 저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응원 해주시는 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 푸른피김한수2018/05/16 00:02

    여행재밋게하세요~ 여유있는 여행이라 더 부러워 보입니다~

  • 아하하하하2018/05/16 03:49

    늘 올려주신 글에 댓글을 달고싶어 로그인하네요ㅎㅎ 오늘도 글과 사진 잘 봤습니다. 여러가지 고민이 많으셨을 불가리아 여행이었네요. 공감가는 내용이었습니다. 세르비아편도 기대할게요!

  • 에바케시디2018/05/16 05:36

    그놈의 공무원 관뒀단 얘긴 왜 하는지ㅋㅋ

  • 없다다다2018/05/16 07:41

    에바케시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레알기아2018/05/16 08:01

    외국생활 중 몸이 좋지 않을때는 한식을 챙겨먹으면, 특히 김치!, 회복되더군요.

  • molaid2018/05/16 15:48

    고양이들이 자유로운 곳이라면 천국이었겠네요 부르가스, 처음 듣는 곳이지만 여유와 행복이 있는 곳일 듯.. 언젠가 가보고 싶네요

  • 사상누각2018/05/16 19:16

    에바케시디//지금 하는 행동에 타당성을 부여하는게 아닐까요? 공무원으로 이룰만큼? 이뤘으니....

정치강원랜드 채용비리 특검 수사 청원 주소(권성동,문무일)
  • 정치강원랜드 채용비리 특검 수사 청원 주소(권성동,문무일) [17]
  • mlbpark |  | 2018/05/15 13:26 | 4874
개선요청(해줄때까지 71일차)(+피드백)아이디차단 1600자 제한 늘려주십시오.
  • 개선요청(해줄때까지 71일차)(+피드백)아이디차단 1600자 제한 늘려주십시오. [12]
  • mlbpark |  | 2018/05/15 12:56 | 5472
사회담장글보면서 참 많은생각을하네요.
  • 사회담장글보면서 참 많은생각을하네요. [33]
  • mlbpark |  | 2018/05/15 12:20 | 3592
정치동아일보의 북핵 포기비용 2100조 기사는 가짜뉴스입니다
  • 정치동아일보의 북핵 포기비용 2100조 기사는 가짜뉴스입니다 [8]
  • mlbpark |  | 2018/05/15 11:44 | 2131
정치안미현 검사 "권성동 의원 소환 검토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질책"
  • 정치안미현 검사 "권성동 의원 소환 검토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질책" [11]
  • mlbpark |  | 2018/05/15 10:44 | 2201
정치[펌]혜경궁김씨 광고관련 레테-일요신문 인터뷰.txt
  • 정치[펌]혜경궁김씨 광고관련 레테-일요신문 인터뷰.txt [8]
  • mlbpark |  | 2018/05/15 09:59 | 2901
후기공무원 그만두고 여행 중인 30대의 성찰기, 불가리아편(2)
  • 후기공무원 그만두고 여행 중인 30대의 성찰기, 불가리아편(2) [16]
  • mlbpark |  | 2018/05/15 07:39 | 4159
스포츠박지영 아나운서 감사합니다.jpg
  • 스포츠박지영 아나운서 감사합니다.jpg [23]
  • mlbpark |  | 2018/05/15 03:06 | 2587
정치자한당 이들이 망한 이유 - 이 시각 국회 상황
  • 정치자한당 이들이 망한 이유 - 이 시각 국회 상황 [50]
  • mlbpark |  | 2018/05/15 02:15 | 3265
정치선관위 공문 발송 실수 기사떴네요. /경인일보
  • 정치선관위 공문 발송 실수 기사떴네요. /경인일보 [5]
  • mlbpark |  | 2018/05/15 00:18 | 5247
아이돌BTS (방탄소년단) 'FAKE LOVE' Official Teaser 1 (수정된 티저로 교체했어요)
  • 아이돌BTS (방탄소년단) 'FAKE LOVE' Official Teaser 1 (수정된 티저로 교체했어요) [32]
  • mlbpark |  | 2018/05/15 00:03 | 6012
사회똥물 테러 하는 자에게 경고한다 경찰서에 정식 범인 잡아달라고 고소간다
  • 사회똥물 테러 하는 자에게 경고한다 경찰서에 정식 범인 잡아달라고 고소간다 [56]
  • mlbpark |  | 2018/05/14 21:59 | 6057
정치저는 특검법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 정치저는 특검법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18]
  • mlbpark |  | 2018/05/14 20:59 | 5361